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슬을 저마다 하면 농부할 이 뉘 있으며
의원이 병 고치면 북망산이 저러하랴
아이야 잔 가득 부어라 내 뜻대로 하리라
- 벼슬을 저마다 하면 / 김창업
한가한 일요일 오전, 집에서 빈둥거리며 TV를 보는데 'TV 쇼 진풍명품'에서 마침 노가재(老稼齋) 김창업(金昌業, 1658 - 1721))의 영정이 나왔다. 11대 후손이 갖고 나온 그 영정값이 무려 2억 원이 넘었다. 노가재는 숙종 때의 문인으로 명문 집안에서 태어나 학문이 깊었으나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초야에 묻혀 살았다고 한다. 글과 그림에 능했는데 이 영정은 본인이 스스로 그린 자화상으로 전해지는 그림이었다.
노가재의 그런 삶이 이 시조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벼슬이나 명예, 또는 건강을 바라는 것은 어느 시대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단순히 바라는 정도를 넘어 집착하고 안달하기도 한다. 노가재는 그런 욕망에서 한 발 비켜나 유유자적하는 자유로운 삶을 살고자 한다. 욕망에 포로가 된 사람들 사이에서 어느 시대에나이런 초연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렇게 사는 일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비범한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아이야, 잔 가득 부어라. 내 뜻대로 하리라." 사나이 일생에 한 번 쯤은 세상과 결별하는 이런 호쾌한 선언 해 봄직 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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