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도시락의 추억

샌. 2004. 2. 7. 13:24
지난 설날에 가족들이 모였을 때 홍천의 작은 중학교에 다니는 조카에게서 산골 학교 이야기를 들었다.
작은 학교라 그런지아이들과 선생님이 가족같이 지내는 모습이 무척 정겹게 느껴졌다.
여러가지아기자기한풍경 중에서 겨울이면 교실 난로에 도시락을 데워 먹는다는 얘기가 있었다.

아직 이런 분위기의 학교가 있다는게 신기했고, 옛날 생각이 많이 났다.
몇 년 전부터는 학교 급식이 시작되었으니 이젠 도시락이 뭔지도 모르는 아이들이 점점 많아질 것이다.
그러나 우리 세대는 도시락 세대라고 할 정도로 도시락은 생활의 일부분이었다.
중년의 세대에게 도시락은 단순한 밥 그릇이 아니라 가족의 정이 담긴 따스하고 소중한 기억으로 누구에게나 남아있을 것이다. 또 어떤 사람들에게는 가난과 배고픔으로도 연결될 것이다.

나의 경우도 초등학생 때부터 직장 생활의 초기까지 약 20여년간 도시락과 함께 했다.
도시락을 싸주는 사람이 어머니에서 외할머니로, 그리고 나중에는 아내로 바뀌었을 뿐 아침에 집을 나설 때 필수적으로 챙겨야 되는 것이 도시락이었다.
지금처럼 어디에나 음식점이 있어 수월하게 한 끼를 먹을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고 또 경제적으로도 대부분 어려웠으므로도시락이 없다는 것은 식욕의 포기와 같았다.

결혼 생활의 초기에 자전거 핸들에 도시락 가방을 걸고 아내의 배웅을 받으며 출근하던 기억이 새롭다.
그런 기간이 오래 되지는 않았지만 나에게는 과거의 따스했던 경험의 하나로 남아있다.
그 뒤에 구내 식당이 생기고 도시락과는 영 이별하게 되었다. 물론 편리하게 되었고 나도 아내도 그것을 반겼지만, 그것은 어떤 면에서 한 문화의 종말이었다.
새로 찾아온 문화는 편리함과 능률과 만족을 주었지만 대신 많은 것을 소멸시켰다. 우리가 기꺼이 벗어던진 것들 중에는 보물도 많이 들어있었음을 당시에는 몰랐다.

대학교 다닐 때는식당에서 국물 한 그릇을 사서 도시락 밥을 말아 먹으면 최고의 점심이었다. 맛은 오뎅 국물 비슷했는데 김 부스러기가 떠 있었다. 제일 싼 이 국물 한 그릇마저도주머니를 뒤져보며 망설일 때가 많았다.
날씨가 좋을 때는 캠퍼스 잔디밭이 우리들의 식당이었다.
그러나 당시는 시국이 어수선했다. 무엇엔가 쫒기듯 불안했고 모두들 정체성에 방황했고 고민도 많았다. 그래서인지 따스한 점심에 대한 기억은 별로 없다. 아마 도시락을 가지고 다닌 날이 별로 많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중고등학교 때 책과 도시락으로 터질 듯한 가방도 생각난다. 어떤 날은 도시락이 두 개인 날도 있었다.새벽에 나가서 밤 늦게 돌아오는 학교 생활, 그것은 성인이 되려는 통과 의례치고는 가혹한 고행이었다.
겨울이면 외할머니는 도시락을싸서 아랫목 이불 밑에 놓아 두셨다. 조금이라도 따스한 밥을 먹이고 싶은 심정이었으리라.
그 때 보온 도시락이 있었다면 어머니들의 마음은 훨씬 안도할 수 있었을까?
교실 난로 위에서 밥 타는 냄새가 나고 도시락 뒤집는 당번까지 있었던 것도 이때였다.

밥 위에는 계란 후라이 한 장이 덮여 있고, 그리고 김치와 라면 봉지에 담은 김이 반찬이었다. 이만하면 그 당시 훌륭한 도시락이었다.
혼자서 자취하던 친구 하나는 도시락도 못 싸오는 날이 많았다. 미안해 하는 얼굴로 몇 점씩 돌아가며 허기를 채우곤 했다.
그 친구는 셋방을 자주도 옮겼는데 새 집을 구하지 못할 때는 몇 주간씩 독서실 신세를졌다. 그럴 때는 짐 보따리 하나를 내 단칸방에 맡겨두곤 했다.
한국에서는 사업이 잘 안된다고케나다에 가더니 지금은 어떻게 지내는지 무척 궁금하다.

당시에는 버스를 타면 앉은 사람이 학생들 가방을 무조건 받아 주었다.
어떤 때는 가방이 무릎 위에 탑같이 쌓여있기도 했다. 이때 가장 조심할 것이 김칫물이 흘러 내리는 것이었다.
가방을 받는 사람이 옆으로 뉘여 버리면 조마조마했다. 책을 버리는 것은 둘째치고 그 사람의 옷을 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가방에서는 늘 반찬이 흘러넘쳐서 남긴 냄새로 가득했다.

초등학교는 더 어려운 시절이었다.
그때는 모두들 도시락을 벤또라고 불렀다. 반찬이라야 된장이나 고추장이 많았다.
밥을 몇 숟가락 파먹고 고추장을 섞은 다음에 뚜껑을 덮고 흔들면 고추장 비빔밥이 되었다. 그걸 물과 함께 후후거리며 맛있다고 먹었다.
수업이 끝나고 책과 도시락을 책보에 둘둘 말아 어깨에 걸쳐매고 뛰어가면 빈 도시락통에 숟가락이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했던 기억도 난다.
그리고 집에 와서는 빈 도시락을 미리 내놓지 않았다고 어머니한테 야단맞은 경험이 누구에게나 다 있을 것이다.

그래도 마냥 좋았던 시절이었다.
산과 강이 모두 우리들 놀이터였고, 세상은 재미있고 신기한 것 투성이였다. 모든 것이 놀이였으니 골목길만 나서면 친구들이 있었고 뭔가 재미있는 거리가 있었다.
물론 그 당시에도 공부의 부담이 있었지만 그러나 지금같지는 않았다고 여겨진다.

빈곤으로 상징되는 많은 것들이 우리 곁을 떠났다.
그와 함께 없어져서는 안 될 다른 소중한 가치들도 덩달아 우리가 내팽겨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잘 살게 되었다고 해서 요즘 아이들이 요즘 사람들이 그만큼 더 행복해졌는가?
결코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우리가 되찾아야 할 소중한 가치들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곰곰 생각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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