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모 2

주막 / 이기철

주막은 주막이 아니라 酒幕이라 써야 제격이다그래야 장돌뱅이 선무당 미투리장수가 다 모인다그래야 등짐장수 소금쟁이 도붓장수가 그냥은 못 지나가고방갓 패랭이 짚신감발로 노둣돌에 앉아 탁주 사발을 비우고 간다그래야 요술쟁이 곡마단 전기수들이 주모와 수작 한번 걸고 간다酒幕은 으슬으슬 해가 기울어야 제격이다번지수가 없어 읍에서 오던 하가키가대추나무 돌담에 소지처럼 끼어 있어야 제격이다잘 익은 옥수수가 수염을 바람에 휘날려야 제격이다돌무지 너머 참나무골에 여우가 캥캥 짖고누구 비손하고 남은 시루떡 조각이당산나무 아래 널부러져 있어야 제격이다시인 천상병이 해가 지는데도 집으로 안 가고나뭇덩걸에 걸터앉아 손바닥에 시를 쓰고그 발치쯤엔 키다리 시인 송상욱이 사흘 굶은 낯으로통기타를 쳐야 제격이다주막은 때로 주먹패 산도..

시읽는기쁨 2024.10.23

아지매는 할매 되고 / 허홍구

염매시장 단골술집에서 입담 좋은 선배와 술을 마실 때였다 막걸리 한 주전자 더 시키면 안주 떨어지고 안주 하나 더 시키면 술 떨어지고 이것저것 다 시키다보면 돈 떨어질 테고 그래서 얼굴이 곰보인 주모에게 선배가 수작을 부린다 "아지매, 아지매 서비스 안주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주모가 뭐 그냥 주모가 되었겠는가 묵 한 사발하고 김치 깍두기를 놓으면서 하는 말 "안주 안 주고 잡아먹히는 게 더 낫지만 나 같은 사람을 잡아 먹을라카는 그게 고마워서 오늘 술값은 안 받아도 좋다" 하고 얼굴을 붉혔다 십수 년이 지난 후 다시 그 집을 찾았다 아줌마 집은 할매집으로 바뀌었고 우린 그때의 농담을 다시 늘어놓았다 아지매는 할매 되어 안타깝다는 듯이 "지랄한다 묵을라면 진작 묵지" - 아지매는 할매 되고 / 허홍구 ..

시읽는기쁨 2009.0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