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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밤은 너무 밝다

빛 공해를 다룬 책이다. 빛 공해란 인공적인 빛에 의해 밤이 밝아져서 생명체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현상이다. 건물의 과도한 조명, 낮보다 더 환한 쇼윈도, 자동차 전조등, 마당과 골목 구석구석을 밝힌 전등으로 도시를 말할 나위도 없고 농촌에서도 어둠을 몰아냈다. 문명은 환한 밤을 만들었다. 환한 밤은 동식물의 생태 변화로 나타났다. 철새들은 본래의 경로에서 이탈했고, 곤충 수십억 마리는 가로등 아래에서 죽음을 맞이했고, 식물들은 계절 감각을 잃어버렸다. 인간도 예외가 아니다. 빛은 전통적으로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진다. 통찰과 계몽, 순수의 표상이다. 반면에 어둠은 공포, 범죄, 무지와 연결된다. 하지만 빛의 과잉은 여러 문제점을 낳는다. 이웃간의 분쟁의 소지도 된다. 내가 편리하기 위해 밝힌 빛이 다른..

읽고본느낌 2023.03.04

밤이 선생이다

황현산 선생의 산문집이다. 제목에 끌려서 읽게 되었다. 선생의 표현대로라면 낮은 이성의 시간이고 밤은 상상력의 시간이다. 낮이 사회적 자아의 시간이라면 밤은 창조적 자아의 시간이다. 잃어버린 밤을 회복하는 일이 무엇보다 소중한 일임을 믿기에 이런 제목을 달았을 것이다. 낮에 잃은 것을 밤에 찾기란 곧 인문 정신의 회복을 말하는 것이다. 는 한겨레신문에 실었던 칼럼을 중심으로 선생이 쓴 글을 모았다. 진보적 지식인의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확인할 수 있다. 시사성 짙은 글들이 많은데 현실에 비판적이지만 과하지 않고 따스하다. 좀 더 나은 세상, 자유롭고 평등한 세상을 염원하는 그리움이 담겨 있다. 선생이 어린 시절을 보낸 고향 이야기도 자주 등장한다. 개발 시대에 들기 전의 농어촌은 인간다운 삶의 원형으로 ..

읽고본느낌 2014.04.24

잠들지 못하는 나라

언젠가 친구 집 문상을 마치고 밤 두 시경에 서울 시내를 지난 일이 있었다. 이 시간쯤이면 거리가 한가해 쉽게 집에 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웬걸, 사당동에서 이수 사거리를 지나는데 차들이 밀려 빠져나가기가 쉽지 않았다. 거리는 온통 불야성이었고 한밤중인데도 사람들이 많았다. 여느 초저녁 풍경과 다름없었다. 우리나라 도시는 밤이 없다. 어쩌다 모임이 늦게 끝나 밤거리에 나서면 낮보다 더 복잡하고 북적인다. 이 사람들은 언제 잠을 자는지 신기하기만 하다.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밤 12시 이전에 잠자리에 드는 사람이 별로 없다. 특히 젊은이들에게는 한밤중도 낮의 연장일 뿐이다. 그러니 출근 시간의 지하철을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졸고 있다. 잠이 부족하지만 다음날도 일찍 잠들지 못한다. 아이들이..

참살이의꿈 2011.08.28

지구의 밤

이것은 인공위성에서 지구의 밤을 찍은사진입니다. 잘 사는 나라들의 밤은 인공 불빛으로 환하고, 그렇지 않은 나라들은 불빛 하나 보이지 않고 깜깜합니다. 북아메리카와 서유럽, 그리고 동아시아 지역이 눈에 띄게 환합니다. 부와 문명의 편중 현상이 한 눈에 드러나는 사진입니다. 아마 백 년 전이었다면 전 지구가 불빛 하나 보이지 않고 캄캄했을 것입니다. 지구 40여억 년의 역사동안 내내 그랬을 겁니다.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전기 문명이 시작되면서 지구의 밤 풍경은 이렇게 변하고 있습니다. 이런 식이라면 앞으로 백 년 뒤에는 대륙 전체가 온통 빛으로 덮일 것 같습니다. 지구의 이름이 그때는 광구(光球)로 바뀔지 모릅니다. 이 사진은 한반도 주변을 찍은 것입니다. 남한과 북한이 극단적으로 대비되어 보입니다. 북쪽에..

참살이의꿈 2005.12.03

잠들고 싶지 않은 밤

잠들고 싶지 않은 여름밤이 있습니다. 불을 끄고 거실에 누우면 밤의 적막이 서늘한 바람을 몰고 집안으로 들어옵니다. 어디선가 풀벌레 소리만이 잔잔히 들려오는 고요한 여름밤이 그렇습니다. 방에 누워 문득 고개를 돌렸을 때 창문으로 작은 별 하나 반짝이고 있습니다. 알 수 없는 우주의 끝에서 수십만 광년을 날아와 지금 내 눈동자를 간지리는 빛의 신비에 전율하게 되는 여름밤이 그렇습니다. 불꽃놀이처럼 번갯불이 번쩍이며 천둥소리가 가까워지더니 천군만마의 발자국 소리로 소나기가 몰려옵니다. 비릿한 흙내음을 풍기며 한 줄기 세찬 바람이 지나갑니다. 와르르작작 통쾌한 여름밤이 그렇습니다. 존재의 충일함으로 행복한 여름밤입니다. 하는 일도없이, 별 생각도 없이, 그저 가만히 있는 것 만으로 가슴 밑바닥에서 솟아나는 기..

참살이의꿈 2005.07.26

마가리의 밤

산속의 밤은 깊어간다. 드문드문 보이던 농가의 불빛도 밤이 깊어가면서 대부분 꺼지고 인공적인 소리와 빛은 거의 다 사라진다. 다만 띄엄띄엄 있는 동네 보안등만이 여기가 사람 사는 마을임을 지켜내려는 듯 외롭게 빛을 뿜고 있다. 이 시간이 되면 완전한 어둠과 침묵이 동네를 감싼다. 도시의 밤에 익숙한 사람에게 이런 밤의 모습은 일견 두렵기까지 하다. 그러나 며칠 지나지 않아 침묵의 밤은 다정한 친구처럼 다가온다.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다정했던 친구의 모습으로 말이다. 이런 때는 촛불이 어울린다. 정교한 작업을 하지 않는다면 굳이 전등이 필요하지 않다. 여름밤에 촛불 아래서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는 가족의 모습, 창문에 어린 흐릿한 그림자는 너무나 정겹다. 창문을 열고 누워 있으면 서늘한 바람이 잔잔한 풀벌레..

참살이의꿈 2004.08.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