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하늘밥도둑 / 심호택

샌. 2009. 4. 26. 08:15

망나니가 아닐 수야 없지

날개까지 돋친 놈이

멀쩡한 놈이

공연히 남의 집 곡식줄기나 분지르고 다니니

이름도 어디서 순 건달 이름이다만

괜찮다 요샛날은

밥도둑쯤 별것도 아니란다

우리들 한 뜨락의 작은 벗이었으니

땅강아지, 만나면 예처럼 불러주련만

너는 도대체 어디 있는 거냐?

살아보자고, 우리들 타고난 대로

살아갈 희망은 있다고

그 막막한 아침 모래밭네가 헤쳐갔듯이

나 또한 긴 한세월을 건너왔다만

너는 왜 아무데도 보이지 않는 거냐?

하늘밥도둑아 얼굴 좀 보자

세상에 벼라별 도적놈 각종으로 생겨나서

너는 이제 이름도 꺼내지 못하리

나와보면 안단다

부끄러워 말고 나오너라

 

- 하늘밥도둑 / 심호택

 

하늘밥도둑은 땅강아지의 다른 이름이다. 토로래라고도 한다. 동작이 날쌔서 잡으려고 하면 삽처럼 생긴 앞발로 순식간에 땅을 파고 숨었다. 땅강아지는 내 유년의 기억 한 부분을 소중하게 차지하고 있다. 눈 감으면 뒷뜰에서 까르르 하는 웃음소리 들린다. 그런데 몇 년 전 여주 생활을 할 때 마당에서 우연히 옛 친구를 만났다. 아차 하는 짧은 순간이었지만 눈물이 날 정도로 반가웠다. 그러나 이젠 또 다시 보기 힘들다.

 

네이름에 도둑이 들어있다고 큰 포도청, 작은 포도청이 너만 때려잡았는가 보다. 세상의 큰 도적들은 활개치며 돌아다니는데 여리고 착한 너만 어디로 숨어 있느냐. 하늘밥도둑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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