사진속일상

낙엽 여행

샌. 2010. 2. 25. 09:15

여기서는 퇴직을수 년 앞둔 사람들을종종 '낙엽'이라고 부른다. 좋게 말하면 원로지만 그 말보다는 낙엽이라는 말이 재미있어서 친근한 사이에서는 허물없이 쓴다.그 낙엽들끼리 1박 2일로 여행을 다녀왔다.

 

잠 잘장소만 정했지 나머지는 그때그때 즉흥적으로선택하며 돌아다녔다. 서울에서 출발할 때는 광주 무등산을 염두에 두었으나 차 안에서 갑자기 목포 유달산으로 바뀌었다. 전의 여행 팀은 세밀하게 동선이 결정되어 움직였는데 이곳은 낙엽답게 분위기가 딴판이었다.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식이었다. 그러나 이 또한 그런대로 재미있는 일이었다.

 

덕분에 목포는 오랜만에 다시 들리게 되었다. 20여 년 전 남도 여행 중 세발낙지를 먹으러 목포항에 잠깐 머문 적이 있었다. 이번에는 유달산에 오르기 위해 목포를 찾았다. 유달산에 여자나무가 있다고 해서 더욱 솔깃했다.

 



유달산(儒達山)은 높이 228 m의 높지 않은 산으로 목포 시내와 다도해가 한 눈에 내려다 보였다. 30 분 정도면 오를 수 있는 작은 산이지만 암봉들이 멋있었다. 이곳은 기온이 20도 가까이올라서 윗옷을 벗어도 땀이 났다. 훌쩍 봄 속에 들어간 셈이 되었다.

 


 

월출산 아래에 있는 무위사(無爲寺)에 들렀다. 무위사는 극락보전의 단아하고 소박한 아름다움이 기억에 남아 있는 절이다. 그러나 보전 뒤의 단장된 돌 축대가 신경 쓰이고, 주변에 새로 들어선 건물들도 옛 느낌을 잃게 했다. 극락보전은 좀 쓸쓸히 놓여 있어야 제 맛이 느껴진다. 그게 무위(無爲)의 뜻이기도 하지 않을까. 아쉬워지는 점에서는 무위사도 예외가 아니었다.

 


장흥으로 가는 길에 백련사(白蓮寺)에 들렀다. 뜻하지 않게 절집 순례가 되었다. 그렇다고 사찰이나 문화 답사에 관심 있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지나가다 보면 들리기 편하고 이름난 장소가 있기 마련이다. 백련사도 그런 곳 중의 하나였다.



시간 여유가 있어서 장흥댐에도 가보았다.6년 전에 완공된 장흥댐은 탐진강을 막아 만든 다목적댐으로 전라남도 남서부 지역의 식수를 공급한다고 한다. 댐 아래쪽에는 공원도 넓게 만들어져 있었다. 마침 해가 지면서 흰 꼬리를 끌고 비행기가 느릿느릿 날아가고 있었다.

 


저녁은 이곳이 고향이라는 한 분의 소개로 장흥군청 앞에 있는 '신녹원관'에서 한정식으로 했다. 한 상 가득 차려나온 음식이 푸짐했다. 1인당 2만원짜리 상이었다.맛이 특별나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남도의 음식은 몸과 마음을 흐뭇하게 했다.

보성에 있는 '다비치콘도'에서 여장을 풀었다. 무척 피곤했다. 그래도 그냥 잘 수 없어 소위 월남뽕이란 걸 하며 한 바탕 웃었다. 이번 여행에 함께 한 분들은 다들 조용한 분들이시어 동질감이 들었다. 대신에 속마음까지 통할지는 좀더 지내봐야 알 것 같다. 일행 중 한 분이 MB와 코드가 맞는다고 해서 작은 논쟁이 있었고 그 뒤로 정치적 얘기에는 입을 다물게 되었다. 상호간에 현실에 대한 견해 차이가 있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로 인해 서로 고개를 끄덕여주는 사이가 되지 못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일어나 보니 숙소가 바로 바닷가에 있었다. 여기가 율포해수욕장이라고 한다. 다들 늦잠을 자는 바람에 바닷가는 산책도 해보지 못했다.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이승훈 선수가 스피드 스케이트 1000m에서 금메달을 땄다는 소식이 반가웠다.

 



'대한다원'이라는 녹차밭을 찾아가서 둘레를 한 바퀴 산책했다. 이른 시간이라 우리 일행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녹차밭도 좋았지만 삼나무길도 인상적이었다. 몇 년 전 강진에 있는 어느 절의 주지 스님이 이런 충고를 주셨다. 녹차나무에다 농약을 너무 치니까 절대 녹차를 마시지 말라는 주문이었다.스님 말로는 두려우니까 아무도 보지 않는 밤에 농약을 살포한다는 것이었다. 난 원래 녹차가 맞지 않아 마시지 않지만 그 말이 얼마나 사실인지는 지금도 궁금하다.어느 자리에서 그런 얘기를 했더니농약을 치긴 하겠지만 인체에 유해한 정도는 아닐 것이라는 게 사람들의 추정이었다. 아주 긍정적인 한 분은 요사이 농약은 비만 내려도 다 용해되어 버리기 때문에 아무 문제 없다는 거였다.

 


벌교로 가서 '외서댁 꼬막나라'에서 꼬막정식으로 늦은 아침을 먹었다.그리고 '조정래 태백산맥 문학관'에 들렀다. 전에 벌교로 답사를 왔을 때는 없었던 것이었다. 이제 개장한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무척 깨끗했다. 그러나 아직은 보조 자료나 내용이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태백산맥'의 16,500 매 육필원고지다. 경건해지기까지 하는 정신의 탑이었다.

 



벌교는 마침 장날이었다. 도로 양쪽으로 할머니들이 들고나오신 농어산물들이 가득했다. 장구경 하는 재미를 즐기기에는 할머니들의 행렬이 마음 아팠다. 이것 또한 농촌의 현실을 드러내주는 단면일 것이다. 일행은 참다래를 한 바구니씩 샀다.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송광사(松廣寺)였다. 여행에서 무엇을 보고 경험하는가는 함께 하는 일행이 누구냐에관계되는 경우가 많다. 대개는 마음이맞는 사람들끼리 여행을 떠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피곤해지기도 한다. 나 또한 다른 사람에게 어떨지 비칠지 경계하지만 피해를 주지 않는다고 장담하지 못한다.

 

오후 1시에 고속도로에 들어서서 다섯 시간이 걸려 서울에 도착했다. 몸은 녹초가 될 정도로 힘들었다. 계속 운전대를 잡았던 B 형은 눈에 충혈이 생겼다. 서울에서 1박 2일의 남도 여행은 아무래도 무리가 되는 것 같다. 이번 경우도 제대로라면 3박 4일은 되어야 하는 코스였다. 더구나 '낙엽'이 아니었는가. 여행에서 '멀리 많이'의 올림픽(?) 정신은 지양해야 되겠다.그러나 아무리 다짐해도 혼자가 아니라면 앞으로도 어쩔 수 없을 것 같다. 그래도 이렇게 다닐 수 있음에 감사하는 마음이 더 큰 것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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