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야누스의 나무들 / 이경임

샌. 2010. 4. 13. 10:09

몸의 반쪽은 봄을 살고

몸의 반쪽은 겨울을 산다

 

꿈의 반쪽은 하늘에 걸어두고

꿈의 반쪽은 땅속에 묻어둔다

 

마음의 반쪽은 광장이고

마음의 반쪽은 밀실이다

 

생각의 반쪽은 꽃을 피우고

생각의 반쪽은 잎새들을 지운다

 

집의 반쪽은 감옥이고

집의 반쪽은 둥지이다

 

- 야누스의 나무들 / 이경임

 

인생은 야누스의 얼굴을 하고 있다. 겉의 얼굴만이 아니라 인생의 본질이 그러하다. 겨울이 있기 때문에 봄이 찾아오고, 피어나는 꽃들은 잎새들을 지우는 약속을 한다. 행복은 불행을 잉태하고, 슬픔은 기쁨의 자식을 키운다. 복(福) 속에는 화(禍)가 숨어 있고, 화는 복을 부른다. 밝고 아름답기만 한 인생이 어디 있으랴. 어둠이 있어야 별은 더욱 밝게 빛나는 법이다.

 

인생이란 정말 그런 것이다. 이만큼 나이가 드니까 이젠 그걸 몸으로도 체득되어 알겠다. 젊었을 때는 인생의 한쪽 면만 추구했다. 그것은 밝고 아름답고 빛나는 세계였다. 반대 세계는 기피하고 부정했다. 그러나 인생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다. 하여 늘 비틀거렸다. 살아보니 어둡고 아프고 추하게 보이는 그 세계가 있어야 우리의 삶은 푸르고 싱싱하게 빛날 수 있는 것이었다.

 

인생의 향기는 잘 익은 상처에서 나온다. 상처가 아프다고 외면하면서 어찌 향기로운 사람이 될 수 있으리. 그렇다면 나에게 닥치는 어떤 도전도 다 아름답게 껴안을 수 있지 않을까. 감옥도 부드러운 둥지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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