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사 12

60.4kg

몸무게가 지금 같이 떨어진 것은 기억에 닿는 한 전에는 없던 일이다. 오늘 아침에 체중계에 올라갔더니 60.4kg이 나왔다. 작년 이맘때 66kg이 넘었으니 6kg이나 빠진 셈이다. 겨울에는 활동량이 줄어드니 보통 몸무게가 늘어난다. 그런데 이번 겨울에는 반대다. 속병 때문에 음식을 제대로 못 먹어서다. 소화가 안 되니 소식을 해야 하고, 기름진 음식은 먹지 못한다. 살이 안 빠질 수가 없다. 먹는 양을 생각하면 지금보다 더 빠져야 하는 게 맞다. 소화불량과 부글거림 증상이 이렇게 오래 가는 건 처음이다. 늙은이는 한 번 탈이 나면 회복하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린다. 덕분에 좋은 점도 있다. 우선 몸이 가벼워서 경쾌하다. 65kg이 넘으면 둔하다. 느낌으로는 내 적정 체중이 61kg 내외인 것 같다. 나..

길위의단상 2019.02.15

여름에는 저녁을 / 오규원

여름에는 저녁을 마당에서 먹는다 초저녁에도 환한 달빛 마당 위에는 멍석 멍석 위에는 환한 달빛 달빛을 깔고 저녁을 먹는다 마을도 달빛에 잠기고 밥상도 달빛에 잠기고 여름에는 저녁을 마당에서 먹는다 밥그릇 안에까지 가득 차는 달빛 아! 달빛을 먹는다 초저녁에도 환한 달빛 - 여름에는 저녁을 / 오규원 정말 그랬다. 그 시절 여름에는 저녁을 마당에서 먹었다. 초가지붕 위로 달이 떠오르고, 한쪽에는 모깃불 연기가 매캐한 가운데 멍석 위에 상이 차려졌다. 처마에 남포등이 흔들거렸지만 달빛이 오히려 환했다. 둥근 상 둘에 아홉 명이 둘러앉았다. 드문드문 말소리, 간간이 터지는 웃음소리, 수저를 놓고 멍석에 누우면 이만큼 뜬 달이 가득 들어왔다. 외양간의 소도 고단한 몸을 쉬며 고개를 딸랑거렸다. 지금은 마당 없는..

시읽는기쁨 2015.07.09

딱 / 최재경

아버지는, 밥상머리에서 밥을 복 나가게 먹는다고 수저로 대갈빡을 때렸다 말로 해도 될 것을 쳐다보았더니, 대든다고 또 때렸다 "딱" 어지간히 익은 소리가 났다 엄마도 모르게 은수저를 내다버렸다 다음날도, 지금까지도 아무도 더는 물어보지 않았다 열대여섯쯤 되던 해였다 지금도, 그 자리를 만져보면 대갈빡에서 "딱" 소리가 난다 복이 나갔는지 들어왔는지 알 수가 없다 - 딱 / 최재경 맛있게 밥을 먹는 자식 쳐다보는 것만큼 큰 기쁨도 없다. 부모의 마음이다. 나 역시 자식 키울 때 그랬다. 자주 야단친 게 아이들의 식사 태도였다. 젓가락으로 밥알을 세며 밥을 먹는다든지, 꼭 한 숟가락을 남기는 버릇 등, 속이 상한 게 많았다. 어느 날은 이 시에 나오는 아버지가 되었다. 가끔 아내가 그때의 사건을 상기시켜 준..

시읽는기쁨 2014.05.25

식사의 품위

아내가 날 편하게 느끼는 것 중 하나가 먹는 데에 무던한 것이다. 이제껏 반찬 투정을 해 본 적이 거의 없다. 식사는 간소한 게 좋다는 주의라 군대식대로 늘 1식3찬을 강조한다. 있는 반찬 아무거나 한두 개만 있으면 만족한다. 배고플 때 냉장고를 열고 혼자서도 잘 챙겨 먹는다. 부엌 출입하는데 남편 아내의 구별이 없다. 집에서 빈둥거리고 있어도 다행히 삼식이 새끼라는 핀잔은 듣지 않는다. 그래서 유별나게 반찬 투정을 하거나 식탐(食貪)을 하는 사람을 보면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유명 맛집을 찾아다니는 것까지는 좋으나, TV의 음식점 소개 프로그램에 나오는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것은 정말 꼴불견이다. 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 먹는 걸 탐하는 걸 보면 측은해 보인다. 사는 게 너무 천박해 보이기 때문이다. ..

참살이의꿈 2013.11.04

식사법 / 김경미

콩나물처럼 끝까지 익힌 마음일 것 쌀알빛 고요 한 톨도 흘리지 말 것 인내 속 아무 설탕의 경지 없어도 묵묵히 다 먹을 것 고통, 식빵처럼 가장자리 떼어버리지 말 것 성실의 딱 한 가지 반찬만일 것 새삼 괜한 짓을 하는 건 아닌지 제명에나 못 죽는 건 아닌지 두려움과 후회의 돌들이 우두둑 깨물리곤 해도 그깟것 마저 다 낭비해버리고픈 멸치똥 같은 날들이어도 야채처럼 유순한 눈빛을 보다 많이 섭취할 것 생의 규칙적인 좌절에도 생선처럼 미끈하게 빠져나와 한 벌의 수저처럼 몸과 마음을 가지런히 할 것 한 모금 식후 물처럼 또 한 번의 삶,을 잘 넘길 것 - 식사법 / 김경미 "밥 먹을 때는 말 하는 게 아니다." "음식 넘기는 소리도 내지 마라." 어릴 때 받았던 밥상머리 교육이었다. 그때는 열 명이나 되는 식..

시읽는기쁨 2013.10.12

소식소동(小食小動)

겨울이 되니 몸을 덜 움직이게 된다. 추운 날씨가 바깥 걸음을 망설이게 한다. 걷는 시간이 다른 계절의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겨울은 활동보다는 휴식의 계절이다. 동물도 먹이를 구하는 때 외에는 활동을 자제하고 아예 겨울잠을 자기도 한다. 나무는 말할 나위도 없다. 인간도 겨울에는 적게 활동하는 게 자연의 순리에 맞는 일이다. 자연의 리듬에 맞추어 산 옛날 농부들은 겨울 한 철을 농한기라고 하여 쉬었다. 그런데 적게 움직여도 먹는 양은 그대로니 살이 찌는 게 문제다. 아침 공복 상태에서도 체중계에 올라가면 지금은 65kg을 훌쩍 넘는다. 사상 최고의 기록이다. 전에는 항상 62kg 사이를 오르내렸다. 그때가 몸 상태가 제일 좋다. 몸무게를 줄이자면 음식을 절제해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된다. 집에서 노니 ..

길위의단상 2012.01.06

황홀한 국수 / 고영민

반죽을 누르면 국수틀에서 국수가 빠져나와 받쳐놓은 끓는 솥으로 가만히 들어가 국수가 익듯, 익은 국수를 커다란 소쿠리째 건져 철썩철썩, 찬물에 담갔다가 건져내듯, 손 큰 내 어머니가 한 손씩 국수를 동그렇게 말아 그릇에 얌전하게 앉히고 뜨거운 국물을 붓듯, 고명을 얹듯, 쫄깃쫄깃, 말랑말랑 그 매끄러운 국숫발을 허기진 누군가가 후루룩 빨아들이듯, 이마에 젖은 땀을 문지르고 허, 감탄사를 연발하며 국물을 다 들이키고 나서는 빈 그릇을 가만히 내려놓은 검은 손등으로 입가를 닦듯, 살다 갔으면 좋겠다. - 황홀한 국수 / 고영민 시장 한구석, 허름한 국숫집을 찾아 한 끼를 때우는 고단한 사람의 굽은 등이 보인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검은 손등으로 입가를 닦으며 빈 그릇을 내려놓는다. 어떤 산해진미보다 ..

시읽는기쁨 2011.12.23

깨끗한 식사 / 김선우

어떤 이는 눈망울 있는 것들 차마 먹을 수 없어 채식주의자가 되었다는데 내 접시 위의 풀들 깊고 말간 천 개의 눈망울로 빤히 나를쳐다보기 일쑤, 이 고요한 사냥감들에도 핏물 자박거리고 꿈틀거리며 욕망하던 뒤안 있으니 내 앉은 접시나 그들 앉은 접시나 매일반, 천년 전이나 만년 전이나 생식을 할 때나 화식을 할 때나 육식이나 채식이나 매일반. 문제는 내가 떨림을 잃어간다는 것인데, 일테면 만년 전의 내 할아버지가 알락꼬리암사슴의 목을 돌도끼로 내려치기 전, 두렵고 고마운 마음으로 올리던 기도가 지금 내게 없고 (시장에도 없고) 내 할머니들이 돌칼로 어린 죽순 밑둥을 끊어내는 순간, 고맙고 미안해하던 마음의 떨림이 없고 (상품과 화폐만 있고) 사뭇 괴로운 포즈만 남았다는 것. 내 몸에 무언가 공급하기 위해 ..

시읽는기쁨 2008.05.19

흰 별 / 이정록

볍씨 한 톨 매만지다가 앞니 내밀어 껍질을 벗긴다 쌀 한 톨에도, 오돌토돌 솟구쳐 오른 산줄기가 있고 까끄라기 쪽으로 흘러간 강물이 있다 쌀이라는 흰 별이 산맥과 계곡을 갖기 전 뜨물, 그 혼돈의 나날 무성했던 천둥 번개며 개구리 소리들 문득 내 머리 속에 논배미라는 은하수와 이삭별자리가 출렁인다 알 톡 찬 볍씨 하나가 밥이 되어 숟가락에 담길 때 별을 삼키는 것이다 밤하늘 별자리를 통째로 품는 것이다 - 흰 별 / 이정록 시인의 눈은 작은 쌀 한 톨에서 산줄기와 강물을 본다. 그리고 쌀 한 톨 속에 들어있는 천둥 번개, 개구리 소리 등을 읽어낸다. 쌀 한 톨을흰 별로 본 시인의 눈이재미있다. 가을 들녘은 밤하늘의 은하수로 환하다. 밥을 먹는 것은 거룩한 일이다. 온 우주를 통째로 내 안에 모시는 것이다..

시읽는기쁨 2007.10.10

소식(小食)의 결심

새해가 되었다고 해서 새로운 목표를 세우거나 특별한 결심을 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올해는 우연히 하나의 결심을 하게 되었다.연초의 어느 날이었는데 TV에서 반식(半食)을 통한 다이어트 강의를 들은 것이 계기였다. 내 자신이 다이어트가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그 강의를 통해 내 식사 습관을 고쳐야 되겠다고 느낀 것이다. 나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삼복(三福)을 타고났다는 말을자주 듣는다. 예부터 쾌식(快食), 쾌변(快便), 쾌면(快眠)을 삼쾌(三快) 또는 삼복이라고 불렀다. 쉬운 말로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는나는 타고난 행운아이다.아내는 변비와 불면증으로 심하게 고생하는데 옆에서 지켜보기에 무척 안스럽지만솔직히 그 심정을 헤아리지는 못한다. 내가 그 고통을 직접 경험하지 못하기 때..

참살이의꿈 2007.01.25

제대로 밥 먹기

‘작은 것이 아름답다’ 8월호에 황대권 님의 ‘션찮은 반찬으로 맛있게 밥 먹기’라는 제목의 글이 실렸습니다. 새겨들을 만한 내용이어서 글을 부분적으로 발췌, 요약해 봅니다. 음식점에서 정식을 시키면 한 상 가득 찬과 요리가 나오고 밥은 가장 나중에 나온다. 밥을 먹을 때쯤이면 이미 과식 상태다. 언제부터인가 한국인들은 밥 먹으러 가자 해 놓고는 밥은 조금 먹고 찬만 잔뜩 먹고 오는 게 당연한 일처럼 되어 버렸다. 이것이 육식은 일상화되면서 생긴 식습관이다. 고기에 야채를 곁들여 먹으면 곡기가 없어도 되는 것이다. 현대인들은 이미 고기 맛에 길들여진 몸의 요구를 어쩌지 못한다. 그 중독에서 벗어나려면 상당한 결심과 의지가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찬이 아니라 밥 위주로 식사를 하는 것이다. 반찬은 그저 그런..

참살이의꿈 2006.0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