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莊子의 행복론

샌. 2004. 2. 20. 16:07
莊子를 좋아한다고 했더니 옆의 동료가 이렇게 말했다.
"그건 패자(敗者)의 철학이야."
그리고 부연 설명을 했다. 사회 경쟁에서 낙오된 사람이 정신적으로 위안을 찾는 도피처일 뿐이라고.

사실이 그러하든 아니든 莊子는 내가 정신적으로 방황하던 시절 나를 구원해준 책이었다.
아직도 수박 겉핥기식 莊子 읽기에 그치고 있고,莊子가 담고 있는 거대한 지혜의 스케일을 생각하면 아직도 멍해지지만그래도 지금껏 莊子는 내 삶을 지탱해주는 큰 기둥이 되고 있다.

莊子 철학의 특징은 현세 너머를 가리키는 초월성에 있다고 본다. 그래서 신비적 경향이 가미된 종교적 색채를 띄기도 한다. 중국의 토양에서 자라난 사상으로는 독특하지 않나 싶다.
莊子는사회적 관습에 따라 생활하고, 아무 비판없이 세속의 전제 조건들을 받아들이는 것에 의문을 제기한다. 세상의 실용주의적 가치관에는 무척 저항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즉 사람이 살아나가기 위해서 가져야 할 공격성이나 야망, 자기 주장에 대해서는 거의 가치를 두지 않고, 단순함과 겸손 또는 자기를 낮추어 눈에 띄지않게 하고 침묵하는 것을 선호한다.
특히 자기 강화라는결과로 유도되는 온갖 인위적 행위들을 철저히 배격한다.

이런 관점이 인간이 추구하는 행복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드러난다.
莊子는 인간이 세속적 관점에서 행복을 찾는 한 결코 거기에 도달하지 못하리라고 한다.
세상이 생각하는 행복이란 망상에 불과할 뿐이고 인간이 행복을 얻기 위해 따르는 길이란 욕망의 줄달음질이며 그 과정 자체가 인간에게는 족쇄로 작용하게 된다.

억만금을 모으고 온 세계를 지배하게 된들 인간의 내면은 채워지지 않는다. 그런 자아 강화의 길은 道와 상충되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명상이나 종교적 활동 또한 이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것이 자아 강화의 방편으로 쓰이는 한 마음의 평화에 이르기를 바라는 것은 환상일 뿐이다.
소로우가 `월든`에서 부자들의 자선 행위를 격렬히 비판한 것을 읽은 적이 있는데 그것이 알게 모르게 자아 만족의 수단으로 쓰이는 값 싼 자선이라면겉으로는 덕이라고 주장될지라도 근본적으로 자기 강화의 길로서 아무 의미가 없다는 뜻이다.

결국 莊子가 가리키는 것은 자아 상실의 길,즉 道의 길이다.
이것은 모든 종교의 핵심 가르침이지 않나 싶다. 각 종교의 외양이나 교리는 다를지라도 자기 비움을 통해 진리와 하나됨으로써 깨달음의 세계에 이른다는 것은 지금 존재하는고등종교들의 공통적인 가르침일 것이다.
과연 현재의 종교 구조나 가르침이 진리와 얼마나 일치하는지는 다른 문제이며 심각히 반성해야 할 일이다.

그런 道의 길은 다른 무엇에서가 아니고 사람이 존재한다는 바로 그 사실로 인하여 부여받은 소박한 좋음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그것은 생명의 가장 깊은 바닥에 존재하는 기쁨과 만나는 것이다.
어린 아이의 미소에서 우리는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아직 자아가 확립되지 않은 갓난 아이의 천진난만한 웃음에서 그런 생명의 근원적인 비밀을 엿볼 수가 있다.

이것은 예수가 `어린 아이가 되어야만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라고 한 가르침과도 연결되는 것이다.

莊子는 그런 면에서 인간 해방의 철학이다.
모든 관념과 인습과 그리고 망상에 불과한 자아로부터의 해방이면서 동시에 인간 본성의 회복이다.
그런 사람은 과거에 매이지 않고 앞날을 걱정하지 않고 오직 주어진 지금 이 순간의 삶만을 산다. 들꽃처럼, 하늘을 나는 새처럼.....

莊子는 행복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리라.

`당신이 행복 찾기를 멈추지 않으면 결코 행복을 발견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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