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수선화에게 / 정호승

샌. 2010. 5. 8. 08:18

울지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않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퍼진다

 

- 수선화에게 / 정호승

 

그런 시절이 있었다. 너무 외롭고 답답했다.내 속마음을 들어줄 사람 하나도 없었다. 술만 마시면 눈물을 흘렸다. 그때 이 시의 따스한 손길에 또 울었다. '울지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싯구 하나하나가 가슴에 파고들었다. 이 시로 인해 정호승 시인을 더욱 좋아하게 되었다.

 

그런데 시인이 지금 구설수에 올라 있다. 천안함 사태에 대한 동아일보 기고문 때문에 논란이생겼다. 어떤 사람은 시인의 시집을 불 태우겠다고 한다. 기사를 읽어보니 스스로에게 화가 날 만도 생겼다. 도저히 시인의 언어라고는 할 수 없을 정도로 살벌하다.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었을 정 시인의 이미지에 실망과 배신감을 느낀 사람이 많았을 것이다. 나도 역시 그러하니까.

 

그 기사를 다시 읽어본다. 제목이 '절망보다 분노하라. 울기보다 다짐하라'이다. 내용이 마치 전쟁과 출병을 권하는 격문 같다. 시인은 당신들을 잊지 않을 것이라는 분향소의 조문 구절을 보며 당신들의 원수를 반드시 갚아주겠다고 고쳐 읽는다. 그래야 답답했던 속이 풀린다고 한다. 그리고 그 대상은 북한으로 단정한다. 증거를 찾는데 시간을 허비하면서 바로 응징하지 못하는 것을 분노한다.

 

천안함을 바라보는 시각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건 시인의 말이 아니다. 부드럽고 따스한 은유의 언어가 아니다. 피비린내를 부르는금속성의 차가운 외침일 뿐이다. 이 글을 보면서 전쟁 때마다 등장하는 문인들의 선전문이 연상되는 건 나의 과민반응일까? 천안함을 정치적으로 이용해 먹으려는 악취가 내 코에서도 맡아지는데 시인은 눈을 감고 있는 걸까? 이미 진실이 무엇이냐는 의미가 없어 보인다. 적어도 시인이라면 이런 현상의 이면을 지적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샘물에 비친 자신의 그림자를 보고 사랑에 빠진 나르키소스, 거기에서 외로움을 읽어내는감수성과 연민을 가진 시인이었다.그런데 이번 글은 여러 사람들을 실망케 했다. 나 또한 앞으로 시인의 시를 만날 때 예전과 같은 감동을 받지 못 할 것 같아 슬프다. 그래서 자꾸 외로워지나 보다. 그래도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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