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수 3

술값 / 신현수

말 많이 하고 술값 낸 날은 잘난 척한 날이고 말도 안하고 술값도 안낸 날은 비참한 날이고 말 많이 하고 술값 낸 날은 그중 견딜만한 날이지만 오늘, 말을 많이 하고 술값 안낸 날은 엘리베이터 거울을 그만 깨뜨려버리고 싶은 날이다. 술값 / 신현수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것은 염치다. 염치(廉恥)란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다. 염치를 모르는 인간이 지도자가 되면 나라는 불행해진다. 무지, 오만, 비굴, 탐욕의 인간 군상들을 매일 TV로 접한다. 참으로 뻔뻔하다. 갑남을녀 대부분은 술값 몇 푼으로 조바심친다. 조무래기라 그런 걸까? 염치는 헌신짝처럼 차버려야 높은 자리에 올라갈 수 있는가 보다. 차라리 위선이 그리워지는 요즈음이다.

시읽는기쁨 2016.12.14

난 좌파가 아니다 / 신현수

비 내리는 날 낡은 유모차에 젖은 종이박스 두어 장 싣고 가는 노파를 봐도 이제 더 이상 가슴 아프지 않으므로 난 좌파가 아니다 네온 불 휘황한 신촌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 위 온몸을 고무로 감고 사람의 숲을 뚫고 천천히 헤엄쳐가는 장애인을 봐도 이제 더 이상 가슴 저리지 않으므로 난 좌파가 아니다 천일 가까이 한뎃잠을 자며 농성을 벌이고 있는 노동자들을 봐도 이제 그 이유조차 궁금하지 않으므로 난 좌파가 아니다 제초제를 마시고 죽은 농민을 봐도 몸에 불 질러 죽은 농민을 봐도 아무런 마음의 동요가 없으므로 안타까운 마음이 들지 않으므로 난 좌파가 아니다 난 좌파가 아니다 - 난 좌파가 아니다 / 신현수 한번도 좌파 소리 들어보지 못하고 산 게 후회스러울 때가 있다. 그렇다고 지금 와서 큰소리 치다가는 좌..

시읽는기쁨 2016.10.10

교실 풍경 / 신현수

(너무나 감격스러운 어조로, 약간 눈물도 글썽이며) 너희들이 태어나던 해에 우리나라 남쪽에서 아주 불행한 일이 있었단다 어떤 욕심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아무런 죄도 없는 많은 사람들을 총으로 칼로 죽였단다 그 후에도 그 일을 다른 곳에 알리고자 한 사람 그 일이 잘못되었다고 말한 사람들이 계속 피를 흘리면서 죽어갔단다 그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아 이제 정부에서 그 공로를 인정하고 그날 이후의 희생된 넋들을 기리기 위해 오늘부터 기념일로 제정하기로 했단다, 얘들아 (멀뚱멀뚱한 표정으로) 선생님! 그럼 내년부터 5월 18일날 놀아요? - 교실 풍경 / 신현수 막막한 벽을 마주치는 곳이 어디 교실 뿐이겠는가? 요즈음 처럼 '한 사회를 지배하는 이념은 지배 계급의 이념이다'라는 칼 마르크스..

시읽는기쁨 2006.1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