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망증 2

두고 온 것들 / 황지우

반갑게 악수하고 마주앉은 자의 이름이 안 떠올라 건성으로 아는 체하며, 미안할까봐, 대충대충 화답하는 동안 나는 기실 그 빈말들한테 미안해, 창문을 좀 열어두려고 일어난다. 신이문역으로 전철이 들어오고, 그도 눈치챘으리라, 또 다시 핸드폰이 울리고, 그가 돌아간 뒤 방금 들은 식당이름도 돌아서면 까먹는데 나에게 지워진 사람들, 주소도 안 떠오르는 거리들, 약속 장소와 날짜들, 부끄러워해야 할 것들, 지켰어야 했던 것들과 갚아야 할 것들; 이 얼마나 많은 것들을 세상에다가 그냥 두고 왔을꼬! 어느날 내가 살었는지 안 살었는지도 모를 삶이여 좀더 곁에 있어줬어야 할 사람, 이별을 깨끗하게 못해준 사람, 아니라고 하지만 뭔가 기대를 했을 사람을 그냥 두고 온 거기, 訃告도 닿을 수 없는 그곳에 제주 風蘭 한 ..

시읽는기쁨 2010.12.19

신발 소동

식당에서 나왔는데 내 신발이 없어졌다. 신발장에 하나 남아 있는 것은 영 낯설었다. 주인을 불러내고 일행 십여 명이서 소란을 부렸다. 범인은 먼저 나갔던 옆 테이블 손님들이 분명했다. 다행히 주인이 아는 사람들이라 해서 전화 연락을 취하느라 분주했다. 그러나 연결이 잘 되지 않았다. 멍청한 놈이라고 욕을 바가지로 했다. 마냥 기다릴 수 없어 남의 것이지만 신고 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발에 넣는 순간 느낌이 이상했다. 이런 아뿔싸, 내 신발이 아닌가!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계속 오리발을 내밀 수밖에 없었다. 안 그러면 그 동안의 소동을 감당하기 힘들었다. 친구들한테는 또 얼마나 실없는 놈으로 낙인찍힐 것인가. 도망가듯 자리를 떴다. 그런데 어디에나 의리파가 있기 마련이다. 친구들은 대책을 세..

길위의단상 2010.1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