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봄의 소식 / 신동엽

샌. 2010. 4. 28. 09:40

마을 사람들은 되나 안되나 쑥덕거렸다.

봄은 발병 났다커니

봄은 위독(危毒)하다커니

 

눈이 휘둥그래진 수소문에 의하면

봄이 머언 바닷가에 갓 상륙해서

동백꽃 산모퉁이에 잠시 쉬고 있는 중이라는 말도 있었다.

 

그렇지만 봄은 맞아 죽었다는 말도 있었다.

광증(狂症)이 난 악한한테 몽둥이 맞고

선지피 흘리며 거꾸러지더라는.....

 

마을 사람들은 되나 안되나 쑥덕거렸다.

봄은 자살했다커니

봄은 장사지내 버렸다커니

 

그렇지만 눈이 휘둥그래진 새 수소문에 의하면

봄은 뒷동산 바위 밑에, 마을 앞 개울

근처에, 그리고 누구네 집 울타리 밑에도,

몇 날 밤 우리들 모르는 새에 이미 숨어와서

몸 단장(丹裝)들을 하고 있는 중이라는

말도 있었다.

 

- 봄의 소식(消息) / 신동엽

 

봄이 봄 같지 않다. 일조량 부족에 냉해, 거기에 구제역까지 겹쳐 농심이 말이 아니다. 어제는 차가운 비바람이 몰아치면서 초겨울 날씨를 보였다. 안성에 갔었는데 식물원 구경은 접어야했다. 세상이 뒤숭숭한데다 날씨마저 이러니 사람살이가 어수선하다. 봄이 테러라도 당했는지 꼭 무슨 변고가 일어날 것 같다. 옛날 같았으면 천심을 읽을 줄 아는 임금이라면 근신이라도 했을 것이다.

 

이 시가 발표된 1970년대 상황을 생각한다면 시인이 말하는 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그때로부터 40 년이 지났지만 봄은 여전히 비틀거리고 있다. 다만 '광증이 난 악한'의 얼굴만 바뀌었을 뿐이다. 그래도 봄의 기운을 막을 자 누구인가. 냉기류 흐르는 서해 바다에도 훈풍이 불고, 파헤쳐지는 강 기슭도 몸 단장을 하게 될 것이다. 뒷동산 바위 밑에, 마을 앞 개울에 눈이 휘둥그래질 봄의 소식이 이미 와 있질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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