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양하 3

나무 기도 / 정일근

새해에는 나무처럼 살고 싶다 우린 너무 빠르다, 세상은 달려갈수록 넓어지는 마당 가졌기에 발을 가진 사람의 역사는 하루도 편안히 기록되지 못했다 그냥 나무처럼 붙박혀 살고 싶다 한 발자국 움직이지 않고 어린 자식 기르며 말씀 빚어내고 빈가지로 바람을 연주하는 나무로 살고 싶다 사람들의 세상은 또 너무 입이 많다 입이 말을 만들고 말이 상처를 만들고 상처는 분노를 만들고 분노는 적을 만들고 그리하여 입 속에서 전쟁이 나온다 말하지 않고도 시를 쓰는 나무의 은유처럼 온몸에 많은 잎을 달고도 진실로 침묵하는 나무가 되고 싶다 침묵으로 웅변하는 나무가 되고 싶다 삶은 베풀 때 완성되느니 그늘 주고 꽃 주고 열매 주는 나무처럼 추운 아궁이의 뜨거운 불이 되어주기도 하고 사람의 따뜻한 가구가 되는 나무처럼 가진 것..

시읽는기쁨 2017.01.01

이양하 수필

우울한 대한민국에서 도피하고파 이양하 수필집을 꺼냈다. 선생의 수필은 진흙탕 현실에서 한발 뒤로 물러나 안분지족(安分知足)을 꿈꾸게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소년 시절도 떠오른다. 고등학교 때 국어 교과서에서 만난 '신록 예찬' '페이터의 산문'은 50년이 된 지금도 명료하다. 어려운 한자가 많이 나왔지만 고전적인 문체는 사람을 끌게 하는 매력이 있었다. 나이나 분위기에 따라 같은 글이라도 느낌이 다르다. 고등학생 때 만난 선생의 수필에는 봄의 설렘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 다시는 그런 느낌을 맛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때는 멀리서 들리는 소리였다면, 지금은 내 내면에서 울려오는 소리 같다. 그러나 선생의 수필도 지금의 내 우울한 마음을 온전히 위로해주지 못한다. 너무 막막하고 답답한 현실이다. '페이터의 ..

읽고본느낌 2016.12.24

나무

어쩌다 이과를 선택해서 물리를 전공하게 되었지만 중고등학교 때 가장 좋아한 과목은 국어였다. 당연히 성적도 다른 과목에 비해 높게 나왔다. 지금 되돌아보아도 제일 기억에 남는 선생님 또한 국어 선생님이시다. 고등학교 1 학년 때 국어 선생님은 얼마나 글을 감칠맛이 나게 풀이하시는지 국어 시간이면 늘 가슴이 콩닥거렸다.나중에 고문(古文) 공부를 하면서는 흥미가 떨어졌지만 국어를 좋아하게 된 것은 그시간을 통해 아름다운 글들을 만나는 기쁨이 큰 이유였던 것 같다. 나에게 그런 문과적 기질이 있는지 수업에 들어가면 아이들로부터 국어 선생님 같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그것이 물리를 제대로 못 가르친다는 의미도 되겠지만 그래도 나는 기분이 좋다. 내 삶을 돌아보아도 끊임없이 문과로의 방향 전환을 시도했던 적이 많..

길위의단상 2008.1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