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빛버즘 7

장어로 보신하고 공원을 걷다

아내가 몸살(?)을 앓은 뒤끝이라 몸보신을 하러 장어집에 갔다. 큰 것과 중간 것, 두 마리를 시켜서 한껏 먹었다(8만 원). 오랜만의 장어 기름이 속에 부담이 되었는지 저녁에 같이 설사가 나와서 실소를 했다. 이래서 고기도 먹을 줄 아는 사람이 먹는가 보다. 봄에 들면서 식사량이 두 배 이상 늘었다. 지난겨울은 입맛이 없고 조금만 많이 먹어도 위에 부담이 돼서 소식을 할 수밖에 없었다. '소식 소동(小食 小動)'의 생활이었다. 다행히 봄이 되면서 입맛이 돌아오고 위장도 괜찮아졌다. 덕분에 좀 더 활기차졌다. 식사 후 물빛공원을 찾아서 두 바퀴를 돌았다. 황사가 끼었지만 산책하기에는 무난한 낮이었다. 풍성하진 않아도 아담한 장미 터널이 있고, 물빛버즘도 공작 날개처럼 초록잎을 펼치고 있었다. 이즈음의 나..

사진속일상 2023.05.23

물빛버즘(221206)

우리가 나무에 시선을 줄 때 내 마음/감정을 이입한 상태에서 바라본다. 행복한 사람이 보는 나무와 불행한 사람이 보는 나무는 같은 나무더라도 같지 않다. 목수는 재목감이 될 것이냐는 관점에서 볼 것이고, 바람이 스치며 소리를 내는 나무를 음유시인으로 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새들이라면 나무를 자신들의 놀이터라 여길지 모른다. 이렇듯 생물의 개체에 따라 같은 나무더라도 수만, 수십만 가지의 나무가 존재한다. 나무는 오직 나무일뿐인데 말이다. 눈이 살짝 내린 초겨울 오전에 물빛버즘과 마주했다. 오늘 물빛버즘은 겨울에 맞서는 결연한 의지로 서 있었다. 북풍한설아, 올 테면 오라고 버티고 선 모습이 당당했다. 반면에 나는 나무 앞에서 자꾸만 초라해졌다. 작은 외풍에도 꺾여서 시들어가는 유약함이라니, 좀 더 담..

천년의나무 2022.12.06

물빛버즘(220816)

물빛버즘에게 가장 생명력이 왕성할 때가 여름이다. 초록 잎이 바람에 한들거리는 모습은 생명의 환희를 온몸으로 노래하는 몸짓이며 춤이다. 해마다 수족이 잘려 나가는 도시의 가로수와는 다르다. 옆에만 서 있어도 나무의 싱싱한 에너지가 느껴진다. 이 물빛버즘은 사람으로 치면 청년기쯤 될 것이다. 한창 연부역강(年富力强)한 나이다. 이제 황혼녘에 접어든 나는 부러운 눈길로 너를 바라본다. 인생의 각 시절마다 나름의 아름다움이 있겠지만 어찌 청춘의 찬란함에 비길 수 있으랴. 약동하는 생명이라는 사실만으로 너는 충분히 아름답다. 물빛공원에 나온 날, 폭우로 산 아래 산책로는 폐쇄되었지만 잠시 너를 만난 것으로 충분하였다.

천년의나무 2022.08.17

물빛버즘(220130)

꽁꽁 언 물빛공원 호수 가운데 있는 갈대섬에 왜가리 한 마리가 꼼짝 않고 서 있다. 호수 둘레를 두 바퀴 도는 동안 미동도 없다. 왜가리는 새 중에서 가장 나무를 닮았다. 나는 왜가리와 물빛버즘에 동질감, 또는 동지 의식을 느끼며 충만해진다. 저 멀리 흰 점의 왜가리와 여기 물빛버즘, 그리고 물빛버즘 옆에 물끄러미 서 있는 나, 셋은 해 기우는 오후의 정물화가 된다.

천년의나무 2022.01.31

물빛버즘(211227)

네 앞을 지나가며 '겨울나무'를 나직이 읊조린다. 오늘은 '평생을 살아봐도 늘 한 자리'라는 구절에 마음이 끌리는구나. '늘 한 자리'는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눈이 오면 눈을 맞고, 바람이 불면 바람을 맞는 자리가 아닌가. 비가 오면 비와 한 몸이 되고, 눈이 오면 눈과 한 몸이 되고, 바람이 불면 바람과 한 몸이 된다. 너의 몸짓은 오로지 순리(順理)가 무엇인지 말해주는 것 같다. 공자가 말한 '태어나면서 아는 자[生而知之者]'가 바로 네가 아니던가. 나무야 나무야 겨울나무야 눈 쌓인 응달에 외로이 서서 아무도 찾지 않는 추운 겨울을 바람 따라 휘파람만 불고 있느냐 평생을 살아봐도 늘 한 자리 넓은 세상 얘기도 바람께 듣고 꽃 피는 봄 여름 생각하면서 나무는 휘파람만 불고 있구나

천년의나무 2021.12.28

물빛버즘(210716)

7월의 물빛버즘은 잎은 초록으로 성장(盛裝)을 했지만 줄기는 껍질이 갈라지고 떨어지며 어수선하다. 버즘나무가 껍질을 벗는 시기가 있는지는 좀 더 지켜봐야겠다. 주로 도시의 가로수로 만나는 버즘나무는 가지가 잘려서 기형이 되어 볼 품이 없다. 소음과 빛 공해로 지칠 대로 지친 모습이다. 그러나 이 버즘나무는 자연 상태 그대로의 온전한 수형으로 자란다. 생육 환경이 아주 좋다. "넌 복 받은 나무야. 네 품성을 마음껏 뽐내며 잘 자라다오!"

천년의나무 2021.07.16

물빛버즘(210604)

올해 봄은 나에게는 잃어버린 봄이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경계하고, 대상포진 바이러스와는 싸우느라 주변을 둘러볼 틈이 없었다. 사태가 좀 진정된 뒤 나가 본 물빛공원의 버즘나무의 초록에 그래서 더욱 눈이 부셨다. 이 버즘나무는 물빛공원에서 가장 눈에 띄는 나무다. 연륜이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대신 싱싱한 생명력을 내뿜는 혈기왕성한 나무다. 나무 옆에 서면 나무가 가진 에너지를 담뿍 받는 것 같다. 앞으로 이 나무를 물빛공원의 '나의 나무'로 정하고 친구로 삼기로 한다. 친구를 한다는 것은 널 유심히 지켜보며 말을 걸겠다는 뜻이다. 앞으로 자주 만나기로 하자!

천년의나무 2021.06.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