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들의향기

복사꽃을 보러 백족산에 가다

샌. 2009. 4. 28. 12:06



복사꽃을 보러 장호원 백족산에 찾아갔다. 서울에서 1 시간 30 분 거리에 있는 장호원은 복숭아 산지로 유명한데 전부터 이곳의 복사꽃을 보고 싶었다. 산등성이를 따라 피어 있는 연분홍 꽃밭은 머리 속으로만 그려오던 상상이 풍경화였다. 무릉도원(武陵桃源)이란 말이 있듯 복사꽃은 몽환적이고 환상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다. 또한 복사꽃의 연분홍 색깔은 고혹적이면서 육감적이다. 복사꽃은 에로스에 어울리는 꽃이다.

 

그러나 애써 찾아간 날은 이미 절정이 때를 지나 가빴던 호흡이 가라앉고 있었다. 그리던 꽃을 만나는 게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또한 내년을 기다리는 설레임이고 즐거움일 수 있다.

 




백족산(白足山)에서는 장호원 읍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였다. 백족산은 장호원에 인접한 400 m급의 야트막한 산이다. 생각 같아서는 한달음에 정상까지 다녀올 수 있을 정도로 부담이 없는 산이었다. 무량사에서 임도를 따라 올라가면서철 지난 복사꽃을 구경했다. 또 과수원 규모도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그래선지 복사꽃보다는 차라리 길 옆에 핀 야생화들이 더욱 탐스러웠다.

 





장호원에 내려가는 길에는 고달사지와 매괴성당에 들렀다.

 

고달사지는 여주 생활을 할 때 자주 지나다였던 곳이었다. 그러나 그때는 한창 발굴작업 중이라 어수선하고 펜스가 쳐져 있어 들어가 보지를 못했다. 오랜만에 찾은 고달사지는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입구에서 오래된 느티나무를 만나고 폐사지를 한바퀴 둘러보았다.

 

고달사(高達寺)는 신라 경덕왕 23년(764)에 창건된 유서 깊은 절이다. 고려 때는 국가에서 관장하는 3 대 선원 중 하나일 정도로 대가람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조선 중기까지 번창하던 고달사는 어느 시기에 폐사되고 말았다.

 

고달사 폐사지에 들러서 김훈은 다음과 같이 썼다.

 

'폐허는 그 위에 세워졌던 모든 웅장하고 강고한 것들에 대한 추억으로서가 아니라, 그 잡초 더미 속에서 푸드덕거리는 풀벌레들의 가벼움으로 사람을 긴장시킨다. 폐허에서는 풀벌레가 영원하고 주춧돌은 덧없어 보인다. 여주시 북내면 상교리 고달사터는 그 풀밭에 아직도 남아 있는 찬란한 석물들과 그 사이에서 번식해 뒤엉킨 풀과 벌레들로 시간이 이루어내는 폐허의 양식을 완성한다.'

 

그러나 지금 고달사터는 너무나 말끔해서 폐사지의 분위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이제 시간이 흐르면 흙에 풀들이 덮이고 풀벌레의 노래소리가 들리게 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쓸쓸한 폐사지의 분위기를 맛볼 수 있게 되리라.

 



<고달사지 석불좌>

 



<고달사 원종대사혜진탑비 귀부 및 이수>

 



<고달사지 부도(국보 제 4 호)>

 

장호원 읍내에 있는 매괴성당에도 들렀다. 여러 차례 찾아본 곳이지만 볼 때마다 단아하고 성스러운 느낌이 드는 건물이다. 감곡본당이 설립된 것은100 년이 넘었고, 이 매괴성당 건물도 건축된지가 80 년에 가깝다. 원래 이 자리에는 명성황후의 6촌 오빠인 민응식의 집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매괴'라는 이름이 궁금했는데 이번에 자료를 찾아보니 매괴는 장미를 뜻하는 중국어 메이꾸이(meigui)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한다. 장미는 천주교에서 성모 마리아를 상징한다. 그러므로 매괴성당은 성모를 주보로 하는 성당이라는 뜻이다.

 



어쨌든 복사꽃을 보러 갔다가 복사꽃은 제대로 보지 못하고 엉뚱한 문화유산 답사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모든 인생살이가 그렇듯 뜻대로 계획대로 되는 일은 드물다. 도리어 생각지도 않았던 일에서 망외의 소득을 얻기도 한다. 그런 것이 인생의 재미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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