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8

일 년 만의 일박 여행

누구나가 그러하겠지만 코로나는 많은 사람의 여행길을 막았다. 당일치기 나들이는 가끔 했어도 일박 이상의 여행을 다녀온 지가 일 년이 한참 넘었다. 해외는 엄두도 못 내고 국내 여행도 여간 조심스러운 게 아니었다. 동해안으로 놀러 간 둘째가 합류하라고 연락이 왔다. 마침 정부에서도 가족끼리는 5인 이상 모임 금지를 해제한 터였다. 날씨가 나쁘다는 예보가 있었지만 무시하고 떠났다. 먼저 양양성당에 들러서 성지 참배를 하고 낙산사를 찾았다. 워낙 오랜만에 와서인지 들머리부터 낯설었다. 보타전을 중심으로 해서 경내를 한 바퀴 돌았다. 해수관음상 마당에서 보이는 바다 풍경이 시원했다. 오른쪽에 보이는 낙산해수욕장은 젊었을 때 단골 장소였다. 낙산사 경내의 양지바른 언덕에서 올해 첫 매화를 보았다. 지나는 사람들 ..

사진속일상 2021.02.17

바다부채길을 걷다

강릉에 다시 간 목적은 꽃 핀 율곡매를 보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때를 못 맞췄다. 율곡매 매화는 이미 졌다. 강릉은 서울보다 위도가 높은 데도 꽃이 피는 시기는 빠르다. 목련은 지고, 벚꽃은 개화를 시작했다. 아쉬움을 접고 정동진으로 가서 아내와 바다부채길을 걸었다. 이 길의 공식 명칭은 '정동심곡 바다부채길'이다. 정동진과 심곡항을 연결하는 탐방로인데, 그동안 해안 경비를 위해 출입이 통제되던 곳이다. 이곳 지형이 바다를 향해 부채를 펼쳐 놓은 모양을 하고 있어 '바다부채길'이라는 이름이 선정되었다. 바다부채길 길이는 2.9km다. 썬크루즈 리조트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남쪽 방향으로 걷기를 시작했다. 이곳에서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해안단구 지형을 볼 수 있다. 정동진 해안단구는 신생대 3기 말인 23..

사진속일상 2019.03.26

노인과 바다

젊었을 때 읽었던 느낌은 어슴푸레하다. 고기와의 사투 장면만 남아 있는 걸 보니 그 부분이 제일 인상적이었던 것 같다. 이번에는 체념이랄까, 자연과 인생을 대하는 노인의 마음이 각별히 다가온다. 산티아고 노인에게 자연은 정복 대상이 아니라 친구며 형제다. 삶의 터전인 바다도 여성성을 가진 존재로 인식한다. 며칠 동안 청새치와 밀고 당기는 싸움을 벌이지만 바탕에는 생명에 대한 연민이 깔려 있다. 배로 찾아온 휘파람새나 거북을 대하는 마음도 마찬가지다. 삶의 현장으로서의 바다는 사납고 거칠지만 삶을 대하는 마음은 따스하다. 고기를 잡으러 홀로 바다로 나간 노인은 고독하다. 고독을 벗 삼아 치열하게 살아가야 하는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다. 큰 청새치를 잡았지만 귀항 도중에 상어의 습격으로 뼈만 남긴 채 빈손으로..

읽고본느낌 2018.02.06

동해바다 / 신경림

친구가 원수보다 더 미워지는 날이 많다 티끌만한 잘못이 맷방석만하게 동산만하게 커 보이는 때가 많다 그래서 세상이 어지러울수록 남에게는 엄격해지고 내게는 너그러워지나 보다 돌처럼 작아지고 굳어지나 보다 멀리 동해바다를 내려다보며 생각한다 널따란 바다처럼 너그러워질 수는 없을까 깊고 짙푸른 바다처럼 감싸고 끌어안고 받아들일 수는 없을까 스스로는 억센 파도로 다스리면서 제 몸은 맵고 모진 매로 채찍질하면서 - 동해바다 / 신경림 타인에게는 엄격하면서 자신에게는 관대한 내 모습이 부끄럽다. 나이를 헛먹고 있다. 늙어가면서 제일 괴로운 게 옹졸해지는 나를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 시를 만나니 안도현의 '바다가 푸른 이유'라는 글이 생각난다. 스스로 채찍을 들 줄 모른다면 하느님의 매라도 기다려야 마땅하다. ..

시읽는기쁨 2014.02.27

조금새끼 / 김선태

가난한 선원들이 모여 사는 목포 온금동에는 조금새끼라는 말이 있지요. 조금 물때에 밴 새끼라는 뜻이지요. 그런데 이 말이 어떻게 생겨났냐고요? 아시다시피 조금은 바닷물이 조금밖에 나지 않아 선원들이 출어를 포기하고 쉬는 때랍니다. 모처럼 집에 돌아와 쉬면서 할 일이 무엇이겠는지요? 그래서 조금 물때는 집집마다 애를 갖는 물때이기도 하지요. 그렇게 해서 뱃속에 들어선 녀석들이 열 달 후 밖으로 나오니 다들 조금새끼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이 한꺼번에 태어난 녀석들은 훗날 아버지의 업을 이어 풍랑과 싸우다 다시 한꺼번에 바다에 묻힙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함께인 셈이지요. 하여, 지금도 이 언덕배기 달동네에는 생일도 함께 쇠고 제사도 함께 지내는 집이 많습니다. 그런데 조금새끼 조금새끼 하고 발음하면 웃음..

시읽는기쁨 2010.04.18

풍경(3)

썰물 때 바닷가 갯벌은 생명의 흔적들로 가득하다. 조수의 들고남에 따라 생명이 움직인 자국들이 아름다운 무늬를 만들었다. 갯벌은 화판이 되고, 바다와 뭇 생명들은 신의 손이 되어 그 위에 그림을 그린다. 무엇하러 다니느라 이런 길을 만들었을까? 인간은 직선의 길을 만들지만 자연은 곡선을 만든다. 곡선은 부드럽다. 그리고 곡선에는 여유로움과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이 멋진 그림은 누가 그렸지? 어느 유명한 화가가그린 나무도 바다가 그린 이것 만큼 아름다운 것은 보지 못했다. 아마 바다는 진심으로 나무를 사랑하고 그리워하나 보다. 이건 누구의 집이지? 흙을 파내서 둥글게 울타리를 쌓고 자신의 보금자리를 만들었다. 저 구멍 속으로 들어가면 따스한 스위트 홈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거기는 늘 파도 소리..

사진속일상 2006.06.17

풍경(1)

인적 그쳐 한적한 바다에 가고 싶다. 키 큰 바다풀들이 바람에 날리고, 파도 소리 더욱 쓸쓸한 텅 빈 바닷가에 서고 싶다. 사는 건 외롭고 쓸쓸한 일이다. 호탕한 웃음과 화려한 몸짓으로 치장해보지만 세상 일은 여전히 힘겹고 홀로 감당해야 할 몫은 무겁다. 하늘은 먹구름으로 가득한데 작은 조각배 한 척 흔들거리며 집 찾아 들어오고 있다. 우리가 돌아갈 안식의 항구는 과연 어디에 있을까? 피곤한 내 영혼이 쉴 한 평 따스한 자리가 거기엔 있을까? 거기선 내 고운 사람이 고운 옷 입고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외로운 마음도, 쓸쓸해진 마음도, 좌절도, 낙담도 저 바다는 다 품어줄 것 같다. 아픔이 아픔으로 위로 받듯, 외로움은 더 큰 외로움으로 위안을 얻을 것이다. 오늘은 저 쓸쓸한 바다에 가고 싶다.

사진속일상 2005.09.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