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고향에서 보낸 행복한 날들

샌. 2010. 1. 18. 11:42


아흐레 동안 고향에서 지냈다. 왜 그런지 고향집에만 가면 두문불출, 꼼짝하기가 싫다. 내려와서 연락하지도 않는다며 마땅찮게 보는 친구도 있지만 내 체질이 그러니 어쩔 수 없다. 그래도 이번에는 어머니와 이모를 모시고 대구에도 다녀오고, 하루는 인근 지역으로 나무를 보러 나가기도 했다. 그 외의 나머지 날들은 말 그대로의 은둔생활을 했다. 더구나 겨울이니 사랑방 안에서만 숨어있었던 셈이다. 고향에는 어머니 홀로 계시니 군불을 때는 사랑방이 유일한 생활공간인 것이다. 거실이나 다른 방은 냉기를 면할 정도로만 기름보일러가 돌아간다.


하루 생활은 무척 단조롭다. 아궁이에 장작으로 불을 지피고 이른 저녁을 먹고 나면 이불을 펴고 눕는다. 일찍 이불을 펴두어야 방이 덜 식기 때문이다. 라디오를 켜놓고 누워서 어머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의 코 고는 소리가 들린다. 그러면 엎드려 책을 보기도 하고 가만히 라디오에 귀를 기울이기도 한다. 라디오는 어머니의 친구이고 채널은 MBC에 고정되어 있다. 그러다가 저녁 8시가 넘으면 어머니는 자동으로 잠을 깨신다. KBS TV에서 하는 ‘다함께 차차차’라는 일일연속극을 보셔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어머니가 보시는 유일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이다. 다른 집들은 하루 종일 TV를 켜놓고 살기도 하는데 어머니의 이런 모습은 나로서는 참 다행이다. 요사이 정신이 돌아온 남자 주인공이 어느 여자한테로 갈지가 궁금한 상황이라는 것은 어머니로부터 중계를 들어서 알고 있다. 뉴스와 일기예보까지 본 다음에는 완전히 잠자리에 든다.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은 7시 근방이다. 그러고 보니 아홉 시간은 자는 것 같다. 어머니나 나나 잠이 매우 많다. 어머니 혼자 계실 때는 새벽에 잠이 깨서 라디오와 친구 하신다는데 내 잠을 방해할까봐 그러시는지 해가 뜰 때까지도 가만히 누워 계신다. 아침이면 집 주위에서 참새 소리가 요란하다. 지붕 아래 추녀 사이에 집을 만들고 사는 참새가 많다. 예전 같으면 잡기도 했을 텐데 요사이는 그냥 두니 숫자가 많아질 수밖에 없다. 어머니가 먼저 일어나셔서 장작불을 피우고 물을 데운 다음 아침밥을 준비하신다. 그동안에 나는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이불속에 그냥 누워 있다. 게으르고 호사스런 아침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하는 일은 다된 밥상을 방으로 들고 들어오는 것뿐이다. 미안하긴 한데 왜 그런지 불효라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는다.


이번에 있으면서는 어머니와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주로 어머니가 젊었을 때 고생했던 얘기들이다. 겨울에 하루 종일 가마 타고 시집온 일, 옛날에 추웠던 겨울 이야기, 친척들의 근황, 이웃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작년에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홀로 남은 어머니의 외로움 때문인가, 어머니와 함께 한 시간이 이번처럼 많았던 때는 처음이었다. 아침을 먹고 나면 대개 어머니는 이웃집에 놀러 가신다. 그러면 이때부터 저녁때까지는 온전히 혼자만의 시간이 된다. 어머니는 가끔씩 들락날락하시지만 주로 마을회관에서 시간을 보내신다. 늦은 아침과 이른 저녁 식사를 하니 중간에 점심은 없다. 할 일 없이 놀 때는 하루 두 번으로 충분하다.


따뜻한 아랫목에 누워서 빈둥거리는 것이 내가 하는 일의 전부다. 그 시간은 책 보는 것과 공상에 빠지는 것이 대부분이다. <생각의 역사>라는 두꺼운 책 한 권만 가져왔는데 진도가 잘 나가지 않는다. 차라리 읽기 편한 소설책을 준비할 걸 하는 후회를 한다. 밖에는 찬바람이 부는데 구들장에 배 깔고 누워서는 옛날처럼 만화책이나 무협지가 어울리겠다는 생각도 한다. 무료함은 무료함대로 그냥 즐기려 한다. 가능하면 아무 생각도 안 하려 하지만 생각이 떠오르면 떠오르는 대로 그냥 놓아둔다. 분명한 것은 지금 이 상태가 무척 행복하다는 것이다. 하는 일 없어도 시간은 잘 흘러간다. 어느덧 저녁때가 되고 나는 어머니를 기다린다. 그리고 어스름이 깔리면 나무를 들고 와 갈비로 불을 지핀다. 바싹 마른 나무는 작은 불쏘시개에도 금방 불길이 인다. 부지런한 어머니가 해 놓으신 땔감이 마당에는 가득 쌓여있다. 앞으로 오륙년은 넉넉히 땔 수 있는 양이다.


시골이지만 굴뚝에 연기가 나는 집은 몇 집 되지 않는다. 기름이나 연탄보일러를 쓰는 집이 많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밥 때가 되면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로 동네가 자욱했었다. 한 집에서도 불을 때야 하는 아궁이가 서너 개씩은 되었다. 그러니 전부 민둥산이 될 수밖에 없었다. 나무를 하기 위해서는 도시락을 싸가지고 먼 산까지 원정을 가야 했다. 그러나 지금은 바로 집 옆의 산도 나무로 우거져 들어가지를 못한다. 땔감은 지천으로 깔려있지만 하려고도 하지 않고 할 사람도 별로 없다. 세상 참 많이 변했다. 그래도 굴뚝의 연기가 주는 포근한 안식의 이미지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마을 사람들은 우리 집을 보며 아궁이를 없앤 걸 후회하고 굴뚝의 연기를 부러워한다.



이것이 고향에서의 하루 생활이었다. 나는 아무 일도 안 했음을 도리어 감사한다. 어느 날 낮에는 어머니가 심심하다면서 김치전을 부쳐 먹자고 하셨다. 그래서 어머니표 김치전으로 소주를 몇 잔 하기도 했다. 어머니표 김치전은 밀가루는 적고 온통 김치 범벅이다. 그래도 어머니가 해 주시는 음식은 투박하지만 입에는 딱 맞는다. 유년 시절의 입맛은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잊히지 않는 것 같다.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유년의 맛이 그리워지는 건 아닐까. 고향이란 그런 것이다. 비록 며칠간이지만 어머니와 함께 했던 행복한 날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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