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6

혼자 사는 사람들

진아는 타인과의 관계 맺기에 어려움을 겪는 여자다. 혼자 살면서 집과 회사(카드 회사 콜센터 직원)만을 오가는 생활을 한다. 동료들과 대화도 없고, 점심도 외딴 식당에서 혼자 먹으며, 출퇴근 때는 이어폰을 끼고 휴대폰 화면만 본다. 휴대폰에 집중하는 것은 나에게 가까이 오지 말라는 신호와 같다. 외부와 단절된 삶이 편하기 때문이다. 이런 패턴에 균열을 일으키는 사건 두 가지가 생긴다. 하나는, 신입사원 수진을 1:1로 연수를 시켜야 하는 일로 진아에게는 너무 부담스러운 것이었다. 붙임성 좋은 수진에게 매몰차게 대하지만, 솔직하고 관계를 중시하는 수진을 보며 진아의 마음에는 미묘한 파장이 인다. 다른 하나는, 홀로 사는 옆집 남자가 고독사한 지 일주일 만에 발견된 사건이다. 뒤이어 입주한 남자는 떠난 사람..

읽고본느낌 2023.12.26

기대 없음의 행복

인간관계에 연연하지 않는 편이지만, 그렇다고 사람들과의 교류를 무시하고 살 수는 없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대로 인간은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서 존재의 의미를 찾기 때문이다. 다중(多衆)보다는 고독이라고 되새김질하는 자체가 이미 관계의 중요성을 보여주고 있다. 인간에게는 인간의 따스한 온기가 필요하다. 진화생물학적으로 볼 때 인간의 DNA에는 무리와 함께 어울려 살아가도록 하는 본능이 내재되어 있다고 한다. 원시시대에는 야생 상태에서 혼자 떨어져 있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했다. 생존을 위해서는 홀로 있으면 스트레스가 작동하도록 하는 명령어에 불이 켜지는 것은 당연했다. 인간은 공동체 안에서 함께 생활할 때 기본적으로 기쁨을 느낀다. 야생의 위험이 사라진 지금도 인간은 소속감을 통해 안전과 위안을 ..

참살이의꿈 2022.09.21

그럴 때가 있다 / 이정록

매끄러운 길인데 핸들이 덜컹할 때가 있다. 지구 반대편에서 누군가 눈물로 제 발등을 찍을 때다. 탁자에 놓인 소주잔이 저 혼자 떨릴 때가 있다. 총소리 잦아든 어딘가에서 오래도록 노을을 바라보던 젖은 눈망울이 어린 입술을 깨물며 가슴을 칠 때다. 그럴 때가 있다. 한숨 주머니를 터트리려고 가슴을 치다가, 가만 돌주먹을 내려놓는다. 어딘가에서 사나흘만에 젖을 빨다가 막 잠이 든 아기가 깨어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촛불이 깜박, 까만 심지를 보여주었다가 다시 살아날 때가 있다. 순간, 아득히 먼 곳에 불씨를 건네주고 온 거다. - 그럴 때가 있다 / 이정록 시인이 올해 교직에서 명퇴를 하고 '이발소'를 개업했다는 보도를 보았다. "웬 이발소? "라고 의아해했는데 '이야기발명연구소'의 줄임말이란다. 그리고 명..

시읽는기쁨 2022.09.08

어려운 인간관계

얼마 전에 남한산성에서 멧돼지와 마주친 적이 있다. 의자에 앉아 쉬고 있는데 아래쪽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뭘까, 하고 지켜보고 있었는데 멧돼지 한 마리가 불쑥 나타나서 눈이 마주쳤다. 10m 앞쯤 되었을까, 놀란 건 나보다 멧돼지였다. 멧돼지는 후다닥 달아났고, 그 뒤로 새끼 세 마리가 뒤따랐다. 멧돼지 가족은 요란한 발걸음 소리를 남기고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만약 멧돼지가 아니고 사람이 갑자기 나타났다면 어땠을까. 아마 멧돼지보다 훨씬 더 무서웠을 것이다. 무슨 해코지를 하지나 않을지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여자 입장에서는 공포감이 더 클 것이다. 산속에서 제일 무서운 동물은 사람이라 할 수 있다. 멧돼지는 사람을 해치기보다 십중팔구 제가 먼저 도망간다. 그러나 사람이라면 어떤 흑심을 품을지 ..

참살이의꿈 2019.01.18

금붕어 길들이기 / 이안

처음엔 풀 밑으로 숨기 바빴지 한 번 주고 두 번 주고 며칠 지나니 이제는 살랑살랑 마중을 오네 먹이 몇 번 주었을 뿐인데 금붕어와 나 사이에 길이 든 거야 길든다는 말 길들인다는 말 금붕어와 나 사이에 길이 든다는 거였어 살랑살랑 길을 들인다는 거였어 - 금붕어 길들이기 / 이안 어린왕자는 여우를 만나서 '길들인다'는 게 뭔지 묻는다. 길들여져 있지 않아서 같이 놀 수 없다고 여우가 말했기 때문이다. 여우는 이렇게 말한다. "그건 '관계를 맺는다'라는 뜻이야. 넌 아직 나에게는 다른 수많은 꼬마들과 다를 바 없는 한 꼬마에 불과해. 그러니 나에겐 네가 필요없어. 또한 너에게도 내가 필요없겠지. 난 너에겐 수많은 다른 여우와 똑같은 한 마리 여우에 지나지 않아. 하지만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우리는 서로를..

시읽는기쁨 2016.08.09

사이 / 박덕규

사람들 사이에 사이가 있었다 그 사이에 있고 싶었다 양편에서 돌이 날아왔다 - 사이 / 박덕규 흔히 부부를 일심동체라고 하는데 어떻게 보면 참 무지막지한 말이다. 두 인격체가 같은 마음, 한 몸이 된다는 것은 기계나 로봇이 아니고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심동체가 꼭 이상적 관계만도 아니다. 한자로 '人間'은 '사람 사이'라는 뜻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당연히 사이가 있어야 한다. 그 사이로 바람이 지나고 물소리가 들려야 한다. 사람 살기의 어려움은 결국 '사이', 즉 관계를 어떻게 맺느냐에 달려 있다. 시인이 말하는 '사이에 있기'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이쪽 저쪽 편가르기를 하는 세상의 견해에 매몰되지 않고 자신을 지켜나가는 삶을 말하는 것일까? 세상의 비웃음이나 돌팔매 쯤 무시해 버릴 ..

시읽는기쁨 2008.08.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