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3/23 2

탄천을 산책하다

치과 진료를 받은 뒤 근처에 있는 탄천을 산책하다. 천변은 개나리가 만발하고, 나무는 연초록 색깔로 화사하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은 인간사의 일일 뿐, 자연은 어김없이 봄이다. 산책 나온 사람이 확실히 많아졌다. 코로나19가 바꾼 풍경이다. 멀리 나가지를 못하니 집 가까이서 하는 산책으로 대체한 탓이다. 이참에 우리 삶의 패턴을 바꾸어 보는 것은 어떨까 싶다. 천천히, 느리게, 덜 소비하고, 덜 움직이고, 욕심은 줄이고, 가족과 보내는 시간은 늘리는 방향으로 말이다. 탄천은 깔끔하게 단장이 잘 되어 있는 대신, 우리 동네 경안천과 달리 복잡하고 시끄럽다. 오래 살다 보면 누구든 제 사는 동네를 제일 편하게 여기게 되나 보다. 조금은 마음에 안 들어 하면서 한 시간여 산책하고 돌아오다.

사진속일상 2020.03.23

비밀번호 / 문현식

우리 집 비밀번호는 0000000 누르는 소리로 알아요 000 0000는 엄마 00 000 00는 아빠 0000 000는 누나 할머니는 0 0 0 0 0 0 0 제일 천천히 눌러도 제일 빨리 나를 부르던 이제 기억으로만 남은 소리 보 고 싶 은 할 머 니 - 비밀번호 / 문현식 착상이 빛나는 동시다. 도어락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의 리듬으로 엄마, 아빠, 누나, 할머니를 구별하는 예민함에 가족을 향한 사랑이 담겨 있다. 빨리 얼굴 보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면 도어락 소리에 그다지 신경 쓰지 않으리라. 그중에서 백미는 할머니를 향한 그리움이다. 제일 천천히 눌러도 제일 빨리 나를 부르던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눈이 침침해서 숫자판의 번호가 잘 안 보였을 것이다. '보 고 싶 은 / 할 머 니'라고 생전에..

시읽는기쁨 2020.0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