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절뚝거린 추석

샌. 2009. 10. 4. 16:29

이번 추석은 온전치 않은 몸을 끌고 딸들과 함께 고향에 다녀왔다. 연휴가 사흘밖에 안돼 추석 전날 새벽에 출발했다. 고속도로에 진입하니 차들로 가득해서 다시 국도로 나왔다. 길은 꼬불꼬불했지만 다행히 국도는 막히지 않았다.

 

아이들이 송편을 만드는 동안 자리에 누워 쉬었다. 오후에는 방 수리하는 동생 일을 도와주었다. 허리가 아프다고 못 본 척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조심하며 무리하지 않으려 했지만 과했던 것 같다. 저녁 식사 후 아무 것도 못하고 바로 쓰러졌지만 아침에 일어나니 다시 걷기가 힘들 정도로 되었다. 차례 지내는 것도 옆에 서서 지켜보기만 했다.

 





겨우 산소에는 다녀왔지만 남은 작업을 하는 동생을 전혀 도와주지 못했다. 일 하는데 도리어 방해가 될 듯하여 예정보다 일찍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친척이나 이웃을 찾아뵙지도 못했다. 허리는 다시 처음 아프던 때로 돌아갔다. 명절 기분은 이미 사라져 버렸다.

 

차라리 명절이 없었으면 좋겠다. 언제부턴가 나에게 명절은 스트레스를 받는 연례행사가 되었다. 다른 집은 어떤지 모르겠다. 일부 우애가 좋은 집안을 빼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된다. 나누는 덕담처럼 해피하고 즐거운 날만은 아닐 것이다. 개인적 감상이지만 명절 귀향 행렬을 볼 때면 도시로 떠난 사람들이 고사 직전의 농촌에 마지막 고별인사를 하기 위해 찾는 듯 하다. 황폐하고 죽어가는 농촌에 추석 명절의 의미는 없어졌다. 무엇을 가지고, 또어떻게 산 것을 가지고,조상에 감사하고 하늘에 감사하겠는가.

 



그래도 논둑길을 걸을 때 발 밑에서 달아나는 메뚜기들이 고마웠다. 메뚜기가돌아온 농촌에서 다시 희망의 싹을 틔울 수 있을까. 하늘은 눈이 시리도록 맑고 푸르렀고, 가을 들판은 누렇게 익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이 가을 잔치에 동참하지 못한다. 어머니가 말씀하신다. "니 몸은 니가 알아서 해야 한다." 아픈 걸 누가 알아주지도, 걱정해 주지도 않는다고, 그것이 당신 스스로에게 하시는 말 같아 나는 더욱 슬퍼진다.

 

서울로 돌아와서 할 일 없이 자리에 누워있자니 나 자신이 한심해지면서 짜증이 난다. 이런 꼴이 벌써 20일 가까이 된다. 뭐가 잘못된 걸까? 내일은 아무래도 병원에 가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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