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흰 별 / 이정록

샌. 2007. 10. 10. 10:51

볍씨 한 톨 매만지다가

앞니 내밀어 껍질을 벗긴다

 

쌀 한 톨에도, 오돌토돌

솟구쳐 오른 산줄기가 있고

까끄라기 쪽으로 흘러간 강물이 있다

 

쌀이라는 흰 별이

산맥과 계곡을 갖기 전

뜨물, 그 혼돈의 나날

무성했던 천둥 번개며 개구리 소리들

 

문득 내 머리 속에

논배미라는 은하수와

이삭별자리가 출렁인다

 

알 톡 찬 볍씨 하나가

밥이 되어 숟가락에 담길 때

별을 삼키는 것이다

 

밤하늘 별자리를

통째로 품는 것이다

 

- 흰 별 / 이정록

 

시인의 눈은 작은 쌀 한 톨에서 산줄기와 강물을 본다. 그리고 쌀 한 톨 속에 들어있는 천둥 번개, 개구리 소리 등을 읽어낸다. 쌀 한 톨을흰 별로 본 시인의 눈이재미있다. 가을 들녘은 밤하늘의 은하수로 환하다.

 

밥을 먹는 것은 거룩한 일이다. 온 우주를 통째로 내 안에 모시는 것이다. 그러나 아는 것과 체험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나는 한 번도 밥 먹는 일을 이렇게 진지하게 대한 적 없다. 밥이 밤하늘 별자리라는 걸알지만 그것은 책상머리 지식일 뿐이기 때문이다. 내가 안다는 것, 또는 믿는다는 것이 대부분 이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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