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집오리는 날지 않을까, 기러기목에 속하는
우아하고 튼튼한 날개를 접어 퇴화시키며
저 넓고 푸른 하늘의 자유를 포기한 채
일용할 하루의 양식을 위해
도시의 더러운 시궁창에 거룩한 황금색 부리는 묻는
날지 않는 새, 집오리
시립 도서관의 먼지 쌓인 서가처럼
TV 앞에 침묵하는 우리들처럼
스포츠에 거세당한 이 시대처럼
날지 않는 집오리여, 너는 새다
길들여진 관습과 타성의 질긴 그물을 찢으며
빈 발목을 죄는 불안한 시대의 불안한 생존
사육의 쇠사슬을 풀고, 혁명하라
날아라 집오리여, 새여
달 밝은 우리나라의 가을밤
기역 자 시옷 자로 무리지어 힘차게 날아가는
쇠기러기, 청둥오리떼를 따라 우리 다 함께
무서운 무리의 힘으로 힘차게 날개짓 하며
산맥을 넘어 국경을 넘어
자유의 하늘로 푸른 하늘로
- 집오리는 새다 / 정일근
집오리는 모른다. 자유가 무엇이고, 해방이 무엇인지를.
집오리는 고민하지 않는다. 먹이가 어디서 오고, 공짜로 얻는 먹이의 대가가 무엇인지를.
그리고 집오리는 질문하지 않는다. 길들여진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우리 또한 잘 길들여진 집오리들이다. 얼음 덮인 바이칼호의 기억은 다 사라졌다. 한 줌의 먹이를 위해 기꺼이 우아하고 튼튼한 날개를 내어준다.
그러나 집오리는 새다. 혁명을 꿈꾸는 집오리는 살아있다.
'사슬의 쇠사슬을 풀고, 혁명하라
날아라 집오리여, 새여....
산맥을 넘어 국경을 넘어
자유의 하늘로 푸른 하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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