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사랑법 첫째 / 고정희

샌. 2010. 5. 5. 12:17

그대 향한 내 기대 높으면 높을수록 그 기대보다 더 큰 돌덩이를 매달아 놓습니다.

부질없는 내 기대 높이가 그대보다 높아서는 아니 되겠기에 내 기대 높이가 자라는 쪽으로 커다란 돌맹이를 매달아 놓습니다.

그대를 기대와 바꾸지 않기 위해서 기대 따라 행여 그대 잃지 않기 위해서 내 외롬 짓무른 밤일수록 제 설움 넘치는 밤일수록 크고 무거운 돌덩이 하나 가슴 한복판에 매달아 놓습니다.

- 사랑법 첫째 / 고정희

오늘이 어린이날이다. 마침 어제는 한국방정환재단과 연세대 사회발전연구소가 '2010 한국 어린이와 청소년의 행복지수 국제 비교'를 발표했다. 그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 어린이와 청소년의 행복도는 54% 정도로 OECD 20개 나라 중 꼴찌를 기록했다. 가장 큰 이유가 학업 스트레스와 부모와의 갈등 때문이라고 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내몰리는 학력 경쟁 속에서 아이들은 속으로 병들고 있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오직 내 자식 잘 되기를 바라는 부모의 맹목적인 이기심이아이들을 죽이고 있다.

사랑이라는 미명하에 자신의 욕심을 자식을 통해 이루려는 심리가 부모에게는 있다. 자신의 기대치를 자식에게 강요하는 걸 제대로 된 자식 교육이라고 착각한다.공부 잘 해서 스카이 대학에 들어가고 이름난 회사에 취직한 것을 자식 농사 잘 지었다고 으시댄다.그러면서 스트레스를 높이는 시합에 너도나도 앞서가지 못해 난리다. 어린이날을 맞아 정말 반성해야 할 것은 이런 게 아닐까. 내가 볼 때 이런 간섭이라면 차라리 방임이 낫다. 아무리 자식이 나의 분신이라지만 대한민국 부모들, 자식에게 무심하기를 배워야겠다.

사랑법 첫째는 기대를 낮추는 것이라고 시인은 말한다. 그대를 사랑하기 위해 내 가슴 한복판에 무거운 돌덩이 하나 매달아 놓아야 한다. 고정희 시인을 생각하면 늘 마음이 아리다. 그대를 계속 사랑하기 위해, 그대를 잃지 않기 위해, 시인이 마음 속에 달고 있던 크고 무거운 돌맹이가 나에게도 전해진다. 그래, 우리 이젠 조금은 저 자제하고 자중하자. 좀 무겁더라도 마음 속에 돌맹이 하나 매달고 살자. 그게 나를 살리면서 우리 모두를 살리는 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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