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대 7

남이 봐도 되는 일기

1. 찬바람 속을 걸으면 눈물이 쉴 새 없이 나온다. 손수건 꺼내는 걸 잠깐 잊으면 볼을 타고 목까지 흘러내린다. 내가 이렇게 눈물 많은 사람인지 예전엔 미처 몰랐다. 그런데 정작 울어야 할 때는 절대로 안 나온다. 외할머니 돌아가셨을 때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아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그러니 주책이다. 병원에 가보고 싶지만 의사는 분명 이렇게 말할 것이다. "노화 현상입니다!" 미세먼지를 막아주는 마스크처럼 눈물을 제어해 주는 투명 마스크는 없을까. 고령화 시대에 대박 상품이 되지 않을까 싶다. 2. "덧없이 흘러가는 세월 속에 천년의 세월을 살 것처럼 앞만 보고 살아왔는데.... 그렇게 멀리만 보이던 노년이었는데 세월을 나를 어느덧 노년으로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 초등 친구 카톡방에 ..

사진속일상 2018.12.12

겨울 갈대

누가 갈대를 연약하다 했는가. 찬바람 쌩쌩 부는 겨울 강변에서 몸 굽히지 않고 제 형태 온전히 지켜내는 것은 갈대밖에 없다. 봄에 올 새싹들에게 자리 물려줄 때까지 굳건히 당당하게 서 있는 것이 갈대다. 한 생을 마감했지만 그 생을 견뎌낸 의지만은 청청히 살아 있다. 갈대는 흔들리고 또 흔들려서 더 강해진다. 글 한 편을 읽는다. 겨울 갈대밭에서 / 손광성 슬퍼하지 말자. 날카롭던 서슬 다 갈리고, 퍼렇던 젊은 핏줄 모두 잘리고, 눈, 코, 입, 귀, 감각이란 감각들 다 닫혀 버리고, 바람에 펄럭이는 남루를 걸친 채 섰을지라도, 슬퍼하지 말자. 찬물에 발목이 저린 이들이 우리들뿐이겠는가. 물방개 같은 것들, 잠자리며 철새 같은 것들, 친구들, 다정했던 이웃들, 그들이 칭얼거리다 간 빈자리에, 아무것도 줄..

꽃들의향기 2018.01.29

경안천 갈대밭

경안천 양안은 가을이 되면 갈대밭으로 변한다. 억새도 가끔 보이지만 대부분이 갈대다. 사람의 손이 미치지 않는 지역이니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군락인 것 같다. 천을 따라가며 규모가 아주 크다. 갈대는 단정치 못한 외모와 색깔로 볼품은 별로다. 만약 억새밭이었다면 훨씬 더 장관이었을 것이다. 경안천에도 군데군데 하천공원을 만들고 있다. 나무와 잔디 심고, 운동기구 갖다 놓는 식의 천편일률적인 모양새는 식상하다. 이곳에 공원을 만들 것이라면 이왕이면 갈대나 억새를 주제로 하면 좋겠다. 자연 생태계를 최대한 살리면서 갈대 사이로 오솔길을 낸다면 멋질 것 같다. 그리고 천변 둑을 볼 때마다 나무 없이 휑한 게 너무 아쉽다. 둑을 따라 미루나무를 심으면 어떨까. 포플러도 괜찮다. 옛날에 신작로를 따라 도열한 키다리..

꽃들의향기 2015.12.28

갈대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고 한 파스칼은 갈대를 직접 보기나 했는지 의문이다. 아니면 유럽의 갈대는 키 작은 다른 종류인지도 모른다. 갈대는 억세다. 잘못 만지면 잎에 손이 베인다. 연약한 상징으로 갈대를 말한 건 어울리지 않는다. 바람 부는 갈대밭에 서면 혁명가를 따르는 군중의 에너지가 느껴진다. 자유를 향한 노도, 온몸으로 외치는 함성이 들린다. 나에게 갈대의 이미지는 그렇다. 정호승 시인이 '갈대'라는 시에서, '나의 삶이 진정 괴로운 것은 / 분노를 삭일 수 없다는 일이었나니' 라고 읊은 심정과 비슷하다. 머리칼 풀어헤치고 "갈 데까지 가보자"라고 외치는 저항의 몸짓이다. 결코 서정적인 분위기는 아니다. 억새와는 느낌이 아주 다르다.

꽃들의향기 2015.12.02

신성리 갈대밭

서천군 한산면에 있는 신성리 갈대밭은 영화 ‘JSA’ 촬영지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해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금강 하구의 넓은 강물을 배경으로 강둑을 따라 6만여 평의 갈대밭이 펼쳐져 있다. 원래 이곳은 금강하구둑이 건설되기 이전에는 둑 안쪽의 논경지까지 드넓은 갈대밭이 있었다고 한다. 옛날 신성리 주민들은 갈대를 꺾어 빗자루를 만들어 쓰고, 장에 내다 팔아 생계를 꾸리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갈대밭은 예전에 비하면 많이 축소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주민들과는 이제 아무 관계없는 외지인들이 찾아오는 관광지로 변했다. 갈대밭 사이로는 관광객들을 위해 이러저리 길이 나있고, 찾아오는 사람들을 위한 여러 배려가 눈에 띈다. 갈대밭을 거닐며 사계절 어느 때라도 각 계절이 지닌 독특한 정취를 느..

꽃들의향기 2007.01.10

갈대 / 마종기

바람 센 도로변이나 먼 강변에 사는 생각 없는 갈대들은 왜 키가 같을까. 몇 개만 키가 크면 바람에 머리 잘려나가고 몇 개만 작으면 햇살이 없어 말라버리고 죽는 것 쉽게 전염되는 것까지 알고 있는지, 서로 머리 맞대고 같이 자라는 갈대. 긴 갈대는 겸손하게 머리 자주 숙이고 부자도 가난뱅이도 같은 박자로 춤을 춘다. 항간의 나쁜 소문이야 허리 속에 감추고 동서남북 친구들과 같은 키로 키들거리며 서로 잡아주면서 같이 자는 갈대밭, 아, 갈대밭, 같이 늙고 싶은 상쾌한 잔치판. 산등성이의 나무들도그러하다. 고르게 키를 맞추며 자라는 모습이 꼭 전지를 해 놓은 것 같아 신기하게 느낀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그들은 함께 살아나가는 지혜를 절로 터득하고 있는 셈이다. 그네들 세계에도 경쟁..

시읽는기쁨 2004.05.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