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미숙 선생의 글은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게 한다. 그중의 하나가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에 대한 반성이다. 누구나 정규직이 되기를 바란다. 이유는 안정된 생활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정된 직장은 역동적인 인간의 삶에 맞지 않는다. 그런 내용이 '정규직에 담긴 불편한 진실'이라는 글에 실려 있다.
이 글을 읽으며 기본소득을 다시 생각한다. 최소한의 생활 보장이 된다면 우리는 좀 더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이다. 굳이 정규직 직장에 목을 맬 이유가 없어진다. 갑질도 자연스레 사라진다. 각자는 해야 할 일이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 수 있다.
어쨌든 정규직만이 인생의 목표인 양 올인하는 젊은이가 적어졌으면 한다. 시야를 넓게 가졌으면 좋겠다. 인생에는 다양한 길이 있다.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의 내적 단단함이다. 세속적인 성공의 가치에 매몰되지 않았으면 한다. 선생의 글을 옮긴다.
'정규직'에 담긴 불편한 진실
인간은 원초적으로 '프리랜서'다. 프리랜서로 태어나 프리랜서로 죽는다. 태어나면서부터 직업이 정해져 있다면 그건 '신분사회'다. 알다시피, 근대 이전에는 그랬다. 귀족과 노비, 혹은 '사농공상'이 구별이 엄격하여 한번 농민으로 태어나면 대를 이어 농업에 종사해야 했다. 이건 실로 불공평하다. 농업이 나쁜 직업이어서가 아니라, 일방적으로 주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모순과 불평등을 극복하기 위해 인류는 참으로 많은 대가를 치렀다. 그 덕분에 지금은 누구도 이런 식으로 태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역사는 단선적으로 진행되지 않는가 보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의 최고 목표는 정규직이 되었다. 비정규직의 조건이 그만큼 열악하다는 뜻이겠지만, 그렇다고 정규직 자체가 모든 삶의 기준이 된다는 건 아무래도 이상하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몹시 불편하다. 어떤 일, 어떤 활동을 하고 싶다가 아니라 '정규직' 그 자체라니 이게 도대체 말이 되는가. 직업이란 단지 경제활동일 뿐 아니라, 생명의 정기를 사회적으로 표현하고 순환하는 행위이다. 따라서 단순히 돈과 지위로 환원되지 않는 삶의 가치들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 그런데, 일의 종류나 성격은 불문하고 무작정 정규직이라니. 이건 그냥 "비정규직은 죽어도 싫어요!"라는 절규에 가깝다. 이게 바로 '전도망상(顚倒妄想)'이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노동의 주체가 되기를 원한다. 누구도 남의 부림을 받으며 살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런데 하도 '정규직타령'을 하다 보니 이 원초적 본능을 망각하기에 이른 것이다.
아, 물론 더 '야무진' 이들은 의사, 변호사, 교사 등 소위 '사'자 들어가는 직업을 꿈꾸기도 한다. 하지만 여기에 담긴 욕망은 더 가관이다. 정규직은 언제 짤릴지 모르니 평생이 보장되는 직업을 갖겠다는 것이다. 치유와 정의, 교육의 기쁨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의사는 사람의 목숨을 다루는 직업이다. 변호사는 법을 다루는 직업이고, 교사는 사람을 키우는 직업이다. 한마디로 다수 대중의 삶에 깊이 개입하는 직업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단지 안정을 위해서 그걸 선택한다고? 대체 얼마나 불안하면 이런 지경에 이르렀단 말인가?
하지만 잘나가는 정규직이건 '사'자가 들어간 직업이건 프리랜서의 운명을 피할 도리는 없다. 디지털 혁명의 시대에 '안전한 영토'는 없다. 우주의 원리로 따져보면 더더욱 그렇다. 현대과학의 전언에 따르면, 우주의 에너지 가운데 우리가 잘 아는 물질은 단지 4퍼센트에 불과하다. 24퍼센트는 암흑물질이란다. 나머지는 말할 것도 없다. "암흑에너지는 우주 총 에너지의 무려 72퍼센트를 차지하며 우주의 팽창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이석영, <모든 사람을 위한 빅뱅우주론 강의>). 요컨대 우리는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훨씬 더 많은 우주에 살고 있는 셈이다. 그러니 개별 인생에도 얼마나 많은 변수들이 존재하겠는가. 인간이 원초적으로 프리랜서라는 건 이런 이치에서다.
프리랜서는 말 그대로 '길 위의 인생'이다. 어떠한 조직과 직위 보장도 없지만 그렇기에 매 순간 자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표현할 수 있다. 욕망과 능력의 일치! 그래서 자유롭다. 하여, 나는 늘 궁금하다. 정규직은 과연 자신 안에 이런 열망이 들끓고 있다는 것을 알기나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