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 70

아내와 남한산성 일주

휴일에는 바깥나들이를 거의 안 하는데 오늘은 달랐다. 축복의 날씨라고 해야 할까, 일 년에 몇 번 나타나지 않을 맑고 투명한 날이 열렸다. 대기는 상큼하고, 하늘은 티 없이 푸르렀다. 배낭을 꾸려 아내와 남한산성으로 나갔다. 오늘 같은 날은 남한산성 일주를 욕심내도 될 법했다. 늘 평일 산길만 걷다가 휴일에 나오니 남한산성 마을은 장날 같은 분위기였다. 그것은 내가 얼마나 혜택을 누리며 사는지를 말해주는 것이었다. 주변이 소란해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걷자고 다짐했다. 산성의 동문과 북문 사이는 성벽 보수 공사로 통제되고 있었다. 일주 거리인 9km를 걷는 데 약 4시간 30분이 걸렸다. 세 번이나 넉넉하게 쉬었다. 그래도 둘이서 같이 이만큼 걸을 수 있음이 다행이다. 아내는 무릎 이상으로 병원 치료를 받은..

사진속일상 2017.08.26

남한산성 반 바퀴

아내와 남한산성을 반 바퀴 돌았다. 중앙주차장에서 보건소 옆을 지나 성곽을 따라 반시계방향으로 걸어 개원사로 내려왔다. 함께 한 오랜만의 걸음이었다. 무더위가 한풀 꺾였다. 아침 저녁으로는 선선한 기운이 느껴진다. 그래도 한낮의 햇볕은 따갑다. 어제 비가 내리고 오늘은 전형적인 여름 날씨다. 대기는 미세먼지 걱정 없이 깨끗하고, 시야도 확 트였다. 서문 전망대에서는 서울 시내가 한 눈에 잡힌다. 아마 혼자 왔더라면 더 난이도가 있는 코스를 택했을 것이다. 그러나 둘이서는 이 정도의 걸음이 적당하다. 좀 더 훈련이 되면 이번 가을에는 도봉산에 도전해 볼 예정이다. 아내의 무릎이 염려되어 강행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 걸은 시간: 2시간 50분(휴식 40분) * 걸은 거리: 6.5km * 평균 속도: 2..

사진속일상 2017.08.11

남한산성에서 이성산성으로

하필 이 계절에 걷는 바람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그저 꾸역꾸역 긴 산길을 걷고 싶다. 오늘은 남한산성에서 북동 줄기를 타고 이성산성을 지나 하남까지 이르는 길을 택했다. 남한산성 부근에서 20년 가까이 살았다. 그래서 가장 많이 찾은 산이 남한산성이었다. 그때는 5호선 전철이 생기기 전이었다. 버스를 타고 거여동 종점에서 내려 남한산성을 오르내렸다. 가기 싫어하는 아이들을 억지로 데리고 다녔던 기억도 난다. 그 때문인지 어른이 된 지금까지 산을 싫어한다. 마천역에서 내려 옛날 길을 찾아 오른다. 길 모양은 그 시절과 많이 달라져 있다. 산길 오르는 중에 만난 뒷산 약수터 풍경. 가뭄 탓인지 약수터는 폐쇄되었다. 그러나 누군가가 매일 관리하는 듯 정갈하게 정돈되어 있다. 남한산성 약간 못 미쳐서 하남 덕풍..

사진속일상 2017.06.30

남한산성 노랑물봉선

남한산성에는 물봉선이 많다. 이맘 때는 산길 어디서나 물봉선을 볼 수 있다. 특히 개원사 뒤 산자락에는 300평 정도 되는 물봉선 군락지가 있다. 자연적으로 생겨난 꽃밭이다. 물봉선은 붉은색과 노란색이 많고, 가끔 흰색도 보인다. 그중에서도 노란색 물봉선이 제일 예쁘다. 화사한 노란색 꽃 안쪽에 붉은 점이 올올이 새겨져 있는 모습은 시선을 당기는 매력이 있다. 수수한 시골 아가씨를 보는 것 같다. 사진발도 상당히 잘 받는 꽃이다.

꽃들의향기 2016.09.22

큰꿩의비름

때가 지났지만 아직 예쁜 핑크색을 보여주고 있었다. 남한산성 성곽에 피어 있는 큰꿩의비름이다. 꿩의비름 꽃이 옅은 색깔인데 비해 큰꿩의비름은 선명한 붉은색이다. 한창일 때 보면 색깔이 고혹적일 정도로 곱다. 또한 수술이 꽃잎보다 길게 나오는 게 꿩의비름과 다른 특징이다. 남한산성의 성곽 돌 틈 사이에서 초가을을 장식해 주는 꽃, 큰꿩의비름이다.

꽃들의향기 2016.09.20

남한산성의 가을 하늘

태풍 말라카스(MALAKAS)가 먼 남쪽 바다를 지나면서 가을을 밀어올렸다. 비 뿌리고 바람 지나더니 파란 가을 하늘이 열렸다. 그 하늘을 맞으러 남한산성에 갔다. 청명(淸明)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날씨였다. 성곽을 돌면서 하늘바라기를 했다. 절로 콧노래가 나왔다. 만나는 사람들 표정도 하늘처럼 밝았다. "보세요, 하늘이 어쩜 이렇게 맑나요!" 누구나의 눈도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하늘 보고, 꽃 보고, 느릿느릿 산성 둘레를 반 바퀴 돌았다. 가을 햇살에 곡식 영글듯 내 마음도 설레며 익어간 하루였다.

사진속일상 2016.09.19

은고개에서 남한산 왕복

집요함에서 산모기를 당할 생물이 있을까? 오늘 산행은 산모기와의 싸움이었다. 입구에서부터 달라붙더니 산에 있었던 네 시간이 넘는 동안 줄기차게 달려들었다. 얼마나 지독한 놈들인지 하산한 뒤 차 안에까지 따라 들어왔다. 호젓한 산길을 걸으려 했는데 완전히 망쳐버렸다. 산모기가 달려들면 무시하려고 해도 안 된다. 피야 빨려줄 수 있지만 앵앵거리는 소리가 신경이 거슬려 산행 기분을 망쳐버린다. 모기 무게는 0.01g이나 될까, 덩치로 비교하면 백만분의 일도 안 되는데 두 손을 들 수밖에 없다. 동물을 만나면 집요하게 달라붙도록 설계된 그 속성이 감탄스럽기만 하다. 오늘은 한봉 가는 길이 헷갈려 몇 번 알바를 하다가 결국은 올라간 길로 되돌아왔다. 여러 차례 다닌 길을 찾지 못하다니, 이럴 때는 나이 든 것을 ..

사진속일상 2016.09.08

은고개에서 샘재로

제대로 배낭을 꾸려 산에 오르는 게 일곱 달 만이다. 몸 테스트를 할 겸 남한산성의 남북 종주 코스를 골랐다. 광주 은고개에서 하남 샘재까지 남에서 북으로 향하는 직선 길이다. 길이 12km에 다섯 시간 정도 걸린다. 토요일이라 사람이 많지 않을까 걱정했다. 산에서까지 사람들로 북적대는 건 싫다. 그러나 기우였다. 적막강산 속을 호젓하게 걸었다. 대신 산모기가 달라붙어 성가셨다. 이 계절에는 어쩔 수 없다. 네 시간이 지나니 많이 지쳤다. 작은 오르막도 4천 미터 히말라야를 걷는 것 같다. 집 뒷산은 두 시간 코스다. 여기에 적응되어 있는데 운동량이 두 배로 늘어나니 당연한 현상이다. 내년 초 밀포드 트레킹을 위해서는 체력을 차차 업그레이드시켜야겠다. 무거운 배낭에도 적응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나이가 들..

사진속일상 2016.05.29

남한산성 복수초

남한산성에서 복수초를 만나다. 성벽 바깥쪽을 걷다가 혹시나 했는데 노란 복수초가 있었다. 이미 잎이 많이 자란 만개 상태였다. 늘 사람으로 붐비는 남한산성 길옆에 복수초가 있다는 게 신기했다. 사진을 찍느라 생육 환경이 망가지는 건 어디나 마찬가지였다. 아예 카메라를 갖고 다니지 않는 게 그들을 도와주는 일이라는 걸 알지만, 예쁜 모습을 담고 싶은 욕망 앞에서 언제나 무너지고 만다. 그런데 봄꽃 중에서 제일 찍기 어려운 게 복수초다. 배경 정리가 너무 힘들다. 이제껏 한 번도 마음에 드는 복수초 사진을 찍어보지 못했다. 눈을 뚫고 핀 복수초를 만나지 않는 한 이런 실망감은 계속될 것 같다.

꽃들의향기 2016.03.29

남한산성 남문 느티나무(2)

남한산성은 인조 2년(1624)에 대대적인 개축을 시작했다. "옛 터를 따라 남한산성을 다시 쌓았다."라는 기록으로 보아 신라 시대의 주장성이 있던 곳이라는 게 정설이다. 2년 간의 공사 끝에 광주목이 남한산성으로 이전했고, 행궁도 완성되었다. 병자호란을 겪은 뒤 숙종 대에 다시 증축 공사를 했다. 길이 약 7.5km의 주 성곽과 외성, 옹성 등으로 되어 있고 네 개의 성문이 있다. 그중에서 한양을 오가는 주 통로가 남문이었다. 지금은 아래로 터널이 뚫렸다. 남문 앞에는 네 그루의 오래된 느티나무가 있다. 남한산성을 축조할 때 토사 유출을 방지하기 위해 심은 것으로 추정한다. 3백 년이 넘는 세월을 견딘 나무들이다. 병자호란 때 인조가 이 문으로 허둥지둥 도망 오던 광경을 본 나무도 있을 것이다. 그중에..

천년의나무 2016.02.27

남한산성 한 바퀴

나라나 가정이나 평화를 지켜나가기는 어렵다.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 고집이 충돌하면 불화가 생기고 삐걱거릴 수밖에 없다. 못난 놈이 꼭 네가 틀렸다고 큰소리 친다. 오랜만에 남한산성을 한 바퀴 돌았다. 사소한 일로 아내와 티격태격한 뒤였다. 다 부질없는 노릇이라는 걸 걸으면서 깨닫는다. 너와 나를 가르는 성벽을 나왔다 들어갔다 하며 걸었다. 벽 하나 사이지만 나와서 보는 경치는 또 달랐다. 약간 싸늘한 겨울 공기가 상큼했다. 서울을 조망하는 전망대에서는 시선을 앗아가는 물건이 하나 우뚝하다. 거의 남한산성 정상 높이에 육박하는 롯데월드타워다. 막바지 공사가 한창이다. 마침 여객기 한 대가 서울공항에 착륙하기 위해 고도를 낮추고 있다. 롯데월드타워의 거의 중간 높이로 날아간다. 멀리서 보기에는 매우 아슬아슬..

사진속일상 2016.02.25

남한산성 여름꽃

답답한 마음을 달래는 데는 걷기와 함께 꽃사진 찍기도 도움이 된다. 파인더로 꽃에 집중하다 보면 세상의 시름을 다 잊는다. 그런 목적으로 남한산성을 찾았다. 매크로 렌즈를 만져보기도 오랜만이었다. 무엇에 그리 바빴는지 모르겠다. 쥐손이풀 참나리 파리풀 짚신나물 땅비싸리 수크렁 달맞이꽃 양지꽃 갈퀴나물 박주가리 누리장나무꽃 개망초 기린초 돌콩 금계국 큰제비고깔 등골나물 으아리 뱀무 강아지풀 무릇

꽃들의향기 2015.08.11

은고개에서 남한산성 라운딩

3월 초에 트레커 시산제 때 산에 오르고 등산이란 게 처음이다. 거의 5개월 만이다. 두 달은 병원 신세 지느라 공쳤다 해도 너무 게을렀다. 야쿠시마 트레킹이 눈앞에 닥쳤으니 트레이닝 겸해 등산화를 꺼냈다. 아니었다면 뒷산 산책 정도로 만족하고 말았을 것이다. 훈련을 위해서 집 가까이에 있는 것으로는 좀 힘든 코스를 골랐다. 은고개에서 약사산을 거쳐 남한산성을 다녀오는 라운딩 코스다. 길이가 10km 정도 되는데 야쿠시마에 비하면 반밖에 안 된다. 그래도 야쿠시마는 평탄한 길이 많으니 크게 걱정하지는 않아도 될 것 같다. 오랜만의 산행에 후덥지근한 여름 날씨가 겹쳐 땀 범벅이 되었다. 여름 산행의 적은 더위보다 더한 게 산모기다. 숲에 들어서부터 집요하게 달라붙는 모기 때문에 너무 성가셨다. 여름에는 양..

사진속일상 2015.07.28

남한산성 행궁

남한산성을 지나가게 된 날, 시간 여유가 있어 행궁에 들렀다. 2012년에 복원이 끝났는데 찬찬히 둘러보는 건 처음이었다. 겨울 평일이라 관람객도 거의 없이 한산했다. 티켓을 끊으니 준 안내 팸플릿 내용을 중심으로 정리해 본다. 남한산성은 전체 길이가 약 12km에 달하는데, 신라 주장성의 옛 터를 기초로 하여 인조2년(1624)에서 인조4년(1626)까지 대대적으로 축성되었다. 남한산성 행궁 역시 축성과 함께 인조3년(1625) 상궐과 하궐이 건립되었다. 작년에 남한산성은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한남루(漢南樓)는 행궁의 정문으로 정조22년(1798)에 광주 유수 홍억이 건립했다. 한남(漢南)은 한강 남쪽 성진의 누대라는 뜻이다. 앞뒤로 8개의 주련이 있다. 한 성을 지킴에 용과 호랑이의 비법으로..

사진속일상 2015.01.15

추석 산행

집에 일이 생겨 추석인데도 고향에 내려가지 못했다. 지난주에 미리 성묘하고 어머니에게도 다녀왔다. 추석 차례를 거른 건 20년 전에 독일 연수를 가 있을 때를 빼고는 처음이다. 한가윗날 아침 식탁에는 아이들이 출가하기 전처럼 넷이 오붓하게 앉았다. 그러나 밝게 웃을 수만은 없는 분위기였다. 아침을 먹고는 혼자 배낭을 꾸려 남한산성으로 갔다. 차는 은고개에 주차하고 남한산성 한봉을 돌아오는 라운드 산행이었는데, 쓸쓸하고 외로운 심정으로 걷는 산길이었다. 산객 서너 명 정도만 만났다. 한 분은 지나치며 "명절이라 전부 고향 찾아가고 사람이 없네요"라며 씁쓰레 웃었다. 갈림길 쉼터에서는 바람이 시원했고, 동쪽으로는 유난히 하늘이 파랬다. 비틀린 자세로 서 있는 서어나무가 멋있어서 한참을 바라보았다. 집으로 돌..

사진속일상 2014.09.08

버섯 산행

은고개에서 남한산성을 지나 샘재까지 이어지는 산길을 걸었다. 광주에서 서울을 향해 북쪽으로 난 길이다. 길이가 12km 정도 되니 산길로는 꽤 길다. 몸 상태가 좋을 때도 완주하면 노곤해진다. 축축한 여름 숲에는 다양하게 생긴 버섯이 많았다. 버섯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깊 옆에서 눈에 띈 버섯이 이 정도인데 산속에는 다른 종류의 버섯도 많을 것 같다. 무식하게도 망태버섯 외에는 이름을 아는 게 없다. 이 버섯들은 식용이 아니므로 이렇게 살아남아 있는지 모른다. 그런데 망태버섯을 맛있게 먹는 벌레가 있다. 작지만 무섭게 생겼다. 숲은 지금 도토리가 익어 떨어지고 있다. 가만히 앉아 있으면 여기저기서 투두둑 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연신 들린다. 머리에 맞을까 봐 걱정될 정도다. 도토리 줍는 사람도 많다...

사진속일상 2014.08.17

남한산성 영산홍

남한산성 서문 부근에 영산홍 군락지가 있다. 인공적으로 꾸며 놓은 꽃밭일 것이다. 영산홍(映山紅)은 진달랫과에 속하는 낙엽관목으로 진달래, 철쭉과는 사촌쯤 된다. 서로 구별하기가 애매하지만 진달래나 철쭉이 아닌 것 같으면 영산홍으로 보면 된다. 원예용으로 개발되었기 때문에 색깔이 다양하고 화려하다. 산에는 철쭉, 뜰에는 영산홍이 보통인데 산속 소나무 아래에 핀 영산홍 군락도 색다르다.

꽃들의향기 2014.05.09

남한산성 수어장대

비 그치고 바람 센 날이었다. 거센 바람을 맞고 싶어 남한산성 수어장대에 갔다. 세포 사이사이로 바람이 지나간다면 마음에 낀 찌꺼기를 훌훌 날려 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을 했다. 수어장대(守禦將臺), 우두머리가 군대를 지휘하는 곳이다. 이 건물을 볼 때마다 군사용 건물을 왜 저렇게 지었는지 의문이 든다. 불화살 몇 발이면 쉽게 불타버릴 것 같다. 실제 전투 용도보다는 멋내기나 위엄 부리기에 알맞아 보인다. 아니면 평상시에 연회를 즐기기에 좋게 생겼다. 임진왜란 때 의주로 도망친 선조, 병자호란 때 이곳으로 피난 온 인조가 사지에 남아 있어야 할 백성 걱정을 얼마나 했을까. 이승만은 6.25 전쟁이 터지자 서울은 안전하다고 거짓말을 해 놓고는 남쪽으로 도주한 뒤 한강 다리를 끊었다. 위기가 닥쳤을 때 백성과..

사진속일상 2014.05.09

아내와 남한산성을 일주하다

여름의 막바지에 아내와 성곽을 따라 남한산성을 한 바퀴 돌았다. 수없이 남한산성을 찾았지만 아내와 일주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조용한 평일날 부부가 함께 길을 걷는 행복을 누렸다. 또한 아내의 체력이 많이 회복된 걸 확인할 수 있어 기뻤다. 동문에서 출발하여 반시계방향으로 느릿느릿 한 바퀴 도는데 4시간이 걸렸다. 솔숲에서 쉬는데 어느 외국인이 지도를 보이며 'West Command Post'로 가는 길을 물었다. 한참을 고민한 끝에 그것이 수어장대를 가리키는 말인 줄 알았다. 외국인만 대하면 왜 머리가 하얘지는지 모르겠다. 뭉게구름이 키자랑을 하며 솟아올랐다. 더위의 기세도 이제 많이 누그러졌다.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굵은 빗방울이 후두둑거리기도 했다. 인생길도 날씨처럼 변화무쌍한 법이었다. 일..

사진속일상 2013.08.27

남한산성행궁 느티나무

작년에 남한산성 행궁이 완전 복원되었다. 병자호란 시 인조가 피난했고, 그 뒤에도 여러 임금이 순행 때 묵어간 곳이다. 전에는 행궁의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민가나 건물들이 들어서 있었다. 남한산성 호텔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행궁이 옛 모습을 되찾게 된 건 반가운 일이다. 행궁 주변에 보호수 느티나무가 두 그루 있다. 각각 300년, 400년 된 느티나무다. 나이로 볼 때 행궁의 역사와 함께하는 나무들이다. 둘 중에서 400년 된 느티나무는 줄기가 통째로 썩어서 보형재로 채워져 있고, 가지는 철제 지지대로 버텨 놓았다. 그래도 여름에 보는 나뭇잎만은 싱싱하다. 최근에 복원된 새 건물의 생뚱함을 이 고목들이 그나마 중화시켜 준다. 이 느티나무 그늘에 앉으니 1636년의 현장이 안타깝게 그려졌..

천년의나무 2013.08.17

남한산성 연무관 느티나무

남한산성 연무관(演武館)은 군사 훈련을 위하여 인조 2년(1624) 남한산성을 쌓을 때 함께 세워졌다. 옆에 있는 남한산성초등학교 운동장이 훈련하던 터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연무관 주변에 오래된 느티나무 두 그루가 있다. 둘 다 수령이 500년 내외로 안내문에는 적혀 있다. 그러나 겉으로 보기에 두 나무는 수령 차이가 꽤 나는 것 같다. 첫 번째 느티나무는 흙을 찾아 뻗어나가는 뿌리의 모양이 그로테스크하다. 아무튼 500살이 되었다면 병자호란의 현장도 이들 느티나무는 지켜보았다는 얘기다. 세월의 무게를 느끼게 해 주는 나무다.

천년의나무 2013.08.13

산성역에서 남한산성에 오르다

용두회 정기 산행으로 남한산성에 올랐다. 이번에는 산성역을 들머리로 하는 코스였다. 이 코스는 남에서 북을 향해 가게 되어 있어 여름에 오르기에 적당하다. 나무도 우거져 거의 그늘 속 흙길이다. 성벽을 만난 뒤 오른쪽으로 꺾어져 남문으로 내려갔다. 수어장대 방향은 너무 길다고 모두가 반대했다. 산성리 오복손두부집에서 점심을 했다. 단주 두 주일째인데 내 결심을 밝히고 건배주 한 잔만 받았다. 일행은 버스편으로 하산했고, 나는 벌봉을 거쳐 위례둘레길을 따라 산곡초등학교까지 걸었다. 사미고개에서 산곡초등학교까지 구간은 처음 걸어보는 길이었다. 산곡초등학교는 검단산 등산의 입구이기도 하다. 체력만 된다면 이 길을 따라 검단산과 남한산성을 이어 걸어볼 수도 있겠다. * 산행 시간; 6시간(10:00 ~ 16:0..

사진속일상 2013.06.22

남한산성을 종주하다

페스탈로찌 K 형이 이번에 명퇴를 했다. 그리고는 곧 강릉으로 이사를 간다. 2년 전에 내가 명퇴를 하고 탈서울을 한 것과 비슷한 행보다. 얘기를 들어보니 K 형은 시골에 터를 구해 집을 짓고 전원생활을 시작할 계획인 것 같다. 늦게 나왔지만 나보다 훨씬 걸음이 빠르다. 오랜만에 만난 S 형이랑 셋이서 남한산성에 올랐다. 지하철 마천역에서 만나 계곡을 타고 서문으로 향했다. 계곡을 택한 건 혹시나 복수초 같은 봄꽃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었다. 옛날 직장 생활 하던 때의 추억을 나누며 오르니 급경사 산길도 그다지 힘들지 않았다. 서문 전망대에서 보이는 서울 강동구 지역. 산 아래로 위례 신도시가 들어설 지역이 보였다. 군부대와 골프장이 있던 자리였는데 말끔히 정리되어 있었다. 몇 년 뒤..

사진속일상 2013.03.15

이배재에서 남한산성까지 걷다

옛 동료와 만나 산길을 걸었다. H 선배와는 2년 만에 만났다. 손주를 봐주느라 그동안 두문불출하시다가 오늘 겨우 시간을 내셨다. 사모님이 편찮으시니 선배가 아이 보는 일을 도맡을 수밖에 없다. 좋아하는 산도 마음대로 다니지 못하신다. 선배의 나이가 일흔이 넘었는데, 손주가 초등학교 들어갈 때까지는 봐주어야 한단다. 정말 자식이 뭔지 모르겠다. 오후에는 유아원에 보낸 아이를 데리러 가야 한다고 해서 산행을 짧게 했다. 이배재에서 남한산성까지였다. 산야는 가을로 물들고 있었다. 설악산에서는 벌써 단풍 소식이 들린다. 지금부터 11월 초까지가 산행하기에 가장 좋은 계절이다. 남한산성 오복집에서 두부전골로 점심을 하고 광주행 버스를 타고 내려왔다. 그동안 남한산성을 수도 없이 다녔지만 버스를 타고 하산한 것은..

사진속일상 2012.09.26

은고개-남한산성-검단산-이배재

집에서 하루를 보내려 했는데 창 밖으로 보이는 고운 하늘에 끌려서 배낭을 꺼냈다. 집에 그냥 있기가 너무 아까운 날이었다. 이런 때는 무조건 집을 나서서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가면 된다. 전에 직장 생활을 할 때는 오늘처럼 날씨가 좋은 날은 일하기가 너무 싫었다. 그때는 내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는 자유를 얼마나 동경했는지 모른다. 이제 그런 자유와 행복이 주어졌다. 서울로 가는 버스를 타고 은고개에서 내렸다. 그리고 남한산성으로 연결되는 산길을 걸었다. 시야가 열릴 때마다 눈부신 가을 하늘이 축복으로 다가왔다. 벌봉에서 김밥으로 점심을 먹고 남한산성 본성으로 들어가 성곽길을 따라 걸었다. 북문을 거쳐 남문에 이르렀다. 남문에서 성곽을 빠져나와 검단산 쪽으로 향했다. 시멘트 길을 버리고 숲으로 들어 검..

사진속일상 2012.09.11

은고개-남한산성-샘재

남한산성 숲에 든다. 은고개를 들머리로 하여 샘재로 내려온 긴 산길이다. 햇볕은 따가우나 바람 서늘하다. 숲에 들면 자질구레한 세상사의 시름은 눈 녹듯 사라진다. 나무 그늘에 앉아 시원한 바람을 맞는다. 주위는 온통 초록의 바다다. 자궁 속에 있는 태아의 편안함이 이러할지 모른다.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 행복하다. 온종일 가만히 있어도 지루하지 않겠다. 그러나 길은 앞으로 열려 있고 새로운 길 또한 걸어보고 싶다. 벌봉에 이른다. 벌봉[蜂峰]은 바위로 된 봉우리인데 생긴 모양이 벌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나 지금은 나무가 우거져 전체 모습이 잘 파악되지 않는다. 벌봉은 높이가 512m로 수어장대(497m)보다 더 높다. 김훈의 에 보면 청나라군이 이곳에서 화포로 성안을 포격했다는 내용이 나..

사진속일상 2012.06.27

광주 노적산

노적산(露積山, 388m)은 남한산성에서 남쪽으로 뻗은 줄기의 맨 끝에 있는 산이다. 지형적으로 군사적 요충지에 해당된다는 것을 누가 봐도 알 수 있다. '노적'이라는 명칭도 군사 활동과 관계되어 있지 않나 싶다. 경기도 광주시 광지원리의 남한산성으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등산을 시작한다. 해공 신익희 선생 추모비가 있는 곳이 들머리다. 경기도 광주가 선생의 고향이다. 시작부터 정상까지 급경사가 이어진다. 그리 높지 않은 산이라 40분 정도 땀을 흘리면 정상에 닿는다. 본격적인 산길 걷기는 정상을 지나면서부터다. 홀로 걷는 산길이 호젓하다. 이름난 명산보다는 가까이 있는 이런 조용한 산길이 좋다. 오르막에서는 호흡이 빨라지지만 이런 길을 만나면 느릿느릿 걷게 된다. 숲은 세상의 소리를 차단하고 조용하다. 심..

사진속일상 2012.06.18

친구와 남한산성 성곽길을 걷다

친구와 남한산성 성곽길을 한 바퀴 돌았다. 두 주 만에 걷는 걸음이었다. 산에 오르니 바람이 찼다. 하늘은 금방이라도 비가 뿌릴 듯 잔뜩 흐렸다. 원래 대학 동기들 22차 산행일이었으나 날씨가 추워선지 둘밖에 모이지 않았다. 이러다간 홀로 산행이 될지도 모르겠다. 남문을 중심으로 해서 성을 일주하는데 세 시간이 걸렸다. 성곽길은 언제라도 가볍게 걸을 수 있는 좋은 길이다. 약간은 부족한 듯한 이 정도가 내 체력에도 맞다. 걸으면서 퇴직 후의 생활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아직 현직에 있는 친구의 버킷 리스트가 재미있었다.친구는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가고 싶은 데도 많다. 퇴직을 기다리고 기대하는 친구의 모습이 멋있었다. 오전에 산길을 걸은 뒤 따뜻한 두부전골로 몸을 녹이고 헤어졌다. 전날 과음..

사진속일상 2011.11.26

이배재에서 산성역까지 걷다

어제는 잠실에서 약속된 저녁 모임에 가기 위해 일찍 집을 나섰다. 산길을 따라 걸어가기 위해서다. 그동안 너무 비가 자주 내려 걷기에 굶주렸다. 두 달 내내 우기가 계속되고 있다. 한창 뜨거워야 할 8월 더위가 실종되었다. 이배재고개에서 걷기를 시작했다. 가파른 경사를 오르면 형제봉을 거쳐 망덕산에 이른다. 해발 500 m인데 여기서부터는 남한산성까지 산줄기를 따라 완만한 길이 이어진다. 오르내림이 거의 없어 평지를 걷는 것 같다. 검단산을 지나 남한산성 남문인 지화문(至和門)에 닿았다. 두 시간을 넘게 걸었더니 피로가 밀려왔다. 이럴 때는 막걸리 한 잔이면 생기를 찾을 수 있는데 매점에서는 술을 팔지 않았다. 원래는 마천역으로 내려갈 계획이었으나 시간에 쫓길 것 같아 산성역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남문에..

사진속일상 2011.08.19

송암정 고사목

남한산성 동문 부근 산자락에 송암정(松岩亭) 터가 있다. 남쪽으로 청량산 자락과 검단산을 바라보는 풍광이 멋진 곳이다. 우리 같은 시골뜨기가 봐도 정자 하나 들어서면 좋을 장소다. 이곳에는 이런 얘기가 전한다. 옛날에 황진이가 금강산에서 수도를 하다 하산하여 이곳을 지나는데 남자 여럿이 기생들과 술을 마시고 있었다. 황진이는 희롱도 참아가며 이들에게 불법을 설파했다. 이때 감명을 받은 기생 중 한 사람이 갑자기 절벽으로 뛰어내려 자결했는데 그 후 달 밝은 밤이면 이곳에서 노래소리와 통곡소리가 들려왔다고 한다. 황진이가 금강산을 비롯한 산천을 3년 간 유람했다는 기록이 있으니 아마 이곳을 지나쳤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조금은 억지스러운 전설이다. 송암정이 있던 자리에는 소나무 고사목 한 그루가 서 있다.이 ..

천년의나무 2011.07.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