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 5

어머니와 고추를 심다

고향에 내려갔더니 마침 고추 모종이 도착해 있었다. 맞춘 건 아닌데 묘하게 때가 맞아 어머니 일손을 덜어줄 수 있었다. 특히 고추 지주대를 세우는 작업은 노모가 하기에는 힘에 겨워서 타인의 도움이 필요한 터였다. 어머니 농사는 올해 변곡점을 맞았다. 산을 넘어가야 하는 멀리 있는 밭의 들깨 농사를 그만둔 것이다. 어머니는 서운할지 모르겠지만 자식 입장에서는 걱정 하나를 덜어낸 셈이다. 아흔 넘은 노인이 산비탈을 오르내리며 농사를 짓는 게 불안했기 때문이다. 이제 집 가까이 있는 밭만 남았다. 여기에 고추 300포기를 심었다.   모판에서는 파릇파릇한 벼 새싹들이 자라고 있고,  고향집에는 올해도 어김없이 제비가 찾아왔다. 마을에서 우리집에만 유일하게 제비가 찾아온다. 작년, 재작년에 쓰던 옛 집이 고스란..

사진속일상 2024.05.02

고추 따고 벌초하고

고향으로 노모를 뵈러 가는 마음이 편치 않다.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것 같다. 자꾸 일이 뒤엉키니 어찌할 길이 없이 착잡하다. 휴게소마다 들러 화장실을 들락거려야 했다. 마침 내려가는 때가 고추 따는 시기와 맞물렸다. 어머니의 고추 농사라야 200포기밖에 안 된다. 전에 비하면 1/5로 줄었다. 아들보다는 거드는 일손이 생긴 것에 어머니는 기뻐하신다. 올해 고추는 풍년이다. 튼실한 고추가 가지 사이에 너무 빽빽하게 달려 있어 빼내는 데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이것도 노동이라고 두 시간여 두 물째의 고추를 땄더니 양손의 엄지손가락이 아프다고 비명을 지른다. 오후에는 어머니와 함께 선산의 벌초를 했다. 개망초로 덮여 있었는데 뽑아내니 깔끔해졌다. 이렇게 일 할 줄은 모르고 내려왔는데 고되지만 끝나고 나니 ..

사진속일상 2021.08.15

태양초

고향에 계신 어머니는 굳이 태양초만을 고집하신다. 요즈음은 대부분 건조기를 사용해서 힘들게 햇볕으로 고추를 말리는 수고를 하지 않는다. 어지간한 집에는 고추 건조기를 다 갖추고 있다. 뙤약볕 아래서 고추를 따는 일도 고되지만, 고추를 말리는 것도 보통 정성이 들어가는 게 아니다. 8월 한 달 내내 고추를 따고 말리는 과정이 반복된다. 올해의 불볕더위가 고추 말리는 데는 아주 제격이다. 비라도 며칠 내리면 고추는 불을 땐 방으로 모셔야 한다. 그러면 시간도 오래 걸리고 고생도 그만큼 더 늘어난다. 고추를 말리는 데는 어머니만의 노하우가 있다. 바깥에서 말린 고추는 비닐하우스로 들어갔다가 다시 밖으로 나온다. 그 타이밍은 감으로 판단하는데도 거의 완벽하다. 건조되어 바삭거리는 고추를 보면 작품이라 아니 할 ..

사진속일상 2013.08.15

고추 심기

고향에 내려가 고추 심는 어머니 일을 거들었다. 어머니가 미리 골을 내어 비닐을 씌어놓았기에 고추를 심고 지주를 세우는 일만 하면 되었다. 올해는 고추모 800포기를 심었는데 해마다 양이 조금씩 줄어든다. 어머니가 감당할 수 있는 체력이 점점 약해지는 탓이다. 한창 많았을 때는 2,000포기 가까이 키웠다. 어머니가 농작물을 가꾸는 정성은 자식을 기르는 이상이다. 마을의 이웃들도 감탄할 정도다. 홀로 되셔서 삶의 낙을 농사일에 붙이셨다. 작물 가꾸는 게 자식 키우는 것과 똑같다고 말씀하신다. 힘이 들어도 얘들이 자라는 걸 보면 보람이 있고 재미있다신다. 또 정성이 그만큼 들어가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놀아도 밭에 나와 놀아야 한다며 하루도 밭 출입을 거르는 일이 없다. 어머니가 고추모를 만지는 모습을 ..

사진속일상 2012.05.08

태양초

고추를 말리는 어머니의 정성은 극진하시다. 요사이는 고추 농사가 힘들다고안 하는 집도 많고, 하더라도 고추 말리기가 고생이라며 건조기 신세를 지는 게 보통인데 어머니는 억척스레 전통적인 방법으로 태양초를 만드신다. 빨갛게 익은 고추를 따오면 물로 깨끗이 씻은 다음 물기를 제거하고 비닐하우스에서 부직포를 덮고 며칠간 말린다. 어느 정도 색깔이 익으면 다시 마당에서 완전히 말린다. 날씨가 좋지 않을 때는 방으로 들어가기도 한다. 고추 수확이 시작되는 8월 초부터 한 달 반 동안 고향집 마당은 늘 붉은 고추로 덮여 있다. 지금 농촌에서도 이렇게 정성을 들여 고추를 말리는 집은 보기 어렵다. 도시 사람들이 태양초라고 사 먹는 고추도 대부분 기계에서 말린것이다. 심지어는 태양초로 보이기 위해 고추 꼭지를 물에 불..

사진속일상 2009.09.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