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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간의 소 이야기 / 백석

병이 들면 풀밭으로 가서 풀을 뜯는 소는 인간人間보다 영靈해서 열 걸음 안에 제 병을 낫게 할 약藥이 있는 줄을 안다고 수양산首陽山의 어뉘 오래된 절에서 칠십七十이 넘은 로장은 이런 이야기를 하며 치맛자락의 산나물을 추었다 - 절간의 소 이야기 / 백석 어릴 적에 집에서 기르던 개가 아플 때 개집에서 꼼짝 않고 엎드려 금식을 하며 버티는 걸 보았다. 멀리서 발자국 소리만 듣고도 뛰어왔는데 내가 다가가도 눈만 끔뻑일 뿐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렇게 며칠을 죽은 듯이 지내다가 어느 날 거동을 시작하고 보란 듯이 회복되었다. 사람은 아프면 온갖 요란을 떠는 데 개는 때를 기다릴 줄 아는 것이었다. 어린 눈에도 무척 신기했다. 절간의 소 이야기도 비슷하지 않나 싶다. 짐승은 인간보다 영(靈)한 면이 있다. 어..

시읽는기쁨 2022.02.04

소의 무심

지난달에는 긴 장마와 폭우로 비 피해가 컸다. 그때 떠내려간 소가 20일 만에 발견되었다는 보도가 며칠 전에 있었다. 뒷산에서 소 울음소리가 들려 올라가 보니 멀리 합천에서 기르던 소였다고 한다. 어떤 소는 100km 이상 떨어진 곳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바다 가운데 무인도에서 찾아낸 소도 있었다. 소는 몸 구조상 부력이 커서 물에 잘 뜬다고 한다. 그리고 성질이 공격적이지 않아 물살에 순응하며 떠내려가기 때문에 오래 생존할 수 있는 반면, 말은 물살을 거슬려 오르려 발버둥치다가 힘이 빠져 빨리 죽는다고 전문가는 말한다. 제 성질을 못 이겨 수명을 재촉한다. 소의 생존 비결에서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배운다. 어릴 때 시골에서는 집집마다 소를 한 마리씩 키웠다. 농기계가 없던 때라 농사를 짓기 위..

참살이의꿈 2020.09.03

소 / 김기택

소의 커다란 눈은 무언가 말하고 있는 듯한데 나에겐 알아들을 수 있는 귀가 없다. 소가 가진 말은 다 눈에 들어 있는 것 같다. 말은 눈물처럼 떨어질 듯 그렁그렁 달려 있는데 몸 밖으로 나오는 길은 어디에도 없다. 마음이 한 웅큼씩 뽑혀나오도록 울어보지만 말은 눈 속에서 꿈쩍도 하지 않는다. 수천만 년 말을 가두어 두고 그저 꿈뻑거리고만 있는 오, 저렇게도 순하고 동그란 감옥이여. 어찌해볼 도리가 없어서 소는 여러 번 씹었던 풀줄기를 배에서 꺼내어 다시 씹어 짓이기고 삼켰다가 또 꺼내어 짓이긴다. - 소 / 김기택 소나무는 한민족의 상징이다. 정서적으로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나무다. 그리고 농사를 짓는데 소만큼 소중한 가축도 없다. 소는 가족의 일원이었다. '소'나무와 '소'가 무슨 연관이 없을까, 고민..

시읽는기쁨 2015.10.26

소 / 권정생

보리짚 깔고 보리짚 덮고 보리처럼 잠을 잔다 눈 꼭 감고 귀 오구리고 코로 숨쉬고 엄마 꿈꾼다 아버지 꿈꾼다 커다란 몸뚱이 굵다란 네 다리 - 아버지, 내 어깨가 이만치 튼튼해요 가슴 쫙 펴고 자랑하고 싶은데 그 아버지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소는 보리짚 속에서 잠이 깨면 눈에 눈물이 쪼르르 흐른다 - 소 / 권정생 선생은 죽는 날까지 오두막에서 병고와 친구하며 자발적 가난을 살았다. 이웃의 가난한 이들의 삶과 똑 같이 산 것이다. 10억이 넘는 그의 인세는 북한의 굶주린 아이들에게 보내달라는 유언으로 남겨졌다. 이 맹렬한 자본주의의 시대에 다시 선생을 기억한다. '물물천(物物天)'이라는 말이 있다. 이 세상 만물이 하늘이고, 하느님의 얼이 들어있다는 뜻이다. 평생을 산속에서 석이(石耳)를 뜯으며 산 어..

시읽는기쁨 2007.09.18

소의 전설

'작은 것이 아름답다' 1월호에서 옛 생각이 나게 하는 글 한 편을 만났다. 상주에서 농사를 짓고 계시는 오덕훈 님이 소에 관하여 쓴 '소의 전설'이라는 글이다. 40대 이상으로 농촌에서 자란 사람이라면 누구나 소에 얽힌 추억들을 갖고 있을 것이다. 농기계가 보급되지 전의 농촌에서는 힘든 일에는 반드시 소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래서 어지간한 집이라면 집집마다 일소가 있었고, 가족처럼 대접받았다. 우리 집에서는 덩치가 큰 황소를 길렀다. 많은 논일을 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성질도 사나워 그 소를 부릴 수 있는사람은 우리 집 일을 주로 도와주던 손씨라는 사람 외에는 없었다. 그때는 온순한 암소를 기르는 집이 무척 부러웠다. 우리 소를 몰고 소띳기로 가고 싶었지만 그럴 기회는 한 번도 주어지지..

길위의단상 2005.0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