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 11

흔들리며 흔들거리며

탁현민 씨가 쓴 여행 수상집이다. 글을 쓴 시점이 문재인이 대선에 패배했던 직후인 2013년이다. 문재인 캠프에서 일한 탁현민 씨는 패배의 충격으로 파리에서 석 달간 자발적 유폐 생활을 한다. 이때의 감상을 글로 적어서 책으로 냈다. 탁현민 씨는 2017년 대선에서 문재인이 당선된 후 이름을 알게 되었다. 뛰어난 공연 연출가로 중요한 대통령 행사를 지휘했다. 대표적인 게 남북 정상이 만난 판문점 회동이다. 고식적인 형식을 탈피한 파격적인 연출이었다. 금방 남북 화해가 이루어질 듯 가슴을 뛰게 했으나 지나고 보니 결과는 도로아미타불이 되었다. 당시 야권에서 보여주기식 쇼는 그만두라고 했는데 일부 맞는 말이기도 했다. 에는 선거 결과에 상심한 한 사람의 솔직한 심정이 담겨 있다. 나도 그때 허탈한 기분을 달..

읽고본느낌 2022.04.02

세월호

4월 16일은 온 나라를 슬픔에 잠기고 분노에 떨게 했다. 사고에 대한 책임을 묻고 나라를 혁신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생겼다. 그리고 다섯 달이 지난 지금, 달라진 건 하나도 없다. 유족들이 요구하는 진상조사위원회 하나 구성하지 못하고 있다. 대통령이 나서서 해경을 해체하는 등 국가 개혁안을 발표했지만 어떻게 진행되는지 감감무소식이다. 중요한 건 잘못된 국가 체제를 뜯어고치는 것인데 곁다리로만 변죽을 울리고 정작 핵심은 회피하고 있다. 엉뚱한 한 사람을 잡는다고 헛발질만 하면서 국민의 관심을 교묘하게 따돌린 꼴이 되었다. 이젠 세월호 피로증까지 언급하니 세상 변화에 대한 기대는 물 건너갔다.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줄을 서서 분향소를 참배하며 흘린 눈물은 다 어디로 간 것인가. 냄비 근성이라고 우리 국..

참살이의꿈 2014.09.18

그대 앞에 봄이 있다 / 김종해

우리 살아가는 일 속에 파도치는 날 바람 부는 날이 어디 한두 번이랴 그런 날은 조용히 닻을 내리고 오늘 일을 잠시라도 낮은 곳에 묻어두어야 한다 우리 사랑하는 일 또한 그 같아서 파도치는 날 바람 부는 날은 높은 파도를 타지 않고 낮게 낮게 밀물져야 한다 사랑하는 이여 상처받지 않은 사랑이 어디 있으랴 추운 겨울 다 지내고 꽃 필 차례가 바로 그대 앞에 있다 - 그대 앞에 봄이 있다 / 김종해 생활고를 견디지 못해 목숨을 끊는 사람들 소식이 연이어 들린다. 보도에 나오지 않는 것까지 포함하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런 선택을 하는지 가슴이 아플 따름이다. 지병으로 일을 할 수 없어 생활비를 벌지 못하게 된 어머니는 두 딸과 함께 이승을 버렸다. "죄송합니다.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시읽는기쁨 2014.03.13

별 / 정진규

별들의 바탕은 어둠이 마땅하다 대낮에는 보이지 않는다 지금 대낮인 사람들은 별들이 보이지않는다 지금 어둠인 사람들에게만 별들이 보인다 지금 어둠인 사람들만 별들을 낳을 수 있다 지금 대낮인 사람들은 어둡다 - 별 / 정진규 지금 슬퍼하는 당신, 별을 볼 수 있는 당신은 행복합니다. 지금 아파하는 당신, 별을 낳을 수 있는 당신은 행복합니다. 어둠은 다가오는 새벽 때문이 아니라 어둠 그 자체로 환하답니다. 지금 웃고 즐거워하는 당신, 당신의 가슴에서는여전히 별들이 빛나고 있나요? 스스로 너무 밝으면 별들은 사라진답니다. 지금 대낮인 사람은 어둡습니다.

시읽는기쁨 2010.12.13

서울의 예수 / 정호승

1. 예수가 낚싯대를 드리우고 한강에 앉아 있다. 강변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예수가 젖은 옷을 말리고 있다. 들풀들이 날마다 인간의 칼에 찔려 쓰러지고 풀의 꽃과 같은 인간의 꽃 한 송이 피었다 지는데, 인간이 아름다워지는 것을 보기 위하여, 예수가 겨울비에 젖으며 서대문 구치소 담벼락에 기대어 울고 있다. 2. 술 취한 저녁, 지평선 너머로 예수의 긴 그림자가 넘어간다. 인생의 찬밥 한 그릇 얻어먹은 예수의 등 뒤로 재빨리 초승달 하나 떠오른다. 고통 속에 넘치는 평화, 눈물 속에 그리운 자유는 있었을까. 서울의 빵과 사랑과, 서울의 빵과 눈물을 생각하며 예수가 홀로 담배를 피운다. 사람의 이슬로 사라지는 사람을 보며 , 사람들이 모래를 씹으며 잠드는 밤, 낙엽들은 떠나기 위하여 서울에 잠시 머물고 예수..

시읽는기쁨 2009.11.09

인식의 힘 / 최승호

도마뱀의 짧은 다리가 날개 돋힌 도마뱀을 태어나게 한다 - 인식의 힘 / 최승호 '절망한 자는 대담해지는 법이다'라는 니체의 말이 부제로 달린 짧은 경구 같은 시다. 그러나 시의 느낌이 매우 강렬하다. 날개 돋힌 도마뱀은 중생대의익룡을 가리키는 것 같다. 다리가 짧았던 도마뱀은 날쌔고 힘센 공룡에게 쫓기며 대책 없이 무수히 절벽을 뛰어내렸을 것이다. 그런 수천 만 년의 절망이 날개를 돋아나게 했다. 그리고 새의 시조가 되었다. 그런 점에서 절망이야말로 새로운 도약과 혁명의 출발점이다. 만족한 돼지는 우리 밖의 세계를 꿈꾸지 않는다. 친구여, 절망을 두려워 말자. 절망과 도전이 아니었다면이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절망은 희망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시읽는기쁨 2009.03.23

값싼 희망보다는 절망이 낫다

값싼 희망보다는 차라리 절망이 낫다. 왜냐하면 절망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알고 다시 솟아날 구멍을 찾기 때문이다. 그러나 값싼 희망은 절망적 현실을 절망으로 인식하기는 커녕 희망으로 착각하고 그 속에 안주한다. 거짓 희망에서 위안을 구하고, 비극적 현실에 대해서는 눈을 감는다. 그것이 희망이 절망보다 무서운 이유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절망하는 것이다. 온 땅을 파헤치고 온 강을 파내어 시멘트로 바르고 대운하를 만들어국토를 온통 만신창이로 만들어야 한다. 농촌을 없애고 식량자급률을 0 %까지 떨어뜨려야 한다. 혼자서 만 명, 십만 명을 먹여살릴 수 있는 엘리트를 키워내는 천재학교만 집중육성해야 한다. 그래서 밑바닥까지 내려간 다음에라야, 절망의 심연에 이르른 뒤에라야, 정신을 차리고 새로 출..

길위의단상 2008.03.29

절망이 아니었던 시대가 있었던가

동료들과의 술자리에서 후배 K가 현실 상황의 절망감에 대해 울분을 토로했다. 늘 올곧게 생각하고 살려는 사람이라 답답해 하는 심정이 충분히 이해되었고 공감이 되었다. 선거로 과연 행복한 나라를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한 얘기도 나왔고, 대중들 수준이 이런 단계에 머물러서는 결코 민의가 역사를 발전시킬 수 없다는데 대해서도 공감했다. 이 시대의 화두는 오직 경제다. 코 앞에 닥친 대통령 선거에서 경제가 최대 이슈가 되고 있고, 국민들 관심사도 부자가 되는 것밖에는 없는 것 같이 보인다. 심하게 말하면 우리 국민들 머리 속에는 오직 먹고사니즘 밖에 없다. 그런 분위기에서는극심한 생존경쟁과 승자독식의 사회로 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고, 사람들은 제 덫에 빠져 허덕이게 된다. 그런 현실의 아귀다툼에서 한 발짝 물러..

길위의단상 2007.12.06

수레바퀴 아래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의 중요성은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연초 한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사람들의 새해 소망을 조사했더니 1위가 대박을 터뜨리는 것이었다고 한다. 땅에서, 주식에서, 또는 로또 대박이 새해 소망 수위를 차지했다. 돈이 많다는 것, 또는 돈을 많이 번다는 것은 이젠 개인의 전인적인 능력과 동일시되어 버렸다. 결혼 적령기의 여성이 남성을 선택할 때 제일 조건 또한 경제적 능력이라고 한다. 이것은 후손을 잘 기르기 위한 본능적 이끌림일 테니 비난할 수도 없다. 그만큼 사회가 돈 중심의 사회로 변하고 있다는 증거라 할 수 있다. 그래도 예전에는 성격이라든가 사람 됨됨이가 우선 순위에 올랐었다. 가난해도 성격만 좋다면 결혼 후보로 당당히 설 수 있었다. 얼마 전에 한 친구를 오랜만에 만났다..

길위의단상 2006.01.17

미친 세상

시장을 지나가는데 두 사람의 대화가 귀에 들어왔다. "솔직히 우리나라에서 검은 돈 안 먹은 놈이 어디 있냐?" "나는 안 먹었다. 왜?" "넌 임마 능력이 없어서 그런 거야." 요사이는 9시 뉴스를 보기가 겁이 난다. 그런데 안 봐야지 하면서도 습관적으로 TV 앞에 앉게 된다. 하긴 언제 편하게 뉴스를 볼 때가 없었지. 무슨 대규모 스포츠 행사나 하면서 국민들 넋을 뻬놓고 열광시키기 전에는.... 어제는 일부러 MBC 뉴스를 보면서 보도 제목들을 적어 보았다. 삼성이 한나라에 준 불법 자금 170억 추가 확인 -- 불법 대선자금 청문회 -- 인간 배아 줄기세포 배양 성공 -- 땅 투기자 7만명 적발 -- 한국인 해외서 잇단 실종 -- 손자를 버린 비정한 할머니 -- 외출이 불안하다 -- 돈 뺏으러 살인 ..

길위의단상 2004.02.13

기도

샌, 조금은 바보처럼 살자! 샌, 조금은 모자라게 살자! 샌, 조금은 욕심을 버리자! 샌, 조금은 마음을 비우자! 가앙 가앙..... 가을 하늘은 자꾸만 높아만 간다. 꾸역 꾸역..... 늘어나는 욕심으로 나는 자꾸 무거워진다. 이 좋은 계절 가운데서 나는무너지고 있다. 상대를 모르는 싸움에 지쳐가고 있다. 하느님! 제가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 현실을 받아들을 수 있는넉넉함을 주소서. 세상사를 분별할 수 있는 지혜는 감히 청하지 않사오나 그러나 당신의 따스한 한 마디가 그립습니다. 그 한 마디면 다 족하겠습니다.

참살이의꿈 2003.1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