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나침반

장자[104]

샌. 2010. 1. 27. 17:51

그대는 듣지 못했는가?

연나라 수릉의 소년이

걸음걸이를 배우러 조나라의 서울 한단에 갔는데

한단의 걸음걸이를 배우기도 전에

옛 걸음걸이를 잊어버려

엉금엉금 기어서 돌아왔다는 것을!

 

且子獨不聞

壽陵餘子之

學行於한鄲與

未得國能

又失其故行矣

直匍匐而歸耳

 

- 秋水 10

 

여치의 아름다운 목소리를 닮고 싶은 당니귀가 있었다. 살펴보니 여치는 항상 아침 이슬만 먹으며 사는 것이었다. 어리석은 당나귀는 이슬에서 맑은 소리가 나오는 줄 알고 자신도 이슬을 먹으며 여치를 닮고자 했다. 결국 당나귀는 뼈만 앙상해지다가 결국은 죽고 말았다. 이솝 우화에 나오는 이야기다.

 

장자의 세계는온갖 차이와 다양성이 공존하는 장이다. 크면 큰 대로, 작으며 작은 대로, 잘났으면 잘난 대로, 못났으면 못난 대로, 여치는 여치대로, 당나귀는 당나귀대로, 각각의 개성과 의미가 있다. 그 세계에서 차이는 있지만 가치의 우열은 없다. 그러나 인위적으로 특정의 가치를 우위에 놓고 지향하게 될 때 평화가 깨지고 혼란이 일어난다. 그것이 유위(有爲)의 세계다. 여기서 수릉의 소년으로 비유를 한 의도도 그렇지 않은가 싶다.

 

지금 세계는 신자유주의라는 틀로 획일화되고 있다. 모든 나라들이 수릉의 소년처럼 한단의 걸음걸이를 배우려 한다. 아니 강요 당한다는 편이 맞을 것이다. 세상을 살아가는데는 여러 걸음이 있을 수 있다. 그중에서 한단의 걸음걸이는 경제적 이(利)와 자본의 논리에 따라 움직이는 걸음걸이다. 하나같이 이 걸음걸이를 따른다면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하고야 말 것이다. 한단의 걸음걸이를 배우려다 본성마저 잊어버린 수릉의 소년이 주는 교훈을 잊어서는 안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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