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미친 세상

샌. 2004. 2. 13. 11:17
시장을 지나가는데 두 사람의 대화가 귀에 들어왔다.

"솔직히 우리나라에서 검은 돈 안 먹은 놈이 어디 있냐?"
"나는 안 먹었다. 왜?"
"넌 임마 능력이 없어서 그런 거야."

요사이는 9시 뉴스를 보기가 겁이 난다. 그런데 안 봐야지 하면서도 습관적으로 TV 앞에 앉게 된다.
하긴 언제 편하게 뉴스를 볼 때가 없었지. 무슨 대규모 스포츠 행사나 하면서 국민들 넋을 뻬놓고 열광시키기 전에는....

어제는 일부러 MBC 뉴스를 보면서 보도 제목들을 적어 보았다.

삼성이 한나라에 준 불법 자금 170억 추가 확인 -- 불법 대선자금 청문회 -- 인간 배아 줄기세포 배양 성공 -- 땅 투기자 7만명 적발 -- 한국인 해외서 잇단 실종 -- 손자를 버린 비정한 할머니 -- 외출이 불안하다 -- 돈 뺏으러 살인 -- 학교 폭력으로 뇌경색 -- 상가 임대 사기 -- 위안부 누드 파문 -- 불량 떡시루에 건강 위협 -- 동심 노리는 얄팍한 상혼 -- 양재천서 잉어 때죽음 -- 주가 조작으로 불법 소득 -- 여론조사, 범죄와 부정부패 늘어난다 --기타 토막 뉴스들 -----

온통 부정, 부패, 사기, 투기, 살인, 환경 오염, 폭력 등으로 뒤범벅되어 있다. 다행히도 어제는 자살 소식은 들어있지 않군.
이것 만이 아니지. 성형 왕국, 낙태 왕국, 강간 왕국, 투기 왕국, 이혼 왕국.....
한국은 참대단한 나라이다. 메달 색깔을 다툴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니까.

그나마 중립적으로 보이는 소식이 인간 배아 줄기세포 배양 성공인데 이것도 어떤 점에서는끔찍한 뉴스이다.
줄기세포 배양이란 쉽게 말하면 나하고 똑 같은 놈을 만들어 그 장기를떼내어 내 낡은 부품을 갈아끼우겠다는 발상이다.
그것은 이 사회에 만연해 있는 생명 경시 풍조가 과학 기술적 방법으로 나타난 것에 불과하다. 그래서 이제는 복제 왕국이라는 영예까지 얻고 싶은가 보다.

한국 사회에서 있는 자, 배운 자들은 철면피처럼 뻔뻔스럽고 이제는 최소한의 수치심조차 버린 것 같이 보인다.
없는 자, 못 배운 자들은 오르지 못할 나무를 쳐다보며 저주와 절망과 체념에 빠져 있다. 다른 사람을 도덕적으로 비판하지만 한 탕할 기회가 온다면 자신도 예외가 못 된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올바른 길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리고 올바른 길을 가봐야 자기만 손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 또한 없다.
정직하고 청렴한 사람은 무시되고 도태되는 세상, 기회주의적인 인간이 대우받는 세상이 된지는 이미 오래이다.
이젠 학교에서도 정직과 양심을 얘기하지 못한다. 그럴 자격이 있는 사람도 없거니와 우선 학생들도 콧방귀를 낄 것이다. 이런 대답이 돌아올지 모른다.
"니나 똑 바로 해라!"

며칠 전 만났던 환경과 생명 운동을 하는 친구에게우리의 앞길에 과연 희망이 보이느냐고 물어 보았다.
그의 대답은 의외로 단호하게 예스였다.
"어째서?"
"더 이상 나빠질 수는 없으니까."

우리의 진짜 절망은 경제 성장의 제자리 걸음이나 가난이 아닐지도 모른다.
이미 전쟁터로 변한 삶의 현장이, 과도한 경쟁으로 빚어진 인간과 인간 사이 관계의 붕괴가 우리의 진짜 절망이고 분노일 것이다.
우리는 또한 약탈자들이다. 다만 문명의 이름으로 교묘하게 위장되어 있을 뿐이다.
이 세상은 스스로가 약탈자인지도 모르는 약탈자들로 득실거린다.
저렇게 돌아가는 세상을 바라보며 혀를 끌끌 차고, 나는 무죄하다는 듯 손을 털 수는 없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공범자들이고 내 손에도 핏자국이 선명하게 묻어있는게 보인다.

그러니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또 우리 사회의 대안은 무엇인가?

브레히트가 노래한 것이 꼭 지금의 우리에게 주는 경고의 소리같다.

그들은 나무에 앉아
자신이 앉아 있는 가지를 톱으로 자르기 시작했다.
누가 더 빨리 톱질할 수 있는가를 시험하는 듯이.
그리고 소리질렀다.
그리고 떨어졌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그들을 쳐다보던 다른 사람들은
톱질을 하면서 머리를 흔들었다. 그리고는
톱질을 계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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