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저 청소 일 하는데요?

샌. 2020. 1. 8. 12:26

하고 싶은 일과 해야만 하는 일 사이에서 젊은이들은 고민이 많다.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하고 싶지만 내 능력을 발휘할 직장을 얻기가 쉽지 않다. 좋아하는 일만 하겠다고 고집하다가는 생계가 문제 된다.

 

제일 현실적인 방법은 아무 일자리나 구해서 우선 먹고사는 일부터 해결하는 것이다. 좋아하는 일은 남는 시간에 취미 삼아 틈틈이 하면 된다. 언젠가는 기회가 찾아온다. 인생은 길다. 조급하게 덤비지 말아야 한다.

 

<저 청소 일 하는데요?>를 쓴 김예지 씨가 좋은 본보기다. 작가는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하고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로 일을 시작했다. 입사 시험에서는 번번이 낙방했다. 그녀에게 일을 맡기는 데도 없었다. 생계를 위해 청소 일을 하며 그림을 그렸다. 대학을 졸업한 20대의 아가씨가 빌딩 청소 일을 하는 것은 세상의 편견과 맞서는 용기가 필요했다. 청소 일을 하면서 꿈을 포기하지 않은 그녀는 자신의 고민과 애환을 책으로 냈다. 특기를 살려 만화로 그려 낸 책이 <저 청소 일 하는데요?>다.

 

그녀는 엄마와 함께 일터를 돌며 청소를 한다. 4년간 청소 일을 하며 무엇을 잃고 무엇을 얻었을까? '그렇게 얻은 것들'에서 이렇게 말한다.

 

"손의 굳은살, 운전 실력 Up, 미래를 볼 수 있는 통장 잔고, 엄마와의 대화, 족저근막염, 가끔의 좌절감과 패배감, 나만의 이야기, 그 이야기가 담긴 책 등 얻은 것은 다양했다. 청소일을 하기 싫었을 때, 4년을 헛되이 보낸 건 아닌가 고민이 들 때, 남들과 다른 게 무서울 때,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내가 필요해서 시작했고 좋은 것들도 결국 얻었다. 확실한 건 4년이 헛된 것이 아님을 알았다."

 

딸이 함께 청소 일 하는 것을 반대하지 않고 격려하고 도와준 엄마가 대단하다.

 

"엄마는 내가 이 일을 하는 게 창피하지 않아?"

"정정당당하게 돈 버는 일인데 뭐가 창피하니?"

"뭔가 사회에 적응 못하고 실패한 느낌이 들기도 해."

"예지야, 삶은 어차피 다 달라. 너의 성향에 맞게 사는 것도 살아가는 방식이야. 누군가는 회사 생활이 맞을지 몰라도 정말 안 맞는 사람들은 그럼 어떡하니? 결국 자기에게 맞춰 조금씩 다르게 사는 거지."

 

그녀는 책 출간 후 삽화를 그려달라는 출판사의 요청이나 강연 신청이 들어온다고 한다. 지금도 청소 일을 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자신이 잘하는 일에 몰두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적극적으로 자기 일을 찾으며 세상에 먼저 말을 걸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어느 고등학교에서 강연 후 이런 질문을 받았다고 한다.

 

"남의 시선을 어떻게 이기나요?" 그녀의 대답은 이랬다.

 

"이겼다기보단 견뎠어요. 마음으로 이기고 싶었지만 사실 이기지 못하더라고요. 그래서 신경이 쓰였지만 견뎠던 것 같아요. 아니라고 말한다고 정말 신경 안 쓰이는 게 아니란 걸 여러 번 겪으면서 말이죠. 그래서 전 이김보다 견딤을 택했어요. 어쨌든 결론적으로, 시선 때문에 포기하진 마세요!"

 

책 속에서 그녀는 자신을 소심한 성격이라 말하지만, 누구보다 당당하고 멋지게 살아가는 젊은이다. 책 표지에는 이런 말이 적혀 있다.

 

"조금 다르게 살아보니 생각보다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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