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조금새끼 / 김선태

샌. 2010. 4. 18. 12:45

가난한 선원들이 모여 사는 목포 온금동에는 조금새끼라는 말이 있지요. 조금 물때에 밴 새끼라는 뜻이지요. 그런데 이 말이 어떻게 생겨났냐고요? 아시다시피 조금은 바닷물이 조금밖에 나지 않아 선원들이 출어를 포기하고 쉬는 때랍니다. 모처럼 집에 돌아와 쉬면서 할 일이 무엇이겠는지요? 그래서 조금 물때는 집집마다 애를 갖는 물때이기도 하지요. 그렇게 해서 뱃속에 들어선 녀석들이 열 달 후 밖으로 나오니 다들 조금새끼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이 한꺼번에 태어난 녀석들은 훗날 아버지의 업을 이어 풍랑과 싸우다 다시 한꺼번에 바다에 묻힙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함께인 셈이지요. 하여, 지금도 이 언덕배기 달동네에는 생일도 함께 쇠고 제사도 함께 지내는 집이 많습니다. 그런데 조금새끼 조금새끼 하고 발음하면 웃음이 나오다가도 금세 눈물이 나는 건 왜일까요? 도대체 이 꽤죄죄하고 소금기 묻은 말이 자꾸만 서럽도록 아름다워지는 건 왜일까요? 아무래도 그건 예나 지금이나 이 한 마디 속에 온금동 사람들의 삶과 운명이 죄다 들어있기 때문 아니겠는지요.

- 조금새끼 / 김선태

요즈음처럼 바다가 서러울 때도 없다. 요즈음처럼 바다가 답답할 때도 없다. 젊은이들이 아무 이유도 없이 수장된 바다, 근무교대를 하고 휴식을 취하던 마흔여섯 수병들이 한 순간에 불귀의 객이 되어 가라앉았다. 그 누구보다도 가족들의 애통한 심정을 어찌 헤아릴 수 있으랴. 그런데 청춘을 바쳐 지켜야 할 것은 무엇이던가? 국가는 무엇이고, 이데올로기란 무엇인가?

아무리 발버둥쳐도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는 목포 온금동 조금새끼들의 삶, 바다에 나가 풍랑과 싸우다가 바다에서 죽어가는 조금새끼들의 삶이 연상된 건 왜일까? 조금새끼들의 삶은 서럽고 애잔하다. 그런데 목포 온금동 사람들이나 지금 우리들이나 다른 게 무엇이지? 시인이 서럽도록 아름답다고 한 것은 바로 그것이 우리들의 삶이고 운명이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다. 우리 또한 같은 조금새끼들이고,비슷한 조금새끼들을 낳으며 폭풍우 속 바다로 서럽게 내몰리고 있다. 자각하든 못하든, 발악하든 그렇지 않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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