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큰 즐거움은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이라고 누가 말했었지요
그래서 나는 사람으로 살기로 했지요
날마다 살기 위해 일만 하고 살았지요
일만 하고 사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요
일터는 오래 바람 잘 날 없고
인파는 술렁이며 소용돌이쳤지요
누가 목소리를 높이기라도 하면
소리는 나에게까지 울렸지요
일자리 바뀌고 삶은 또 솟구쳤지요
그때 나는 지하 속 노숙자들을 생각했지요
실직자들을 떠울리기도 했지요
그러다 문득 길가의 취객들을 흘끗 보았지요
어둠속에 웅크리고 추위에 떨고 있었지요
누구의 생도 똑같지는 않았지요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건 사람같이 사는 것이었지요
그때서야 어려운 것이 즐거울 수도 있다는 걸 겨우 알았지요
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사람같이 산다는 것과 달랐지요
사람으로 살수록 삶은 더 붐볐지요
오늘도 나는 사람속에서 아우성치지요
사람같이 살고 싶어, 살아가고 싶어
- 물에게 길을 묻다 / 천양희
창비시선 300 권 기념으로 '걸었던 자리마다 별이 빛난다'라는 시선집이 나왔다. 창비시선에 발표되었던 시 중에서 '사람'을 주제로 한 시를 골라서 엮었다. 이 시는 그중의 한 편이다.
'사람으로' 사는 것과 '사람같이' 사는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 시인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사람같이 사는 것이라 한다. 사람의 모습을 띄고 이 세상에 나온 이상 누구나 사람으로 살아가지만, 모두가 사람같이 사는 것은 아니다. 시인이 말하는 사람같이 사는 삶이란 세속적 욕망을 추구하는 길이 아니기 때문에 사람으로 살수록 삶은 더 붐비기만 했고 그럴수록 사람같이 살고 싶다는 아우성이 나올 수밖에 없다.
나 역시 이만큼 살았어도 여전히 인생 초보자다. 맨날 실수하고 넘어지면서 아파하고 후회한다.지금도 걸음마를 배우는 아기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사람같이 살고 싶다는 바람만으로 사람같이 살아지는 것도 아니라는 걸 안다. 인생은 수십 차원을 다루는 수학 문제처럼 난해하다. 이젠 인생의 답을 찾기를 포기했지만 그래도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는 알고 싶다. 제대로 길을 가고 있는 것인지, 자연의 순리를 따라 유유자적 흘러가는 저 물에게 간절히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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