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5

올해의 미숙

정원 작가가 만화로 그려낸 한 소녀의 성장기다. 이름은 정미숙, 친구들이 "미숙아"라고 놀리며 불러도 제대로 대꾸하지 못하는 마음 여린 아이다. 그럴 만하다. 명색이 시인인 아버지는 무능하고 폭력을 휘두른다. 어머니가 식당 일로 생계를 꾸리지만 늘 쪼들리는 살림이다. 언니와도 소통이 안 되는 외로운 미숙이다. 가난과 가정폭력은 연약한 여자 아이를 위축시키기에 충분하다. 다행히 중학생 때 단짝인 된 재이라는 친구가 있어 미숙의 정신세계를 열어준다. 재이는 미숙과 달리 활달하고 직설적인 성격이다. 집과 학교에 갇혔던 미숙은 재이를 따라 작은 일탈을 경험하며 성장해 나간다. 그러나 이마저도 오래가지 못하고 미숙은 다시 홀로 서야 한다. 아버지와 언니마저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학교를 그만둔 미숙은 검정고시를 ..

읽고본느낌 2024.08.23

내 어머니 이야기

김은성 작가가 자신의 어머니의 일생을 그린 4권으로 된 만화책이다. 전부터 이 책의 유명세를 알고 있었으나 만화라는 이유로 차일피일 읽기를 미루었다. 요즘처럼 무더운 날이면 가벼운 만화가 어떨까 싶어 도서관 서가에서 꺼냈다.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마치 판화와 같은 흑백의 그림이 주는 효과가 더해져서 깊은 감동을 받았다. 작가의 어머니는 함경도 북평에서 나고 자라 결혼하며 살다가 6.25 때 남한으로 내려왔다. 북과 남에서 일제 강점시대와 전쟁, 분단과 근대화 과정을 전부 체험한 것이다. 한 개인의 일생에 우리나라의 역사가 투영되어 있다. 험난한 세월을 견뎌낸 한 여인의 사연이 안쓰러우면서 따뜻하다. 특히 함경도에서 보낸 어머니의 소녀 시절 이야기는 옛 농촌 공동체의 따스한 모습을 보여준다. 내 고향 마을..

읽고본느낌 2024.08.20

저 청소 일 하는데요?

하고 싶은 일과 해야만 하는 일 사이에서 젊은이들은 고민이 많다.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하고 싶지만 내 능력을 발휘할 직장을 얻기가 쉽지 않다. 좋아하는 일만 하겠다고 고집하다가는 생계가 문제 된다. 제일 현실적인 방법은 아무 일자리나 구해서 우선 먹고사는 일부터 해결하는 것이다. 좋아하는 일은 남는 시간에 취미 삼아 틈틈이 하면 된다. 언젠가는 기회가 찾아온다. 인생은 길다. 조급하게 덤비지 말아야 한다. 를 쓴 김예지 씨가 좋은 본보기다. 작가는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하고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로 일을 시작했다. 입사 시험에서는 번번이 낙방했다. 그녀에게 일을 맡기는 데도 없었다. 생계를 위해 청소 일을 하며 그림을 그렸다. 대학을 졸업한 20대의 아가씨가 빌딩 청소 일을 하는 것은 세상의 편견..

읽고본느낌 2020.01.08

레드 로자

올해는 로자 룩셈부르크가 학살당한 지 100년이 되는 해다. 로자라고 하면 지성, 용기와 더불어 혁명을 위해 자신을 불꽃으로 태웠던 여인으로 떠오른다. "혁명이 전부라고요! 다른 건 다 쓰레기예요." "사회주의냐 야만이냐" 이런 말들에 그녀의 생애가 들어 있다. 이 책 는 로자 룩셈부르크의 일생을 만화로 그려냈다. 만든 이는 영국 만화가인 케이트 에번스다. 만화라고 해서 가볍게 읽히지는 않는다. 로자의 삶과 사상을 요약했지만 무게감이 있다. 중요한 부분에는 주석이 달려 있어 이해를 도와준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1871년에 태어나 1919년에 세상을 떠난 폴란드의 사회주의자다. 누구보다도 자본주의의 모순을 직시하고 사회주의 혁명을 꿈꾼 이론가이면서 투사다. 세상을 바꾸려는 열정에서 로자를 넘어설 사람은 없..

읽고본느낌 2019.12.20

무한 묘수

두 권으로 된 강철수의 바둑 만화다. 강철수 하면 발바리가 떠오른다. 발바리는 옛날에 스포츠신문에 연재되면서 상당한 인기를 끈 캐릭터다. 그 발바리 스타일이 이 만화에도 등장한다. 여자 꽁무니만 따라다니던 백수 김달호는 미미라는 여자애를 만난다. 미미는 다섯 살인데 굉장한 바둑 고수다. 는 이 둘이 합작하여 내기 바둑을 두며 돈을 따먹는 이야기다. 달호가 철딱서니 없는 청년이라면 다섯 살 미미는 산전수전 다 겪은 노인네 같다. "멋있는 여자를 만나고 싶으면 자신이 멋있는 사람이 되라!" 이것이 유치원 다닐 아이가 할 소린가 말이다. 이런 비현실적인 두 캐릭터에 강철수의 가벼운 유머가 입혀져 만화는 경쾌하고 흥미롭다. 특히 바둑의 진행 상황을 묘사하는 장면은 긴장감으로 아슬아슬하다. 바둑을 어느 정도 둘 ..

읽고본느낌 2017.07.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