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하늘과 땅 / 산도르 마라이

샌. 2006. 10. 9. 10:05

나는 하늘과 땅 사이에 산다

불멸의 신적인 것을 가슴에 품고 있지만

방 안에 혼자 있으면 코를 후빈다

내 영혼 안에는 인도의 온갖 지혜가 자리하고 있지만

한번은 카페에서 술취한 돈 많은 사업가와 주먹질하며 싸웠다

나는 몇 시간씩 물을 응시하고 하늘을 나는 새들을 뒤좇을 수 있지만

어느 주간 신문에 내 책에 대한 파렴치한 논평이 실렸을 때는

자살을 생각했다

세상만사를 이해하고 슬기롭게 마음의 평정을 유지할 때는

공자의 형제지만

신문에 오른 참석 인사의 명단에 내 이름이 빠져

있으면 울분을 참지 못한다

나는 숲 가에 서서 가을 단풍에 감탄하면서도

자연에 의혹의 눈으로 꼭 조건을 붙인다

이성의 보다 고귀한 힘을 믿으면서도

공허한 잡담을 늘어놓는 아둔한 모험에 휩쓸려

내 인생의 저녁시간의 대부분을 보냈다

그리고 사랑을 믿지만 돈으로 살 수 있는 여인들과 함께 지냈다

나는 하늘과 땅 사이의 인간인 탓에

하늘을 믿고 땅을 믿는다

아멘

 

- 하늘과 땅 / 산도르 마라이

 

젊었을 때는 하늘은 하늘이었고 땅은 땅이었다. 하늘과 땅은 수만 리나 떨어져 있었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 눈을 들어보니 먼 지평선에서 하늘과 땅은 맞닿아 있었다. 하늘이 땅이고, 땅이 곧 하늘이었다. 그러나 하늘은 하늘대로, 땅은 땅대로, 있는 그대로 보고 인정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매 순간 체험하고 있다. 하늘과 땅은 아직도 내 속에서 분리되어 있는 탓이다.

 

선악과를 따먹은 뒤부터 인간은 하늘과 땅을 나누고, 선과 악을 나누고, 빛과 어둠을 구별하고, 천사와 사탄을 만들었다. 하늘과 땅 사이의 갈등과 번민이 시작된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밝아진 눈이 짊어져야만 할 업보이다.

 

나 역시하늘과 땅 사이의 인간인 탓에, 하늘을 믿고 동시에 땅을 믿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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