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16

견리망의(見利忘義)

'교수신문'에서는 연말이면 올해의 사자성어를 선정한다. 올해 사자성어는 견리망의(見利忘義)다. '이로움을 보자 의로움을 잊는다'/'의로움을 잊고 이익만 챙긴다'는 뜻으로, 전국 교수 1,300여 명이 뽑았다. 안중근 의사의 붓글씨로 유명한 '견리사의(見利思義)'를 뒤집어서 만든 말인 것 같다.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병폐를 들라면 극심한 이기주의가 아닐까 한다. 옛날이라고 인간성이 달랐을 것 같지 않지만, 그래도 겉으로는 의로움을 명분으로 내세웠다. 이제는 다들 철면피가 되고 뻔뻔해졌다. 도시와 시골, 잘 사는 이나 못 사는 이나 차이가 없다. 세상은 약육강식의 정글이 되었고, 각자도생의 싸움판이 되었다. 견리망의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곳이 정치판이다. 자신이나 정파의 이익을 위해서는 의로움 따위는 헌신짝만..

길위의단상 2023.12.17

손잡지 않고 살아남은 생명은 없다

지난달 29일에 열렸던 제77회 서울대 후기 학위수여식에서 생물학자인 최재천 교수가 축사를 했다. 선배로서 졸업하는 후배들에게 전하는 당부의 말인데 근래 보기 드문 명연설이었다. 최 교수는 서울대 동물학과를 졸업하고 하버드대에서 생물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모교 생명과학부에서 교수로 재직하다 2006년부터 이화여대 석좌교수로 근무하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진화생물학자다. 이번 축사의 요지는 자기만 잘 살려는 사람이 되지 말고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이 되라는 것이다. 선생은 "주변은 온통 허덕이는데 혼자 다 거머쥐면 과연 행복할까"라고 반문한다. 가진 자들은 별생각 없이 키 차이가 나는 사람들에게 똑같은 의자를 나눠주고 공정하다고 하지만 그건 일률적인 공평에 지나지 않는다. 키가 작은 이들에게는 더 ..

참살이의꿈 2023.09.17

다음 소희

소희는 특성화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다. 2학기가 되어 어느 통신회사 콜센터에 현장 실습을 나간다. 어린 학생이 감내하기에는 너무 가혹한 근무 환경이 꿈 많은 소녀를 절망하게 만든다. 회사는 실적에 따라 인센티브를 주면서 서로간의 경쟁을 부추긴다. 발버둥을 쳐서 좋은 실적을 올리지만 그나마 실습 학생에게는 보상을 해 주지 않아 마찰이 생긴다. 가정이나 학교에서도 위안을 받지 못한 소희는 결국 저수지에 몸을 던진다. '다음 소희'는 6년 전에 전주에서 일어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특성화고등학교 학생의 현장 실습은 여러 차례 문제 제기가 되었지만 변한 것은 없는 것 같다. 안타까운 죽음이 잊을 만하면 일어나곤 한다. 나도 실업계 고등학교에 근무한 적이 있었다. 현장 실습 나간 학생으로부터 작업 환경이 ..

읽고본느낌 2023.07.24

딸을 위한 시 / 마종하

한 시인이 딸에게 말했다 착한 사람도, 공부 잘하는 사람도 다 말고 관찰을 잘하는 사람이 되라고 겨울 창가의 양파는 어떻게 뿌리를 내리며 사람은 언제 웃고, 언제 우는지를 오늘은 학교에 가서 도시락을 안 싸온 아이가 누구인지를 살펴서 함께 나누어 먹으라고. - 딸을 위한 시 / 마종하 지난 주말에 손주가 다녀갔다. 손주가 지하철을 탔는데 한 할아버지가 귀엽다면서 이것저것 말을 시키고 용돈까지 만 원을 주더라고 자랑했다. 할아버지가 마지막에 한 말이 공부 열심히 해서 꼭 1등을 해야 한다고 당부하더란다. 우리는 "지금이 어느 시댄데" 하면서 같이 웃었다. 구세대는 반공 이데올로기와 1등주의의 세뇌를 받으며 살아왔다. 다들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었지만 화석화된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삶에서..

시읽는기쁨 2023.03.20

다읽(8) - 정의의 길로 비틀거리며 가다

세상에는 다양한 삶이 있지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가치 추구를 지향하는 삶과 그것에 무관심한 삶이다. 가치 추구를 지향하는 사람은 단순히 살아가는 데 목적이 있지 않다. 좀 더 의미 있은 삶을 위해서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품고 살아간다. 반대로 가치 추구에 무관심한 사람은 대개 현실주의자다. 지상에서 얼마나 누리고 즐기느냐가 목적이다. 세속적 가치관이 그들을 지배한다. 이 책 를 쓴 리 호이나키(Lee Hoinacki) 선생도 전자의 길을 가는 분 중 하나다. 제목에서 '비틀거리며'라는 말이 와닿는다. 이 길을 가는 사람은 질문과 고뇌, 방황을 필수적으로 경험해야 하기 때문이다. 세상에 대해 "No!"라고 말할 용기도 필요하다. 당연히 세상은 그를 곱게 봐주지 않는다. 선생은 대학교..

읽고본느낌 2020.11.22

논어[328]

자로가 말했다. "지도적 인물도 용기를 숭상합니까?" 선생님 말씀하시다. "지도적 인물은 정의를 으뜸 삼지. 지도적 인물이 용기만 뽐내면서 정의감이 없으면 반란을 꿈꾸고, 덜된 인간이 용기만을 뽐내면서 정의감이 없으면 도둑질을 한다." 子路曰 君子尙勇乎 子曰 君子義以爲上 君子有勇而無義 爲亂 小人有勇而無義 爲盜 - 陽貨 21 자로가 용기[勇]를 물은 건 자로에 어울리는 질문이다. 군자는 정의[義]를 으뜸으로 삼는다고 공자는 단호하게 말한다. 그래선지 정의를 내세우지 않는 무리가 없다. 부글거리는 욕망을 가리는 명분으로 정의만 한 게 없다. 전두환 독재 정권 때는 모든 관공서에 '정의 사회 구현'이라는 표어가 걸려 있었다. 한때 높이 들었던 정의의 깃발 또한 젊음의 객기나 멋있어 보이기 위한 만용이 아니었는..

삶의나침반 2019.02.07

적폐 청산

올해의 단어를 고르라면 나는 '적폐 청산'을 꼽겠다. 문재인 대통령의 후보 시절 대표적인 공약이었고, 당선 뒤에도 잘못된 과거사 정리에 많은 힘을 쏟고 있다. 반대 진영에서는 정치 보복이라고 비판하지만, 썩은 부위는 빨리 도려내야 한다. 반발이 없으면 제대로 된 적폐 청산이 아니다. 대학교수들이 선정한 올해의 사자성어로는 '파사현정(破邪顯正)'이 선정되었다. 적폐 청산과 일맥상통하는 말이다. 대한민국 역사에서 제일 큰 과오는 해방 후에 친일 청산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다. 한 번 단추를 잘못 끼우자 나라의 근본이 흐트러졌다. 그런 잘못을 다시 범해서는 안 될 일이다. 이번 적폐 청산으로 두 가지는 꼭 시정되었으면 좋겠다. 하나는, 전관예우다. 전관예우는 판사나 검사로 재직했던 사람이 변호사로 개업하면서..

길위의단상 2017.12.31

지연된 정의

법이 만인에게 공평하다고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강자에게는 너그럽고, 약자에게는 엄격하고 가혹하다. 법원 출입을 해 보면 안다. 힘 있는 사람은 잘도 빠져나가는데, 빽도 돈도 없으면 적진에 떨어진 혈혈단신의 신세가 된다. '무전유죄 유전무죄'의 절규가 나에게도 해당할 수 있다. 세상 현실이 그렇다. 자신의 기득권을 포기하고 약자의 편에 선 사람이 있다. 전직 기자였던 박상규 씨와 박준영 변호사다.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또는 하고 있는 사람을 위해 재심을 신청하고 무죄를 이끌어낸다. 는 두 사람이 재심 프로젝트를 통해 진실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책에는, 삼례 나라슈퍼 3인조 강도 치사 사건,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 기사 살인 사건, 완도 무기수 김신혜 사건 등 세 사례가 나온다. 앞의 둘은 1999년..

읽고본느낌 2017.11.20

내 탓이오

접촉 사고가 나더라도 절대로 잘못했다는 말을 하지 말라. 무조건 네 탓이라고 우겨라. 30년 전에 운전면허를 따고 차를 샀을 때 선배 운전자한테서 들은 충고였다. 큰소리치는 사람이 이긴다는 통설이 널리 퍼졌던 시기였다. 지금은 보험회사에 전화만 하면 과실 비율을 판정해 준다. 네 탓, 내 탓으로 낯 붉힐 일이 별로 없다. 겨울 스포츠로는 배구를 좋아한다. 특히 여자배구는 아기자기한 맛이 있어 즐겨 본다. 배구는 실수가 자주 나오는 경기다. 그럴 때는 손을 들거나 가슴에 손을 대면서 미안함을 표시한다. 대신에 동료들은 괜찮다고 격려해 준다. 배구는 팀워크가 중요하다. 반대로 상대 팀에 대해서는 자기 잘못을 드러내지 않는다. 블로킹을 하다가 손가락에 맞았더라도 모른 척한다. 승부의 세계에서는 어쩔 수 없는 ..

참살이의꿈 2017.04.15

교황의 메시지

평화, 화해, 용서, 위안의 메시지를 전하고 프란치스코 교황의 한국 방문이 끝났다. 종교 지도자로서의 겸손하고 인자한 모습은 가톨릭 신자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특히 가난하고 상처받고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그분의 따스한 관심은 큰 위로가 되었고 동시에 우리를 부끄럽게 했다. 4박5일 동안 머물며 한국 사회에 전한 메시지도 중요하지만, 몸으로 보여준 사랑은 더없이 값진 것이었다. 교황에 대한 열광은 사그라지더라도 그분이 우리 사회에 던진 화두는 계속 간직해야 한다. 특별히 천주교 수도자, 신자, 정치 지도자에게는 가슴에 새겨 둘 내용이 있었다. 교회 지도자가 세속적 가치관과 타협하여 안주하는 현상,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 데 천주교 신자들이 얼마나 이바지했는지에 대한 반성이 반드시 ..

참살이의꿈 2014.08.19

변호인

천만 관객을 돌파하는 즈음에 이 영화를 보았다. 가슴 찡한 감동이었다. 신인 감독이라 믿기지 않을 정도로 빈틈없이 잘 만들어진 영화였다. 배우들 중에서는 특히 송강호의 연기가 압권이었다. 1981년에 일어났던 대표적 용공조작인 부림 사건을 모델로 했다. 노무현 역인 송우석 변호사를 송강호가 맡았다. 그러나 특정인을 넘어 사람이 무엇으로 살아가는지, 살아가야 하는지를 잘 보여 주는 영화였다. 돈만 좇던 송우석 변호사는 국가 폭력의 실상을 접하고 억울한 피고인들을 위한 변론에 온몸을 던진다.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군사 정권이 저지른 만행이 그를 통해 드러난다. 이 영화는 국가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곰곰 생각하게 한다. 애국이라는 명분으로 서슴지 않고 용공죄를 만들고 고문을 하는 경찰이 있다. 그는 살인 정권..

읽고본느낌 2014.01.18

논어[54]

선생님 말씀하시다. "참된 인간은 의리에 훤하고, 되잖은 인간은 잇속에 훤하지." 子曰 君子喩於義 小人喩於利 - 里仁 14 '되잖은 인간'[小人]은 유불리를 따져 행동한다. 전형적인 기회주의자다. 반면에 '참된 인간'[君子]는 의(義)의 길을 간다. 그것이 고난과 형극의 길일지라도 마다하지 않는다. 세상적인 것과 의로움은 충돌하기 마련이다. 심지어는 목숨까지 내어놓아야 할 때도 있다. 예수가 간 길이 그러했다. 맹자가 양혜왕을 만났다. "선생처럼 고명하신 분이 천리 길을 찾아주셨으니 장차 우리 나라에 이익[利]이 있겠지요." 맹자가 말했다. "왕께서는 어찌 이익에 대해서 말하십니까? 진정 중요한 것은 인의(仁義)가 있을 뿐입니다." 국가의 공리(公利)마저 거부한 게 유교다. 유교를 진정 국가의 통치 철학..

삶의나침반 2013.10.29

논어[50]

선생님 말씀하시다. "참된 인간은 세상일을 처리할 때, 꼭 그래야 할 것도 없고, 안 할 것도 없다. 옳은 길을 택할 따름이다." 子曰 君子之於天下也 無適也 無莫也 義之與比 - 里仁 10 에서도 '의(義)'가 강조되는 걸 새롭게 발견하고 있다. 공자라고 하면 부드러운 할아버지 이미지가 떠오르는 건 주로 인(仁)에 대해서만 듣고 배웠기 때문이다. 의(義)에서는 서릿발 같은 날카로움과 실천 의지가 읽힌다. 공자 정신을 어떻게 삶으로 구현하느냐를 고민할 때면 이 의(義)의 문제와 부딪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사랑'보다는 '정의'라는 말이 그나마 오염이 덜 되었다. 의(義)의 길이 어떤 길인가는 각자의 양심에 새겨져 있다.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누구나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많이 배운 사람이나 덜 ..

삶의나침반 2013.09.23

나는 고발한다

보수와 진보의 대결, 인종 차별, 국가 폭력, 언론을 통한 여론 조작 등이 종합된 최초의 현대적 사건이 1894년부터 1906년까지 12년 동안 진행된 프랑스의 드레퓌스 사건이다. 1894년 9월 독일 간첩의 누명을 쓰고 유태인 드레퓌스 대위가 구속되었다. 당시 프랑스는 독일에 대한 적대감과 민족주의, 반유태주의가 기승을 부릴 때였다. 군사법원은 간첩죄로 군적 박탈과 종신 유배를 선고했고, 드레퓌스는 아프리카의 외딴 섬으로 끌려갔다. 참모본부 정보국에서 일하던 피카르 중령이 드레퓌스 사건의 서류를 보다가 스파이 글씨가 드레퓌스가 아닌 보병 대대장 에스테라지 소령의 것임을 알아내고 상관에게 알렸다. 그러나 참모본부와 언론은 오히려 에스테라지를 변호했고 피카르는 좌천을 시켰다. 진실을 알게 된 에밀 졸라는 ..

읽고본느낌 2013.07.05

논어[27]

선생님 말씀하시다. "제 조상도 아닌데 제사를 모신다면 아첨하는 거다. 정의를 보고도 주춤거리는 것은 용기가 없는 탓이야." 子曰 非其鬼而祭之 諂也 見義不爲 無勇也 - 爲政 17 에서 '의(義)'자를 만나면 반갑다. 인(仁)과 의(義)는 수레의 두 바퀴와 같다. 의가 빠진 인이란 절름발이다. 세상을 바로잡는 힘은 수오지심(羞惡之心)에서 나온다. 의를 강조한 사람은 맹자였다. 맹자는 말했다. "생명은 내가 소중히 여기는 것이다. 의 역시 내가 바라고 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만일 양자가 함께 할 수 없는 처지가 된다면 나는 목숨을 버리고 의를 선택할 것이다[生亦我所欲也 義亦我所欲也二者不可得兼 舍生而取義者也]. 맹자에게 의는 목숨보다 앞서는 가치였다. '정의를 보고도 주춤거리는 것은 용기가 없는 탓이다'는 나..

삶의나침반 2013.04.17

정의의 길로 비틀거리며 가다

세상에는 보통사람이 흉내내기 어려운 용기를 가진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 중의 하나가 ‘정의의 길로 비틀거리며 가다’를 쓴 리 호이나키다. 녹색평론사에서 최근에 나온 이 책을 읽으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하여 다시 새 빛을 보았고, 그리고 현재의 무기력한 내 모습이 그 빛에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서 부끄러웠다. 리 호이나키는 1928년에 미국에서 나서 학교교육을 마치고 1951년에 도미니크 수도회에 들어간다. 9년 동안 빈민촌에서 사목활동을 하다가 푸에르토리코로 갔고, 거기서 이반 일리치를 만나 평생의 벗이 되었다. 그 뒤 칠레와 멕시코에서 생태적 삶에 대한 연구 활동을 했다. 1967년에 미국으로 돌아와 결혼을 하고, 대학원에서 정치학 박사과정을 밟던 중, 베트남 전쟁으로 인한 미국의 제국주의 정..

읽고본느낌 2008.0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