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능 4

정치적 부족주의

"인간에게는 부족 본능이 있다. 우리는 집단에 속해야만 한다. 우리는 유대감과 애착을 갈구한다. 그래서 클럽, 팀, 동아리, 가족을 사랑한다. 완전히 은둔자로 사는 사람은 거의 없다. 수도사나 수사도 교단에 속해 있다. 하지만 부족 본능은 소속 본능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부족 본능은 배제 본능이기도 하다. 어떤 집단은 자발적이고 어떤 것은 그렇지 않다. 어떤 부족은 즐거움과 구원의 원천이고 어떤 것은 권력을 잡으려는 기회주의자들의 증오 선동이 낳은 기괴한 산물이다. 하지만 어느 집단이건 일단 속하고 나면 우리의 정체성은 희한하게도 그 집단에 단단하게 고착된다. 가령 개인적으로는 얻는 것이 없다고 해도 내가 속한 집단 사람들의 이득을 위해 맹렬하게 나서고, 별다른 근거가 없는데도 외부인에게 징벌적인 위..

읽고본느낌 2022.10.23

화가 난 물까치

길을 걷다가 나무에 앉아 있는 물까치 유조를 보았다. 이제 막 둥지에서 나온 듯 날개를 파닥이지만 날지는 못했다. 고개를 들고 지켜보고 있는데 주변에서 물까치 우짖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새끼를 낳고 길렀을 암수 두 마리가 나에게 보내는 경고 신호임이 틀림없었다. "빨리 지나가지 않을래? 가만 두지 않는다." "그래, 알겠다. 네 새끼 해칠 생각이 없는데 왜 이러냐?" 새끼 때문에 애타는 물까치를 괴롭히고 싶지 않아 사진 몇 장만 찍고 자리를 떴다. 그런데 그중 한 놈이 나를 따라오며 계속 야단을 치는 것이었다. 나무라는 소리가 요란했다. "깍~ 깍~, 더 멀리 안 갈래? 앞으로는 이곳에 얼씬도 하지 말라고." 약 50m는 따라왔으리라. 집요한 녀석이었다. 아마 외곽 경비를 책임지는 수컷이 아니었을까..

사진속일상 2021.07.04

팩트풀니스

'팩트풀니스(Factfulness)'는 글쓴이가 만든 말로 '사실충실성'쯤으로 번역이 되겠다. 우리는 '사실'이 아니라 '느낌'과 '선입견'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세계를 왜곡하며 오해하고 있다. 그런 무지의 증거로 책 첫머리에 세계의 현실에 대한 13개의 삼지선다형 질문이 나온다. 나는 고작 4개밖에 못 맞추었는데,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통계학자인 한스 로슬링이 쓴 는 사실(Fact)에 근거한 세계관을 갖도록 다방면의 데이터를 사용해 우리의 오해를 풀어준다. 우리는 많이 아는 것 같지만 제대로 된 지식은 갖고 있지 않다. 사람들은 대체로 세상을 비관적으로 본다. 제일 큰 이유는 언론의 영향 탓이 아닌가 싶다. 폭력, 살인, 전쟁, 테러 등 자극적인 내용이 주된 뉴스거리가 되기 때문이다. 좋은..

읽고본느낌 2020.09.02

염소 / 맹문재

벚꽃이 어지럽게 떨어진 길을 어미 염소가 타달거리며 가고 있다 그 뒤에는 새끼 두 마리가 아니 열 마리 스무 마리가 총총 따른다 우스꽝스러운 몇 가닥의 턱수염 같은 기침을 가끔씩 내뱉으며 간다 어디를 보더라도 새끼를 데리고 갈 힘이 어미 염소에게는 없다 그리하여 가던 걸음 멈추고 구치소의 아들을 면회하는 아버지 같은 얼굴빛으로 하늘을 쳐다본 뒤 다시 길을 간다 그림자가 그 어떤 길도 마다하지 않고 주인을 따르듯 옛날의 어미가 갔던 길을 따라 간다 어미 염소는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어떻게 가야 하는지 모른다 단지 새끼 두 마리가 아니 열 마리 스무 마리가 뒤 따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 뿐 새끼들이 힘이 된다고 생각하고 있을 뿐 - 염소 / 맹문재 인간이 가는 길도 염소의 길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시읽는기쁨 2012.04.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