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어려운 인간관계

샌. 2019. 1. 18. 13:33

얼마 전에 남한산성에서 멧돼지와 마주친 적이 있다. 의자에 앉아 쉬고 있는데 아래쪽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뭘까, 하고 지켜보고 있었는데 멧돼지 한 마리가 불쑥 나타나서 눈이 마주쳤다. 10m 앞쯤 되었을까, 놀란 건 나보다 멧돼지였다. 멧돼지는 후다닥 달아났고, 그 뒤로 새끼 세 마리가 뒤따랐다. 멧돼지 가족은 요란한 발걸음 소리를 남기고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만약 멧돼지가 아니고 사람이 갑자기 나타났다면 어땠을까. 아마 멧돼지보다 훨씬 더 무서웠을 것이다. 무슨 해코지를 하지나 않을지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여자 입장에서는 공포감이 더 클 것이다. 산속에서 제일 무서운 동물은 사람이라 할 수 있다. 멧돼지는 사람을 해치기보다 십중팔구 제가 먼저 도망간다. 그러나 사람이라면 어떤 흑심을 품을지 모른다.

 

인간 세상에서도 제일 어려운 게 사람 사이의 관계다. 주변을 살펴보라. 스트레스 대부분이 사람에게서 유래한다. 사람으로 인해 기쁨과 행복을 얻지만, 반대로 걱정과 원망 또한 사람한테서 온다. 그렇다고 마음에 맞는 사람과만 만날 수 없다. 싫은 사람과도 어찌할 수 없이 얼굴을 맞대야 한다. 좋아하는 사람은 못 만나 괴롭고, 싫은 사람은 만나서 괴롭다. 그게 인생의 고통이다.

 

모임 중에서 같은 취미를 공유하는 동호회는 괜찮다. 즐겁지 않다면 굳이 동호회에 소속될 이유는 없다. 최악은 동창 모임이다. 같은 학교를 다녔다는 인연으로 죽을 때까지 관계가 유지된다. 우리나라만큼 학연이나 혈연이 인간관계를 지배하는 사회도 드물 것이다. 친구들은 대부분 퇴직했다. 사회에서 잘 나가던 위세를 이제는 동창회에 나와 뽐낸다. 특히, 고등학교 동창 모임이 제일 심하다. 성질이 못돼서 그런지 고등학교 동창 모임에는 아예 안 나간.

 

나는 사교성이 부족하다. 시끌벅적한 분위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직장 생활을 할 때도 다중이 모이는 회식 자리는 괴로웠다. 은퇴를 한 뒤 제일 좋았던 게 의무적인 자리에 안 나가도 되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점점 사람들과 소원해지는 단점이 있다. 서울을 떠나온 뒤로는 더욱더 그렇다. 그래서 인간관계는 어려운가 보다. 가까움과 거리 두기 사이의 적절한 조화를 아직 찾지 못하고 있다.

 

최근에 한 모임에서 갈등이 있었다. 나는 바른 소리를 한다고 했는데, 모임에는 괜한 풍파를 일으켰다. 내가 느낀 소외감이 그런 반응을 유발한 것 같다. 사람에게서 멀어지는 데 대한 일종의 불안이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엉뚱한 데 화풀이를 한 셈이다. 문제는 나 자신인데 말이다. '불가근 불가원(不可近 不可遠)'의 균형점은 과연 어디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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