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둔해지면 좋겠다

샌. 2019. 2. 10. 11:24

첫째, 위와 장이 둔해지면 좋겠다.

 

나는 위와 장이 너무 예민하다. 우선, 찬 것과는 상극이다. 냉 음료는 아예 못 마신다. 한여름에도 냉커피를 마셔본 적이 없다. 바로 배탈이 난다. 먹는 것만 아니라 복부에 냉기만 닿아도 반응이 온다. 에어컨을 켤 때는 배를 담요로 감싸야 한다. 이런 위장이니 정신적 스트레스에 약할 수밖에 없다. 신경 쓰는 일이 생기면 속이 부글거리고 소화가 안 된다. 병원에서는 과민성 대장 증상이란다. 젊을 때부터 나를 괴롭힌 병이다. 사는 데 애로사항이 많다. 이젠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는데 위와 장도 좀 둔해지면 좋겠다.

 

둘째, 소음에 둔해지면 좋겠다.

 

나이를 먹을수록 소리에 민감해진다. 소음을 견디지 못한다. 원래 조용한 걸 좋아하지만 퇴직하고 난 뒤부터 더 심해졌다. 조용히 혼자 있는 생활에 습관이 된 것 같다. 내 평정을 깨뜨리는 대부분은 소리에서 온다. 아파트에 사니 층간 소음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내가 유독 심하게 반응하는 편이다. 똑같은 조건에서 아내는 별로 개의치 않지만 나는 엄청 스트레스를 받는다. 한 번 신경이 쓰이면 도저히 내 일에 집중할 수 없다. 귀는 밝아지는 데 눈은 자꾸 침침해지니 거꾸로 되어가고 있다. 제발 나도 소음에 둔해지면 좋겠다.

 

셋째, 남 꼴에 둔해지면 좋겠다.

 

꼰대가 되어가는 증거인가 보다. 마땅치 않은 남 꼴을 보아 넘기지 못한다. 공중도덕을 안 지키거나 무례한 사람을 보면 부아가 솟는다. 뭐 저런 인간이 다 있나, 싶어서다. 예를 들면, 지하철에서 큰 소리로 전화 통화하는 사람을 보면 눈꼴사납다. 표현은 못 하고 혼자 속만 끓인다. 타인의 삶에 간섭하는 것도 싫고, 내가 간섭받는 것도 싫다. 소리 자체보다 남에게서 방해받고 있다는 생각이 나를 힘들게 한다. 남이야 콩으로 메주를 쑤든 된장국을 끓이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타인의 꼴에 둔해지면 좋겠다.

 

이렇게 넋두리를 늘어놓다 보니, 세상이나 타인을 대하는 내 '너그러움'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 바깥에 원인이 있지 않다. 가끔 단지 안에 있는 헬스장에 나가는데, 실내에서 떠드는 사람이 있으면 짜증이 난다. 그런데 어제는 아내가 이웃을 만나 수다를 떠는 데도 별로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모르는 사람과 아는 사람의 차이밖에 없었다. 소리나 행위 자체가 아니었다. 불편했던 건 그가 모르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위층에서 손주가 놀고 있다면 나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결국, 타인을 대하는 내 옹졸한 성격 탓이다. 나에게는 관대하지만 타자에게는 엄격하다. 타자를 향한 화풀이는 결국 나에게로 돌아온다. 위 세 가지 희망 사항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내 마음을 어떻게 쓰느냐에 달린 문제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마음 보따리도 타고 나는 것임을 잘 안다. 이때껏 살아온 습(習)이 하루아침에 변하겠는가. 연민의 정으로 나를 바라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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