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조장 / 김선태

샌. 2009. 6. 5. 09:42

티베트 드넓은 평원에 가서

사십 대 여인의 장례를 지켜보았다.

라마승이 내장을 꺼내어 언저리에 뿌리자

수십 마리의 독수리들이 달겨들더니 삽시에

머리카락과 앙상한 뼈만 남았다, 다시

쇠망치로 뼈를 부수어 밀보리와 반죽한 것을

독수리들이 깨끗이 먹어치웠다, 잠깐이었다.

 

포식한 독수리들이 하늘로 날아오르자

의식은 끝났다, 그렇게 여인은 허, 공에 묻혔다

독수리의 몸은 무덤이었다 여인의

영혼은 무거운 육신의 옷을 벗고

하늘로 돌아갔다, 독수리의 날개를 빌어 타고

처음으로 하늘을 훨훨 날 수 있었을 게다.

 

장례를 마치고 마을로 돌아가는 유족들은

울지 않았다, 침울하지 않았다, 평온했다

대퇴골로 피리를 만들어 불던 스님의 표정도

경건했다, 믿기지 않았다, 그들은

살아생전 못된 놈의 시신은 독수리들도

먹지 않는다고 했다, 그때슬퍼한다고 했다.

 

언덕길을 내려오다 들꽃 한 송이를 보며

문득 죽은 여인을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평원의 풀과 나무들도, 모래알도, 독수리도

그냥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을 어귀에 이르자 꾀죄죄한 소년들이

허리를 굽히며 간절하게 손을 내밀었다.

삶과 죽음이 이토록 가까웠다.

 

- 조장(鳥葬) / 김선태

 

독수리에게 전신공양을 하는 이 장례를 조장(鳥葬), 또는 천장(天葬)이라고 부른다. 티베트의 자연환경과 불교적 가치관이 이런 독특한 장례법을 낳았다고 한다. 육신을 다른 생명의 먹이로 줌으로써 내생의 복을 기원하면서새가 인간의 영혼을 하늘로 안내하는 역할을 한다는 믿음 때문이다.

 

구더기의 먹이가 되든 독수리의 먹이가 되든 무슨 차이가 있을까마는 인간의 장례법에는 희한한 것들이 있다. 최근에는 화장한 가루를 캡슐에 담아 우주선에 싣고 가서 우주로 쏘아보내는 방법도 나왔다고 한다. 돈 많은 사람들이 벌써 예약하고 있다는 보도를 언젠가 본 적이 있다. 그들이야말로 가장 확실하게 하늘나라로 들어가는 것인지 모른다. 새의 몸을 빌리는 것은 원시적이고 어리석은 방법이다.

 

티베트에 가서 꼭 조장을 보고 싶어했던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가 소원을 이루었는지는 모르지만 시와 같은 광경이라면 차마 눈 뜨고 바라보지는 못 할 것 같다. 카트만두에 갔을 때 노천 화장장을 차로 스쳐지나간 적이 있었다. 연기가 솟아오르고 강변 여기저기에 쌓여있는 장작더미만으로도 머리가 멍해졌다. 삶과 죽음이 자연의 한 조각이고 너와 내가 한 몸이라는 것을 깨닫기는 어려웠다. 대신에 사는 게한없이 허무하고 쓸쓸한 것이었다. 뭔가를 살아보려 발버둥을 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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