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16

태풍 지난 뒤 경안천

태풍 카눈이 얌전하게 지나갔다. 한반도에 들어온 뒤에는 세력이 약해져서 우리 고장을 관통했건만 태풍이라는 실감을 하지 못했다. 신나게 달리다가 갑자기 시동이 꺼져버린 자동차 같은 모양새였다. 대신 태풍이 남긴 구름이 이틀째까지 사라지지 않으면서 가는 비가 오락가락했다. 우산을 들고 오랜만에 경안천에 나갔다. 그래도 천변의 낮은 길은 물에 잠긴 흔적이 남아 있었다. 경안천의 지류인 직리천에서는 궂은 날씨지만 아이를 데리고 산책 나온 부부가 보였다. 어머니 손에는 곤충 채집망이 들려 있다. 우리가 국민학교에 다닐 때는 여름방학이면 곤충/식물 채집 숙제가 있었다. 방학책 표지에는 으레껏 채집망을 어깨에 걸친 아이들 그림이 나왔다. 지금 돌아보면 생명의 소중함을 깨우치려는 의도와는 전혀 맞지 않는 것이었다. 그..

사진속일상 2023.08.13

투 쿠션 태풍 '카눈'

2023년의 6호 태풍인 카눈(Khanun)이 한반도에 진입한 후 오늘 새벽 평양 부근에서 소멸했다. 다행히 우리나라에 들어온 뒤에는 강도가 약해져서 피해가 크지 않았다. 카눈은 여느 태풍과 달리 두 번이나 급격하게 진로를 변경한 점이 특이했다. 요사이 당구에 관심이 있어선지 카눈의 경로를 보면서 당구의 투 쿠션이 연상되었다. 카눈은 7월 28일에 발생하여 북서진하다가 8월 4일에 대만 부근에서 티베트기단에 가로막혀 300도가 넘는 방향 전환을 했다. 동쪽으로 향하던 카눈은 8월 7일에 북태평양기단에 부딪쳐 90도로 꺾이면서 우리나라로 향하게 되었다. 심하게 회전을 하면서 충돌하는 당구공의 경로와 유사해서 흥미로웠다. 주고받는 힘 관계를 물리적으로 설명한다면 재미있을 것 같다. 또한 카눈은 7월 28일부..

길위의단상 2023.08.11

뒷산으로 쫓겨나다

이웃집 공사 소음이 심해서 뒷산으로 피난을 가다. 덕분에 오붓하게 초가을의 산길을 걷다. 계절이 변하니 산길 분위기도 달라지고 있다. 숲에는 늦은 매미들의 세레나데와 풀벌레들의 노랫소리가 나지막이 울려퍼진다. 한여름의 주체할 수 없는 생명력은 부드러워지면서 전체적으로 차분해지는 느낌이다. 누군가가 산길을 따라 연이어 배수로를 만들어 놓았다. 다가올 태풍에 대비한 조치로 보인다. 강력한 태풍으로 예고된 태풍 '힘남노'가 6일 오전에 남해안에 상륙한다고 한다. 3일 오후 1시 현재 힘남노의 위성사진이다. 대만 동쪽 해상에 있다. 중심기압 940hPa, 최대풍속 48m/s인 매우 강한 태풍이다. 내일은 더 발달하여 중심기압이 920hPa까지 내려간다. 초강력 태풍으로 커지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상륙하는 6일에..

사진속일상 2022.09.03

태풍 지난 하늘

9호 태풍 마이삭이 지나가고 파란 하늘이 열렸다. 하늘 좋고 바람 서늘해 경안천에 나갔다. 해는 숨바꼭질하듯 구름 뒤로 들락날락하는 걷기 좋은 날이었다. 이런 날은 하늘 구경만으로도 본전을 뽑는다. 코로나19로 거리두기 2.5단계가 실시중이어선지 밖에 나온 사람은 생각보다 적었다. 구름만 보면 가을이 성큼 다가온 것 같다. 올여름은 8월 중순까지도 장마 속에 갇혀 있었으니 더위를 제대로 느끼지도 못하고 지나갔다. 유별난 2020년인데 올가을은 어떤 걸 선물할지 기대 반 두려움 반이다. 요즘 같으면 나라나 개인이나 그저 별 탈 없기를 바랄 뿐이다. 경안천에서는 아내, 손주와 차례로 합류했다. 손주가 유치원에 못 가게 되니 다시 야외에서 손주 얼굴을 보게 된다. 봄보다 마음의 키가 훌쩍 큰 것 같다. 아이들..

사진속일상 2020.09.04

태풍 바비

태풍 바비(Bavi, 8.22~8.27)가 지나갔다. 서해안을 따라 북상했는데 다행히 큰 피해 없이 통과했다. 기상청에서는 역대급이라고 호들갑을 떨었는데, 이번에도 기상청의 과장 예보가 또 도마 위에 올랐다. 이번 태풍만이 아니라 기상청 예보가 지나치게 오버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런 게 반복되면 기상청은 양치기 소년이 될 수밖에 없다. 조심하라고 외쳐도 국민은 별로 안 믿게 된다. 기상청은 과학이다. 오직 데이터로 말해야 한다. 예측이 잘못되어 욕을 먹더라도 사실대로 전하는 게 옳다. 기상청은 이번 태풍의 크기 예측이 잘못되었다고 시인했다. 폭풍반경을 보면 거의 배 가까이나 틀렸다. 우리 같은 아마추어가 봐도 바비는 그렇게 덩치가 큰 태풍이 아니었다. 수도권에서는 출근을 조심하라고 경고했는데 막상 태풍..

길위의단상 2020.08.28

태풍 노루

5호 태풍 '노루'가 어제 오후 3시에 일본 내륙에서 열대저기압으로 약화하며 태풍으로서의 일생을 마쳤다. 지난 7월 21일 9시에 발생했으니 18일 6시간 동안 살아있었다. 보통 태풍의 수명이 일주일 내외인데 비하면 상당히 길게 생존한 셈이다. 최고 기록은 1986년의 태풍 '웨인'의 19일이고, 최소 기록은 2013년의 태풍 '우나라'의 6시간이라고 한다. 태풍 '노루'는 경로도 특이했다. 발생한 초기에는 태평양에서 한 바퀴 원을 그리며 돌더니 남서진하며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와서 일본 열도를 따라 지나갔다. 지나간 길도 특이한 태풍이었다. 이름이 노루여서인가, 태평양 푸른 초원을 실컷 뛰어다니다가 일본 텃밭을 짓밟고는 홀연히 사라졌다. 우리나라로 올까 봐 긴장했는데 가고시마 부근에서 방향을 급격히 틀었..

길위의단상 2017.08.09

10월 태풍 차바

18호 태풍 '차바(CHABA)'가 우리나라를 지나갔다. 10월에 찾아온 태풍으로는 가장 강력했다. 제주도와 남해안을 따라 지나가며 사망 실종 10명에 많은 재산 피해를 입혔다. 폭우와 강풍이 대단해서 제주도에서는 순간풍속이 47m/s를 기록했다. 역대급 태풍으로 이름이 남을 것 같다. 10월 태풍으로는 이례적이다. 강력했지만 소형이고 이동 속도가 빠른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경인 지방에서는 태풍의 영향을 거의 느낄 수 없었다. 잠깐 가는 비가 내리기만 했다. 남부 지방의 피해가 컸다. 차바는 9월 28일에 발생해서 10월 6일에 삿포로에서 소멸했다. 태풍 경로도 10. 4. 12:45 10. 4. 18:45 10. 5. 00:45 10. 5. 06:45 10. 5. 12: 45 국제우주정거장에서 찍은 ..

길위의단상 2016.10.06

10월에 찾아온 태풍

올해는 태풍 없이 지나가나 했더니 10월에 들어서야 늦손님이 찾아왔다. 24호 태풍 다나스(DANAS)였다. 23호 피토(FITOW)와 비슷한 때에 발생하여 다나스는 북쪽으로 올라왔고, 피토는 중국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다나스도 집안으로 들어오지는 않고 문간에서 안부만 여쭈며 동해로 빠져나갔다. 우리나라가 10월에 태풍 영향을 받은 건 15년 만이라고 한다. 지금도 서태평양에는 새로운 태풍 두 개가 만들어져 있다. 어디로 갈지는 아직 미정이지만, 적도의 고수온 해역이 점점 확장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늦은 태풍의 방문을 받을 확률은 점점 높아질 것 같다. 10월 6일 15:00 10월 7일 15:00 10월 8일 15:00

길위의단상 2013.10.10

덴빈과 볼라벤

두 태풍, 덴빈(TEMBIN)과 볼라벤(BOLAVEN)이 이틀 사이로 한반도를 지나갔다. 이례적인 일이었다. 또한 덴빈의 경로도 특이했다. 덴빈과 볼라벤은 형제 태풍이었다. 덴빈은 8월 19일에, 볼라벤은 20일에 북위 18도 해역에서 태어났다. 22일까지는 두 태풍의 세력이 비슷했으나, 23일부터 덴빈은 약해졌고 볼라벤은 강해졌다. 볼라벤이 강했을 때는 둘 사이에 60hPa 차이가 났다. 덴빈은 볼라벤의 힘에 밀릴 수밖에 없었다. 형이 동생한테 치인 격이었다. 북진하던 덴빈은 튕겨 나가 서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마치 두 당구공이 충돌하는 것과 같았다. 그리고 덴빈은 스핀이 걸린 당구공처럼 대만 해역에서 반시계방향으로 타원을 그리며 움직였다. 덕분에 대만이 며칠간 계속해서 태풍의 영향권에 놓였다. 이때 ..

길위의단상 2012.09.01

한반도를 덮은 볼라벤

태풍 볼라벤이 서해를 통해 빠르게 지나가고 있다. 한반도 전체가 태풍의 소용돌이 속에 들어 있다. 이곳은 비보다 바람이 거세게 분다. 울부짖는 바람 소리를 들으며 자연의 위력을 실감한다. 오늘 상황을 나타내는 기상 사진을 모아 보았다. 적외선 영역과의 합성사진 강수 지역을 표시하는 레이다 영상 천리안위성이 찍은 사진 일본 기상청 사진 볼라벤 경로 일기도 집 앞 풍경

사진속일상 2012.08.28

태풍 전야

센 놈이 올라오고 있다. 제15호 태풍 볼라벤(BOLAVEN)이다. 오후 3시 현재 태풍의 중심은 제주도 남서쪽 380km 해상에 있다. 중심 기압이 950hPa인 대형 태풍이다. 서해안을 따라서 북상할 태세여서 큰 피해가 예상된다. 2년 전 곤파스 때는 살던 집의 베란다 유리창이 박살 나서 너무 놀랐었다. 서울 지역 학교는 내일 임시휴업에 들어간다. 이곳 경기 지역도 바람이 점점 세게 불며 하늘이 구름으로 덮이기 시작한다. 내일 오후 2시경에 최근접한다고 예보되어 있다. 꼼짝없이 집에 갇혀 있어야 할 것 같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태풍 전야다. 볼라벤의 예상 진로도. 8. 27. 16:00, 이배재고개

사진속일상 2012.08.27

풍경(12)

태풍이 지나간 오후, 한강변은 평화로웠다. 그러나, 여의도 샛강 생태공원에 들어서니 많은 나무들이 뿌리가 뽑히거나 줄기가 부러져 있었다. 오늘 아침의 태풍으로 나무들도 피해가 컸다. 누구는 무너지고, 누구는 살아남는다. 쓰러진 생명을 보고 너무 안타까워하지 말아라. 존재의 소멸을 통해 새로운 생명이 다시 숲을 채운다. 죽음이 새 생명을 잉태하는 것, 그것이 자연의 원리가 아니겠는가. . . . 그래도, 죽어가는 자는 슬프고, 살아남은 자는 안도의 한숨을 쉰다.

사진속일상 2010.09.02

곤파스의 발톱

공포의 아침이었다. 태풍 ‘곤파스’가 한반도 중부 지방에 상륙하던 날, 소형으로 약해졌다는데도 그 기세는 무척 매서웠다. 두 시간 가까이 포효하며 아파트 베란다 문틀을 사납게 흔들더니 결국은 큰 유리창이 와장창하며 박살이 났다. 일부는 베란다에 떨어졌지만 일부는 바람에 날아갔다. 마치 재난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이웃집 유리창 깨지는 날카로운 소리도 연신 들려왔다. 출근을 앞둔 아침 시간에 식구들은 안절부절 얼마나 가슴을 졸였는지 모른다. 더구나 정전이 되는 바람에 둘째는 엘리베이터에 갇히기까지 했다. 나도 출근길에 나섰다가 거센 바람에 발길을 돌렸다. 걷기도 힘들었지만 어디서 무엇이 날아올지 몰랐다. 바람이 잦아든 후에 밖에 나가보니 고층 아파트의 많은 집들 유리창이 박살나 있었다. 어떤 집은 베란다 ..

사진속일상 2010.09.02

태풍 지나가는 날

제 4호 태풍 '뎬뮤'(Dianmu)가 한반도에 상륙해 남도 지방을 지나가고 있다. 태풍이 직접 한반도에 들어온 것은 3년 만의 일이다. 다행히 소형 태풍이라서 큰 피해 없이 지나갈 것 같다. 태풍 중심부와 멀리 떨어진 이곳은 오늘은 태풍의 영향이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나 더위는 한풀 꺾였다. '뎬뮤'는 긴 가뭄에 단비를 몰고 온 고마운 태풍이다. 또 폭염도 쫓아내 주었다. 며칠 전 전화를 드렸을 때 어머니는 밭 작물이 타들어가고 있다고 걱정하셨다. 이번 비로 급한 대로 해갈이 되었을 것 같다. 태풍이 가까워지면서는 우선 공기가 달라진 게 고맙다. 덥고 찐득찐득한 공기가 일순간에 서늘하게 변했다. 뜨거운 북태평양 고기압의 기세를 '뎬뮤'가 차단한 것이다. 지금 서울은 구름으로 덮여 있지만 구름 사이로..

사진속일상 2010.08.11

태풍이 지나간 아침

제 3호 태풍 에위니아(EWINIAR)가 어제 낮에 한반도에 상륙해서 서해안을 따라 북상하다가 밤 10시에 홍천 부근에서 소멸하였다. 지난 7월 1일에 괌 남서쪽 1000 km 해상에서 발생한 뒤 10 일간의 일생을 마친 것이다. 다행히 우리나라에 들어온 뒤로는 세력이 급속히 약화되어 큰 피해를 주지 않았다. 이번 태풍의 특징은 비구름이 한쪽으로 심하게 편향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어제 저녁 5시에 찍은 아래 비구름 사진을 보면 태풍의 중심은 충청남도 서천 부근에 있는데, 비구름은 동해안을 따라서만 활 모양으로 발달되어 있다. 태풍 중심이 서쪽 지방을 지나갔지만 경상도나 강원도 지역을 제외하고는태풍이 지나가는 것이라는 것을 모를 정도였다. 이곳 서울에서도 밤에는 태풍 중심이 100 km이내로 접근했건만 비..

사진속일상 2006.07.11

'나비'의 일생

태풍 '나비'가 우리나라 남동해안과 울릉도, 그리고 일본에 큰 피해를 주고 어제 북해도 위쪽에서 소멸했다. '나비'는 올해 발생한 열네 번째 태풍으로 초대형급이어서 무척 걱정스러웠는데 다행히(?) 일본으로 방향을 틀어 우리나라 전역에 대한 직접적인 피해는 없었다. '나비'는 가을 태풍의 전형적인 경로인 활 모양으로 휘어지며 비켜간 것이다. '나비'는 지난 달 29일에 북위 15도상 아열대 해상에서 생겨나 세력이 점점 강해졌는데 한 때는 비슷한 시기에 미국 뉴오리온즈를 쑥대밭으로 만든 초특급 허리케인인 '카트리나'에 비견될 정도였다. 중심기압이나 최대풍속은 떨어졌으나 폭풍반경은 '카트리나'보다 더 컸다. 특히 태풍의 눈이 아주 발달해 그 크기가 100km에 이르렀다. 만약 우리나라를 관통했다면 엄청난 피해..

사진속일상 2005.09.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