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나침반

장자[85]

샌. 2009. 9. 11. 09:26

환공이 마루 위에서 독서를 하는데

마루 아래서는 윤편이 바퀴를 만들고 있었다.

윤편은 망치와 끌을 놓고 올라가 환공에게 물었다.

"감히 묻습니다. 공께서 읽는 책을 무엇이라 합니까?"

환공이 답했다. "성인의 말씀이다."

윤편이 물었다. "성인이 있습니까?"

환공이 답했다. "이미 돌아가셨다."

윤편이 말했다.

"그러면 군주께서 읽은 책들은

죽은 사람의 시체일 뿐입니다."

환공이 말했다.

"과인이 독서를 하는데 공인 따위가 어찌 용훼하는가?

나를 설득하면 좋지만 설득하지 못하면 죽일 것이다."

윤편이 말했다.

"신복합니다. 신이 하는 일로 본다면

바퀴를 깎는데 느슨하게 하면 헐거워 견고하지 못하고

단단히 조이면 빡빡하여 들어가지 않습니다.

느슨하지도 않고 빡빡하지도 않게 하는 것은

손으로 얻어지고 마음으로 감응할 수 있을 뿐

입으로는 말할 수 없습니다.

이치란 그런 사이에서 생기는 것입니다.

신도 신의 아들놈에게 가르쳐줄 수 없고

신의 아들 역시 신에게서 물려받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칠십 년을 일하며 늙었으나

아직도 수레를 깎고 있는 것입니다.

옛사람도 전하지 못하고 모두 죽었습니다.

그런즉 군주께서 읽는 책들은

죽은 사람의 시체일 뿐입니다."

 

桓公讀書於堂上

輪扁착輪於堂下

釋推鑿而上 問桓公曰

敢問公之所讀者何言邪

公曰 聖人之言也

曰 聖人在乎

公曰 已死矣

然則 君之所讀者

古人之糟魄已夫

桓公曰

寡人讀書 輪人安得議乎

有說則可 無設則死

輪扁曰

臣也 以臣之事觀之

착輪徐則甘而不固

疾則苦而不入

不徐不疾

得之於手 而應於心

口不能言

有數存焉於其間

臣不能以喩臣之子

臣之子亦不能受之於臣

是以行年七十

而老착輪

古之人 與不可傳也 死矣

然則 君之所讀者

古人之糟魄已夫

 

- 天道 5

 

환공은 나라의 임금이고, 윤편은 바퀴 만드는 기술자다. 일개 기술자가 임금의 어리석음을 깨우쳐주는 이 우화는 통쾌하면서도 시사하는 바가 많다. 몸은 움직이지 않고 방안에 틀어박혀 공자왈 맹자왈 하는 현학적인 선비들에 대한 장자의 일갈인지도 모른다.

 

또한 이 우화은 말이나 글의 한계를 지적하고 있다. 일상생활에서도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표현 못해 답답한 경우가 많다. 바퀴 깎는 기술도 말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손으로 얻어지고 마음으로 감응할 수 있을 뿐 입으로는 말할 수 없다고 했다. 하물며 도(道)나 법(法)의 경우는 말할 나위도 없다. 석가가 연꽃을 들고는 말없이 대중들에게 보였다. 이때 가섭만이 빙그레 웃었다.말로 표현할 수도 가르쳐 줄 수도 없는 진리는 이렇게 하여 가섭에게 전해졌다.

 

그렇다고 언어나 글이 무용하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거기에 매이지 말라는 의미다. 강을 건넌 뒤에는 뗏목을 버려야 하지만 그 전에는 뗏목이 필요하다. 강을 건넌 뒤에도 뗏목을 가지고 가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라고도 했다. 종교의 경전에만 집착하다 보면 종교가 말하는 본래의 뜻이나 의미를 놓치기 쉽다. 말이나 글로 되는 것이라면 깨달음에 이르지 못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 한계성만 제대로 인식하더라도 우리는 좀더 겸손해질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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