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루나무 5

일자, 고덕산 둘레길을 걷다

일자산, 고덕산 둘레길은 서울 둘레길 3코스의 일부다. 용두회 여섯 명이 이 길을 걸었다. 7년 전에 같은 모임에서 서울 둘레길 전 코스를 걸었었는데 그때와는 역방향이지만 완전히 처음 걷는 길처럼 새로웠다. 길이야 얼마나 달라졌겠느냐만 인간의 기억이란 게 대부분 아침 안개처럼 흔적을 남기지 않고 스러지기 때문이리라. 이번 길에서는 일자산공원에 있는 미루나무/포플러에 한참 눈길이 머물렀다. 미루나무만 보면 곧장 고향의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 그때는 신작로 가로수가 미루나무였다. 길 양쪽에 두 줄로 도열하듯 늘어선 키다리 미루나무의 풍경이 눈에 선하다. 미루나무는 동네 앞을 흐르는 냇가를 따라서 자랐고, 저수지 둑방에도 있었다. 지금은 다 사라지고 없다. 고향이 서운한 것은 미루나무의 부재 때문일지도 모른다..

사진속일상 2023.06.08

독립공원 미루나무

서울 서대문구 현저동에 있는 독립공원은 옛 서대문형무소 자리에 있다. 형무소 건물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데, 한쪽 구석에는 담으로 둘러싸인 사형장도 있다. 사형장 입구에는 사형장을 만들 때 심었다는 미루나무가 있어 '통곡의 미루나무'라고 불린다.일본 강점기 때는 수많은 애국지사들이 생의 마지막으로 이 나무 아래를 지나며 피눈물을 뿌렸을 것이다. 이곳은 1980년대까지 사형이 집행되었던 슬픔의 장소다. 안내문에는 미루나무에 대해 이렇게 적혀 있다. '이곳의 미루나무는 1923년 사형장 건립 당시 식재되어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순국선열들이 조국의 독립을 이루지 못하고 생을 마감해야 하는 한(恨)을 눈물로써 토해낼 때 붙들고 통곡했던 것으로 '통곡의 미루나무'라고 이름 지어졌다. 또한 사형장 안에 있는 또 한 ..

천년의나무 2012.05.19

미루나무 붓글씨 / 공광규

시냇가 미루나무 여럿 들판 캔버스에 그림을 그립니다 바람 부는 날은 더 열심히 그려댑니다 곧은길만 가기 어려운 사람 발걸음을 생각해 논둑과 밭둑과 길은 휘어지게 그리고 높이 떴다 지는 둥근 해가 다치지 않게 산 능선을 곡선으로 그립니다 미루나무도 개구쟁이 아이를 키우는지 물감통을 들판에 확! 엎지를 때가 있습니다 미루나무도 집으로 돌아가는 저녁이 되면 붓을 빨러 냇물로 내려가다 뒹구는지 노란 물감을 하늘에 뿌리거나 언덕에 물감을 흘려놓기도 합니다 미루나무의 실수는 천진해서 별이나 풀꽃이 됩니다 이런 미루나무도 심심한 날이 있어서 뭐라 뭐라 허공에 붓글씨를 쓰기도 하는데 나는 어려서 꼭 한번 읽은 적이 있습니다 "광규야, 가출하거라." - 미루나무 붓글씨 / 공광규 미루나무나 포플러는 내가 어렸을 때만 해..

시읽는기쁨 2010.08.14

올림픽공원 부부목

그리스 신화에서는 남자와 여자를 각각 불완전한 존재로 보고 자신의 잃어버린 반쪽을 찾아서 결합할 때 완전한 인간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올림픽공원을 산책할 때 만나게 되는 이 나무를 보면신화에서 말하는 그런 내용이 떠오른다. 포플러나무인 듯한 이 나무는 멀리서 보면 그냥 온전한 한 그루의 나무로 보이지만 가까이 가서 보면 두 그루가 아주 가까이 붙어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두 나무가 키도 같고, 생김새도 비슷하면서 그래서 서로 좌우의 균형과 조화를 이루면서오순도순 사이 좋게 살고 있다. 둘이지만 둘이 어우러져 하나를 이루고 있다. 그런데 볼 때마다 신기한 것은 두 나무 사이에 있는 틈이다. 자연스런 모양인지, 아니면 사람이 전지를 해서 저렇게 된 것인지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저 틈이 있음으로써 둘의 관..

천년의나무 2005.02.19

둘이서 한 마음

태풍 '메기'가 데리고 온 구름이 하늘을 덮고 있고 비도 간간이 내리는 날이다. 마음이 울적해서 아내와 같이 올림픽 공원으로 산책을 나갔다. 한 고개를 넘으면 또 다른 고개가 나타나고 그렇게 계속 허덕거리며 언덕길을 올라가야 하는게 인생살이라는 생각이 든다. 고개마루에서 잠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휴식하는 기쁨도 있지만 그런 즐거움은 보통 오래 가지는 않는다. 산책로 옆 잔디밭에 미루나무(?)가 서 있다. 멀리서 보면 한 나무로 보이는데 가까이 가보면 두 그루가 사이좋게 자라면서 마치 한 나무와 같은 수형을 만들고 있다. 그래서 나 스스로 '부부목(夫婦木)'이라고 이름붙여 놓은 나무이다. 키를 같이 맞추면서 그리고 서로 양보하는 건지 묘하게도 가운데로는 가지도 뻗지 않고 있다. 설마 인공적으로 잘라내고 ..

사진속일상 2004.0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