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내 어머니 이야기

샌. 2024. 8. 20. 10:29

김은성 작가가 자신의 어머니의 일생을 그린 4권으로 된 만화책이다. 전부터 이 책의 유명세를 알고 있었으나 만화라는 이유로 차일피일 읽기를 미루었다. 요즘처럼 무더운 날이면 가벼운 만화가 어떨까 싶어 도서관 서가에서 꺼냈다.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마치 판화와 같은 흑백의 그림이 주는 효과가 더해져서 깊은 감동을 받았다.

 

작가의 어머니는 함경도 북평에서 나고 자라 결혼하며 살다가 6.25 때 남한으로 내려왔다. 북과 남에서 일제 강점시대와 전쟁, 분단과 근대화 과정을 전부 체험한 것이다. 한 개인의 일생에 우리나라의 역사가 투영되어 있다. 험난한 세월을 견뎌낸 한 여인의 사연이 안쓰러우면서 따뜻하다.

 

특히 함경도에서 보낸 어머니의 소녀 시절 이야기는 옛 농촌 공동체의 따스한 모습을 보여준다. 내 고향 마을과 소년 시절이 수시로 떠올라 겹쳐졌다. 사람살이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쓸쓸하게 되돌아보면서 여러 번 책을 놓으며 생각에 잠겼다.

 

어머니의 말투를 그대로 인용한 함경도 사투리도 정겨웠다. 함경도에서는 시집온 사람을 "~사램(사람)"으로 부르는가 보다. 작가의 어머니는 "보천개 사램"이다. 남한에서 쓰는 "~댁"보다 "~사램아"라고 부르면 왠지 더 다정하게 들린다. 함경도 사람들이 억센 것 같지만 만화에서 그려지는 정경은 부드럽고 졍이 깊다.

 

늙으신 어머니와 오순도순 함께 살아가는 작가의 모습도 아름다웠다. 다정모녀(多情母女)라고 이름 붙여주고 싶다. 혼자 사는 딸이 노모를 모시고 사이좋게 살아가는 모습을 주변에서 가끔 보는데 참 보기 좋으면서 부럽다. 아들은 아무리 잘하려 해도 한계가 있는 것이다.

 

내 고향 지역에도 전쟁 뒤 이북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많이 살았다. 이북 사람들은 생활력이 강하다는 평판이 그때도 있었다. 만화의 주인공인 작가의 어머니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부모와 생이별하면서 전재산을 놓고 내려온 사람들이라 악착같이 살아내는 것밖에 방법이 없었으리라. 그들의 삶은 처절한 생존기에 다름 아니었다.

 

이름 없는 사람들의 이런 이야기들이 모여 역사가 된다. 왕조나 영웅 중심의 서사에서 시선을 돌리면 무수한 민초들의 생생한 이야기가 있다. 살아 있는 역사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내 어머니 이야기>는 작은 역사서인 셈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내 어머니'를 자주 생각했다. '어머니'라는 이름 뒤에 가려진 한 여인의 삶과 사연을 내가 얼마나 알고 있는가, 알려고 하는가를 여러 차례 자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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