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 4

소년

"어른인 척하는, 늙고 덩치만 큰 어린아이들은 많습니다. 하지만 소년을 품은 어른을 만나기란 쉽지 않습니다. 어른이 되지 못하는 이유는 소년을 망각했기 때문입니다. 소년을 잘 간직한 채 성장하여, 어느 한 계절도 빈 곳 없이 속이 탄탄한 나무처럼, 섬세하고 집요한 어른이 되기를 바랍니다. 소년의 아름다움과 도도함을 고이 잘 간직하면 좋겠습니다." 정신분석가인 이승욱 선생이 쓴 의 서문에 나오는 말이다. 은 지은이가 자신의 소년 시절을 정신분석가답게 고스란히 드러내고 해석을 한다. 지은이의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자연스레 내 소년 시절이 겹쳐졌다. 처음 나오는 이야기는 최초의 기억인 원체험(原體驗)이다. 이 기억이 한 사람의 정서를 구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그냥 기억으로만 머무는 게 아니라 ..

읽고본느낌 2022.10.20

작은 짐승 / 신석정

난(蘭)이와 나는 산에서 바다를 바라다보는 것이 좋았다 밤나무 소나무 참나무 느티나무 다문다문 선 사이사이로 바다는 하늘보다 푸르렀다 난이와 나는 작은 짐승처럼 앉아서 바다를 바라다보는 것이 좋았다 짐승같이 말없이 앉아서 바다같이 말없이 앉아서 바다를 바라다보는 것은 기쁜 일이었다 난이와 내가 푸른 바다를 향하고 구름이 자꾸만 놓아 가는 붉은 산호와 흰 대리석 층층계를 거닐며 물오리처럼 떠다니는 청자기빛 섬을 어루만질 때 떨리는 심장같이 자지러지게 흩날리는 느티나무 잎새가 난이의 머리칼에 매달리는 것을 나는 보았다 난이와 나는 역시 느티나무 아래에 말없이 앉아서 바다를 바라다보는 순하디 순한 작은 짐승이었다 - 작은 짐승 / 신석정 시대가 암담하면 서정적 세계에 대한 그리움은 커져가는가 보다. 이 시는 ..

시읽는기쁨 2008.12.23

시골 소년이 부른 노래 / 최서해

나는 봄이면은 아버지 따라 소 끌고 괭이 메고 저 종달새 우는 들로 나갑니다 아버지는 갈고 나는 파고 둥그런 달님이 저 산 위에 솟을 제 시내에 발 씻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어머니가 지어 놓으신 따뜻한 조밥 누이동생 끓여 놓은 구수한 된장찌개에 온 식구는 배를 불립니다 고양이 개까지.... 여름이면은 아버지 따라 호미 메고 낫 들고 저 불볕이 뜨거운 밭으로 갑니다 아버지는 풀을 매고 나는 가라지 뽑고 한낮 몹시 뜨거운 때면 누이동생 갖다주는 단 감주에 목 축이고 버들 그늘 냇가에서 고기도 낚습니다 석양이면은 돌아올 때 소 먹일 꼴 한 짐 잔뜩 베어 지고 옵니다 저녁에는 어머니가 짜서 지은 시원한 베옷 입고 온 식구 모깃불가에 모여 앉아 농사 이야기에 밤 가는 줄 모릅니다 이러하는 새에 앞산에 단풍이 들지요..

시읽는기쁨 2007.08.18

아홉살 인생

비디오로 ‘아홉살 인생’을 보았다. 6, 70년대쯤 되는 경상도 어느 중소도시의 작은 초등학교 3학년 아이들 이야기인데, 서울에서 우림이라는 예쁘고 똑똑한 여자아이가 전학을 오고 그동안 아이들의 대장 노릇을 해 온 여민이 우림을 좋아하게 되면서부터 벌어지는 아이들 사이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이다. 40대 이상의 어른들이라면 대부분 옛 추억에 잠기게 하는 내용으로 각자의 아홉살 시절을 되새겨 보게 한다. 다만 이 영화에서도 어른같은 아이들과 철없는 어른들의 대립 구도가 신경을 좀 거슬리게하는데 아이들을 소재로 하는 영화에서는 꼭 모자라는 어른들이 아이들과 대비되어 그려지는지 모르겠다. 나는 60년대에 경상도 산골 지방에서 초등학교를 다녔다. 한 학년에 두 학급씩 있었는데 유교적 전통이 강해서 그랬는지 항상 ..

읽고본느낌 2004.08.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