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교실 풍경 / 신현수

샌. 2006. 10. 18. 09:30

(너무나 감격스러운 어조로, 약간 눈물도 글썽이며)

너희들이 태어나던 해에 우리나라 남쪽에서

아주 불행한 일이 있었단다

어떤 욕심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아무런 죄도 없는 많은 사람들을 총으로 칼로 죽였단다

그 후에도 그 일을 다른 곳에 알리고자 한 사람

그 일이 잘못되었다고 말한 사람들이

계속 피를 흘리면서 죽어갔단다

그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아

이제 정부에서 그 공로를 인정하고

그날 이후의 희생된 넋들을 기리기 위해

오늘부터 기념일로 제정하기로 했단다, 얘들아

 

(멀뚱멀뚱한 표정으로)

선생님! 그럼 내년부터 5월 18일날 놀아요?

 

- 교실 풍경 / 신현수

 

막막한 벽을 마주치는 곳이 어디 교실 뿐이겠는가? 요즈음 처럼 '한 사회를 지배하는 이념은 지배 계급의 이념이다'라는 칼 마르크스의 명제를 실감하는 때도 없다. 한강의 괴물보다는 보이지 않는 우리 마음 속의 괴물이 훨씬 더 무섭다.

 

친구가 잘 하는 말이 있다. "책을 한 권만 읽은 사람이 제일 무섭다." 그는 한 권의 논리로 온 세상을 재단한다. 현대인의 눈과 마음은 태어날 때부터 언론에 의해 길들여진다. 어느 사람은 그것을 '자발적 복종의식'이라고 불렀다. 요즈음 아이들은 깊이 있는 생각을 하기 싫어한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자기와 관계와 없으면 무관심하다. 그들은 어떻게 체제에 잘 적응해 나가느냐가 제일 큰 고민이다. 그들은 무비판적으로 차가운 경쟁 사회를 받아들인다. 그것이 세상이 요구하는 바이고, 젊은이들조차 같은 노래를 부르는 것이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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