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경궁 9

사도세자 회화나무

영조 38년(1762년) 5월에 영조는 아들 사도세자를 8일 동안이나 뒤주 속에 가둬 죽게 했다. 창경궁 문정전(文政殿) 뜰에서였다. 그때 비극의 현장을 지켜보았던 두 그루의 회화나무가 있다. 그중 하나는 줄기가 뒤틀리는 기묘한 모습을 하고 있다. 사람들은 사도세자의 비명을 들은 나무가 고통에 몸부림치다가 이런 모양을 하게 되었다고 믿는다. 일명 '사도세자 회화나무'다. 이 나무는 문정전에서 100여m 쯤 떨어진 선인문 앞 금천 옆에 있다. 실제로 사도세자가 갇힌 뒤주는 문정전에서 이곳으로 옮겨졌고, 사도세자는 이 나무 부근에서 절명했다고 한다. 문정전에 더 가까이 있는 또 다른 회화나무 역시 온전한 모양은 아니다. 둘 다 궁궐에서 자라는 나무의 형태로는 뭔가 사연이 있어 보인다. 사람들이 사도세자의 비..

천년의나무 2022.04.09

창경궁의 봄

전 직장 동료들이 창경궁에서 만나자고 했을 때 내심 벚꽃을 구경할 수 있겠다고 좋아했다. 창경원을 창경궁으로 바꾸면서 벚꽃을 없애긴 했으나 춘당지 부근에는 많이 남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불과 이삼 년 전에 춘당지에서 화려한 벚꽃을 본 기억이 있었다. 그러나 직접 가 보니 착각이었다. 창경궁에는 벚나무가 드물 정도로 없다. 춘당지의 기억은 벚꽃이 아니라 가을 단풍이었다. 벚꽃은 귀해도 창경궁의 봄은 따스했다. 열 달만에 만난 동료들의 얼굴도 반가웠다. 나는 사진을 찍는답시고 동선이 다르게 움직였다. 이번에는 봄을 즐기는 사람들을 넣어 보았다. 한 분은 코로나 자가격리 중이라 못 나오고 여섯이 모였다. 다음주에 고향 어머니를 찾아갈 예정이라 나는 점심도 같이 못 하고 헤어졌다. S22 자랑을 하면서 ..

사진속일상 2022.04.09

그 시절의 상춘

서울에서 6, 70년대 상춘(賞春) 장소는 창경원이 유일했다. 해마다 벚꽃 철이 되면 창경원 앞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밑의 사진 같은 모습은 그나마 질서가 잘 잡힌 것이다. 나는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서울에 올라왔고, 그래서 60년대 후반의 창경원의 봄을 기억한다. 그때 살던 곳이 돈암동이어서 걸어서 창경원까지 갔다. 어느 해 봄에는 시골에 계시는 어머니가 올라오셔서 도시락을 싸가지고 함께 창경원 벚꽃놀이에 간 기억이 난다. 얼마나 상춘객이 많았는지 꽃구경이 아니라 사람 구경이었다. 당시 창경원 안에는 동물원과 놀이기구가 있는 유원지도 있었다. 지금으로 치면 종합 놀이공원이었던 셈이다. 당시 사진을 보면서 옛 추억에 잠겨본다. 청춘남녀들에게는 창경원 밤 벚꽃놀이가 더 인기였다. 아마 나이 지긋하신 분들..

길위의단상 2022.03.30

2019년 가을 창경궁

거의 2년 만에 연락이 된 전 직장 동료 넷이 서울에서 만났다. 때가 가을인지라 내 제안으로 창경궁 단풍 감상을 겸해 고궁에 모였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 반가웠고, 옛날 직장 생활 얘기에 웃음꽃이 피었다. 올 단풍은 예년에 미치지 못하는 것 같다. 창경궁만 아니라 다른 곳 단풍도 맑은 맛이 떨어진다. 그래도 가을의 정취를 느끼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가을은 모든 잎이 꽃이 되는 두 번째 봄이다." 버스 타고 가는 길가에서 본 글귀다. 옳거니, 하며 무릎을 쳤다. 어쩌면 봄보다 더 화려한 계절이 가을이다. 식물은 제 마지막을 이리도 아름답게 장식한다. 억지로 하려는 게 아니라 지극히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다. 허나 사람은 어떠한가. 아무리 노력해도 한 그루 나무를 닮을 수 없다. 창경궁을 한 바퀴 돈 뒤 ..

사진속일상 2019.11.06

창경궁 단풍

용두회에서 창경궁으로 단풍 구경을 갔다. 서울에 있는 고궁 중 단풍이 제일 고운 곳이 창덕궁 후원과 창경궁일 것이다. 창경궁은 창경원이었던 시절에는 봄 벚꽃으로 유명했다. 하지만 궁궐 복원 사업이 완성되고 벚나무는 사라졌다. 대신 가을철 단풍이 볼 만해졌다. 다른 어디보다 단풍 색깔이 고운 장소다. 날이 흐려서 사진 찍을 때 콘트라스트를 줬더니 색깔이 좀 과해졌다. 올해는 단풍을 보러 설악산으로, 울릉도로 찾아다녔지만 마지막을 창경궁으로 마감한다. 세상은 참 아름답다는 걸 실감하는 올가을이다.

사진속일상 2017.11.08

창경궁 황철나무

아직도 처음 들어보게 되는 나무 이름이 있다. 황철나무도 그랬다. 황철나무는 흔히 볼 수 있는 나무가 아닌데 버드나무과 중에서 사시나무 종류에 들어간다고 한다. 황철(黃鐵)이라는 한자 이름도 특이하다. 창경궁 서편에 큰 황철나무가 있다. 어두운 색의 굵은 줄기가 굉장히 우락부락하게 생겼다. 원래 궁궐에 있을 나무가 아니므로 일본인들이 창경원을 꾸밀 때 심은 것으로 추정된다. 원래 두 그루가 나란히 자라고 있었는데 하나는 죽었다고 가지를몽땅 잘랐다. 그런데 아래 밑둥에서는 새 가지가 나오며잎이 돋아나고 있었다. 아직 뿌리는 완전히 죽지 않은 것 같다. 황철나무의 목재는 가볍고 연하여 상자나 펄프를 만드는데 쓰인다고 한다.

천년의나무 2008.09.18

창경궁 주목

창경궁 함인정(涵仁亭) 앞에 기이하게 생긴 주목이 있어 눈길을 끈다. 두 줄기 중 하나는 꼿꼿이 서 있는데 다른 하나는 45도 각도로 기울어져 있으면서 잎이 하나도 없다. 바로 서 있는 줄기도 중간에서 잘려있어 제대로 성장한 모양이 아니다. 벼락을 맞아서 저런 기형이 되었다고 한다. 나이는 300 년으로 추정되는데 살아 천 년 죽어 천 년이라는 주목의 수명에 비하면 그리 오래 되지도 않았다. 삶의 어느 한 시기에 찾아온 충격이 나무에게는 엄청난 고통이 되었는지 모른다. 나이에 비해서는 많이 늙고 힘들어 보였다.

천년의나무 2008.09.18

초추의 양광

가을 햇살에 취해 창경궁을 산책하다. 태풍 일과 후 하늘은 끝없이 밝고, 맑은 대기에는 시원한 바람이 가득하다.마음은 풍선 마냥 저 푸른 하늘로 두둥실 떠올라 간다. 문득 안톤 슈낙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의한 구절이 떠오른다. '정원의 한편 구석에서 발견된 소조(小鳥)의 시체 위에 초추(初秋)의 양광(陽光)이 떨어져 있을 때, 대체로 가을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갑자기 이 구절이 떠오른 것은 아마 '초추의 양광'이라는 고전적인 어휘가 주는 정감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초가을 햇살 환한 창경궁 길을 걸으며 이 말을 쉼없이 마음 속으로 반복했다. 지극히 아름다운 것은 지극히 슬픈 것과 통하는 법이다. 지극히 착한 것은 지극한 고난과 통하는 법이다. 하필 오늘 같은 날, 한 사람의 부음을 들었다. 교육..

사진속일상 2007.09.17

창경궁 회화나무

창경궁에 있는 300여살이 되었다는 회화나무이다. 안내문에 보면 창경원 시절에 수많은 관람객들의 손에 가지가 꺾이고 시달려 수형이 이렇게 불균형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세월의 풍파를 견딘 나무의 품위는 더욱 당당해 보인다. 끈질긴 생명력과 바위와 같은 과묵함이 거목에서 느껴진다. 일본에는 나이가 5천년이 넘는 나무도 있다고 한다. 삼나무의 일종이라고 한 것 같다. 한 생명체가 우리 나라역사와 맞먹는 세월만큼 살아왔다니 절로 감탄이 난다. 그 나무 앞에서는 누구라도 경배를 하게 될 것 같다. 그 긴 침묵의 세월에 비하면 우리 인간은 얼마나 왜소한가. 자연을 이용 대상으로만 여기는오만한 짓거리는 이제 그만 뒀으면 좋겠다.

천년의나무 2003.1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