볍씨 한 톨 매만지다가
앞니 내밀어 껍질을 벗긴다
쌀 한 톨에도, 오돌토돌
솟구쳐 오른 산줄기가 있고
까끄라기 쪽으로 흘러간 강물이 있다
쌀이라는 흰 별이
산맥과 계곡을 갖기 전
뜨물, 그 혼돈의 나날
무성했던 천둥 번개며 개구리 소리들
문득 내 머리 속에
논배미라는 은하수와
이삭별자리가 출렁인다
알 톡 찬 볍씨 하나가
밥이 되어 숟가락에 담길 때
별을 삼키는 것이다
밤하늘 별자리를
통째로 품는 것이다
- 흰 별 / 이정록
시인의 눈은 작은 쌀 한 톨에서 산줄기와 강물을 본다. 그리고 쌀 한 톨 속에 들어있는 천둥 번개, 개구리 소리 등을 읽어낸다. 쌀 한 톨을흰 별로 본 시인의 눈이재미있다. 가을 들녘은 밤하늘의 은하수로 환하다.
밥을 먹는 것은 거룩한 일이다. 온 우주를 통째로 내 안에 모시는 것이다. 그러나 아는 것과 체험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나는 한 번도 밥 먹는 일을 이렇게 진지하게 대한 적 없다. 밥이 밤하늘 별자리라는 걸알지만 그것은 책상머리 지식일 뿐이기 때문이다. 내가 안다는 것, 또는 믿는다는 것이 대부분 이 수준이다.
'시읽는기쁨'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늘 / 구상 (0) | 2007.10.23 |
---|---|
나를 위로하며 / 함민복 (3) | 2007.10.17 |
당신을 보았습니다 / 한용운 (2) | 2007.10.07 |
위심(違心) / 이규보(李奎報) (2) | 2007.10.02 |
찰나 속으로 들어가다 / 문태준 (2) | 2007.09.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