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 70

남한산성을 일주하다

셋이서 남한산성을 일주했다. S, Y, 두 형과 남문에서 시작하여 시계방향으로 한 바퀴 돌았다. 나무와 풀꽃 공부를 하면서 느릿느릿 걸었더니 4시간이 걸렸다. 사흘 연속으로 퍼붓던 비가 아침부터 그쳤고 간간이 햇빛이 나왔다. 남한산성에 오면 옛 생각이 많이 난다. 40대 때 제일 많이 찾은 산이 남한산성이었다. 들꽃을 배운 산도 남한산성이었다. 남한산성에 난 모든 길은 대부분 다 걸어보았을 것이다. 또 남한산성을 지나는 길을 따라 드라이브 하는 걸 즐겼다. 비 오는 날이면 더욱 그랬다.남한산성 곳곳에 개인적 추억이 어려 있다. 남한산성에 서어나무가 많이 자라는 줄 이번에 처음 알았다. Y의 얘기로는 앞으로 서어나무가 점점 더 번성할 것이라고 한다.이것이 서어나무 열매다. 성 옆에 있는 병암남성신수비(屛岩..

사진속일상 2011.07.29

남한산성 향나무

남한산성 수어장대 옆에 청량당(淸凉堂)이라는 작은 사당이 있다. 조선시대 때 장군 이회(李晦)와 그 부인의 넋을 기리는 사당이다. 인조 2년(1624)에 남한산성을 대대적으로 증축하게 된다. 이때 이회는 성 남동쪽의 가장 험한 구간을 맡았는데 기일 안에 완공을 하지 못하고 공사비도 과다하게 들어갔다. 이회는 감독을 부실하게 하고 공사비를 착복했다는 모함을 받고 서장대에서 참수형을 당했다. 서장대(西將臺)는 지금의 수어장대다. 공사비를 마련하러 나갔던 부인도 이 소식을 듣고는 한강을 건너오다가 투신 자살했다. 그러나 뒤에 이회의 죄없음이 밝혀지게 되는데 부부의 억울한 넋을 위로하고자 서장대 옆에 청량당이라는 사당을 세웠다고 한다. 이 청량당 앞에 수령이 400 년 가까이 된 향나무가 있다. 시기로 보아서 ..

천년의나무 2010.12.16

용주사 범종

경기도 화성시 화산(華山) 기슭에 자리잡고 있는 용주사(龍珠寺)는 1790년에 정조 임금이 아버지인 사도세자의 능을 이곳으로 옮긴 후 명복을 빌기 위해 세운 절이다. 원래 이 자리에는 신라 말기에 세워진 괄양사라는 절이 있었다고 한다. 용주사에는 국보 120호로 지정된 범종이 있다. 고려 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이 종은 겉면에 새겨놓은 조각이아름답다. 특히 구름 위에서 천의(天衣)을 휘날리며 날고 있는 비천상(飛天像)은 살아있는 듯 생생하다. 800여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여인의 표정이며 잘룩한 허리선은 여전히 아름답다. 허리 부분은 육감적인 느낌마저 든다. 내 눈에만 그랬던가, 어쨌든 뛰어난 조각솜씨에 감탄하게 되는 종이다. 그리고 부원들과의 마지막 나들이, 남한산성 수어장대에서.....

사진속일상 2010.12.11

은고개에서 남한산성에 오르다

어제는 새로운 길로 남한산성에 올랐다. 천호동에서 13번 버스를 타고 광주 은고개에서 하차했는데 이곳이 산행 들머리였다. 1년 만에 만난 Y 등 세 명과 함께 했다. 길은 괜찮은 편이었지만무척 힘이 들었다. 배낭 무게도 만만치 않았다. 자꾸 뒤로 처지는 바람에 산행 속도가 느려졌다.히말라야를 걸었던 사람이 왜 이러냐는 핀잔도 들었다. 좀 쉬엄쉬엄 갔으면 좋으련만 맨 앞에 선 일흔이 넘으신 H 선배는 잠깐이면 눈에서 사라졌다. 아침부터 따갑게 내리쬐는 햇볕에 걱정을 했는데 산에 드니 그늘이 지고 시원했다. 다행히 오후에는 구름도 햇빛을 막아주었다. 벌봉에서 점심을 먹을 때는 어찌나 산바람이 시원하게 불던지한기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그래도 걷는 중에 땀은 엄청나게 쏟았다. 여섯 시간이나 걸린 이번 산행 코스..

사진속일상 2010.07.29

남한산성에서 고골로 내려오다

대학 동기들 월례 산행으로 남한산성에 올랐다. 오래 전에 문정동에 살 때는 한 달에도 몇 번씩 오르던 남한산성이었는데 이사를 간 뒤론 뜸해졌다. 그것도 대부분이 차로 올라가 남한산성을 한 바퀴 도는 경우가 많았다. 이렇게 마천동에서부터 걸어서오르는 것은 참 오랜만이어서 길은 옛 추억에 젖게 했다. 초등학생이었던 아이들을 어르고 달래며 억지로 데리고 다녔던 길이기도 했다. 산성을 반 바퀴 돈 후 산성두부집에서 두부전골로 뒤풀이를 한 뒤에 헤어졌다. 힘들어 하는 일부는 버스로 내려가고, 나는 가보지 않은 길을걷기 위해 북문에서 고골로 내려가는 방향을 잡았다. 이 길은 하남으로 향하기 때문에 사람들의 통행이 거의 없는 조용한 길이다. 길도 완만한 흙길로 걷기에 무척 부드럽고 좋았다. 우리나라만 해도 아직 가 ..

사진속일상 2009.08.22

남한산성 이승만기념식수 전나무

전나무는 젓나무로도 불린다. 줄기에 상처가 나면 흰 즙액이 나오는데 이걸 '젓'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원래는 '젖'이었을 텐데 뒤에 '젓'과 '전'으로 변한 것으로 보인다. 남한산성 수어장대 마당 귀퉁이에 눈길을 끄는 전나무가 있다. '리대통령 각하 행차 기념식수'라 적힌 표지석이 있는 나무다. 뒷면에는 '단기 四二八六년 九월 六일'이라고 적혀 있다. 그러니까 1953년 9월 6일에 리대통령이 이곳을 방문하여 기념식수를 했다. 그렇다면 지금 이 나무의 나이는 60 살 정도가 될 것이다. 그 세월에 비하면 나무는 별로 크지 않아 보인다. 전나무하면 광릉수목원 들어가는 길과 오대산의 월정사에서 상원사로 가는 길 양편으로 늘어선 크고 멋진 나무들이 연상된다. 전나무는 크리스마스 트리로 쓰일 정도로 균형 잡힌 ..

천년의나무 2009.06.12

남한산성 남문 느티나무

남한산성 남문은 성남 쪽에서 올라가는 주출입문이다. 성곽 바깥쪽에 보호수로 지정된 네 그루의 오래된 느티나무가 있는데, 아쉽게도 이미 한계수명에 이른 나무도 있다. 다행히도 주변이 공원으로 조성되고 느티나무의 생육 조건도 좋아졌다. 남한산성 성곽은 인조 4년(1626)에 준공되었는데, 느티나무는 당시 성곽 사면의 토양 유실을 방지하면서 차폐의 목적으로 심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 느티나무들의 수명도 400 년 가까이 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남한산성 안쪽에는 오래된 느티나무들이 산재해 있지만 이렇게 성곽 바깥쪽에 있는 것은 남문이 유일하다. 아마 예전에도 가장 중요한 남한산성의 관문이었던 것 같다. 1636 년 겨울, 인조는 40여 일을 버티다가 결국은 삼전도에서 무릎을 꿇고 항복한다. 변변한 군사나 무기도..

천년의나무 2009.06.08

남한산성을 한 바퀴 돌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이다. 햇살은 따갑고 바람은 서늘하다. 남한산성 성곽을 한 바퀴 돌다.평상복에 운동화 차림이다. 두 시간 반이 걸리다. 남한산성을마지막으로 한 바퀴 돈 때로부터 거의 십 년이 되는 것 같다. 나로서는 서울 근교에서 가장 많은 추억이 묻어 있는 곳이 남한산성이다. 길 하나하나마다 옛 생각이 새롭다. 사람은 깨지면서 크는 것 같다. 성장은 반드시 고통을 수반한다. 사춘기의 성장통으로부터 시작하여 죽을 때까지 계속되는 과정이다. 그러므로 깨지고 부서지고 아픈 것은 인생의 양약이다. 그 맛은 쓰지만 결국은 우리를 진일보시키는 힘이 된다. 그 사실만 깨달아도 인생의 짐은 훨씬 가벼워지리라. 너무 생각이 많아도 탈이다. 좀더 가벼워질 것! 농담처럼 놀이처럼 그렇게 살 것!

사진속일상 2009.05.19

침괘정 느티나무

남한산성에는 멋진 노송들로 함께오래된 느티나무들도 여럿 있다. 느티나무들은 주로 행궁터 부근에 모여 있는데, 지금 행궁 복원 공사 때문에 가까이 갈 수 없어서 안타깝다. 그리고 공사장의 어수선함 때문에 나무 역시 몇 년 동안은 소음이나 차량 이동에 시달려야 할 것 같다. 마을에서 수어장대로 올라가는 초입에 침괘정이 있다. 침괘정은 백제 온조왕의 왕궁지였다는데 그건 믿기가 어렵고, 현재 건물은 영조 27년(1751)에 중수한 것이라고 한다. 침괘정은 무기 제작에 관계된 사무를 담당하던 곳이었다고 추정된다. 이 느티나무는 침괘정 마당 한 끝에 있는데, 안내문에는 수령이 200 년, 수고 19 m, 줄기둘레 1,4 m로나와 있다. 연륜이 그리 오래 되었다 할 수 없지만 부챗살 모양으로 뻗어난 가지들이 일품이다..

천년의나무 2008.03.09

남한산성의 가을꽃

명성산으로 억새 산행을 가는 동료들을 따라가지 못하고 혼자 남한산성 길을 걷다. 가을산은 한 달쯤 계절이 빨리 오는 것 같다. 산길에는 벌써 낙엽이 땅을 덮고 있다. 지나가는 바람에 마른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가금속이 닿은 것처럼 서늘하다. 산 위에서 고추를 안주로 막걸리 한 잔을 사 마신다. 가을 산길은 역시 혼자 걸어야 제 맛이 난다. 전에 남한산성 밑에서 살 때는 거의 매주 한 번씩 이 산을 찾았다. 크지 않은 산이지만 산의 구석 구석 모든 길이 발길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오랜 만에 찾으니 옛날 생각이 많이 나서 더욱 쓸쓸해진다. 여기는 현호색 군락이었고, 저기는 양지꽃이 예쁘게 피어있었었지. 또 산에 오기 싫어하는 아이들을 강제로 데리고오면 처음에는 투덜대다가 나중에는 얼굴이 밝아지곤 했었다. ..

꽃들의향기 2005.1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